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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16

‘국제철도 종단항’ 둘러싼 최초의 부동산 투기 소동

한 달 만에 1000배 뛴 땅값…“나진에선 개도 지폐 물고 다닌다”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국제철도 종단항’ 둘러싼 최초의 부동산 투기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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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철도 종단항’ 둘러싼 최초의 부동산 투기 소동

웅기 시가 전경. 종단항 예정지 나진과 12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돈벼락을 맞은 이 거리 양편에는 ‘떴다방’이 가득 찼고 브로커와 투기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무리 천혜의 항만이라고 하나 이 험한 길로 어떻게 토사와 시멘트를 나르고, 무슨 수로 사람을 불러 모아 먹이고 재우면서 인구 30만~40만을 수용하는 대도시를 건설할까? 경성 인구가 30만인데….’

김기덕은 적잖이 우려됐지만, 일본의 기술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동행한 비서에게 바깥 바다와 나진만 사이에 놓인 대초도와 소초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섬 두 개 보이지? 당장 저 땅 몽땅 사들여! 그리고 나진 부근 토지가 매물로 나오면 논이건 임야건 황무지건 가리지 말고 사들여!”

나진 답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김기덕은 내친김에 나진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웅기까지 둘러봤다. 입지조건만 놓고 볼 때 웅기는 나진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항만이었다. 웅기의 매력은 항만이 아니라 나진에서 30리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나진은 지역이 협소하기 때문에 나진이 종단항으로 결정되면 시가지는 웅기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김기덕은 동일상회의 본사를 웅기로 옮기고 나진과 웅기의 토지를 전력을 다해 사들였다. 오늘날 그가 웅기에 300만평, 나진에 150만평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조선 유수의 대지주가 된 것도 이유 없는 일이 아니다. 김기덕은 말하자면 나진에 오늘이 있을 것을 벌써 7~8년 전에 꿰뚫어본 것이다.



나진의 지세를 아는 이는 짐작하리라. 내항 30리나 되는 바다를 고요히 싸안고 있는 천연의 방파제 노릇을 하는 것에 대초도와 소초도가 있다. 대초도는 약 80만평, 소초도는 약 40만평 되는 섬이다. 이 섬 두 개를 김기덕은 전부 샀던 것이다. 120여만평에 달하는 섬 2개는 온전히 김기덕의 소유이다. 이곳에는 다른 사람의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다. 실로 옛날 전설에 나오는 ‘섬의 왕’인 격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총독부의 수용령에 의해 수용되지 않은, 장차 40만명이 들어앉을 시가지가 될 간의동, 신안동에 수십만평의 토지를 가졌고, 장차 공업지대로 개발될 웅기와 서수라(西水羅) 해안과 온성대안(穩城對岸)의 회막동에 약 300만평의 토지를 가지고 있다. 모두 합치면 450만평의 대토지가 김기덕의 소유인 것이다. (‘재계의 괴걸 홍종화·김기덕 양씨’, ‘삼천리’ 1932년 12월호)


대초도와 소초도 땅 120만평을 사는 데 김기덕이 지급한 돈은 고작 2만원 남짓. 농사는커녕 풀 한 포기 키우기 어려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돌산 황무지인 까닭에 평당 1, 2전이면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살 수 있었다. 대대로 살 사람이 없어 팔지 못하고 마음 썩이던 대초도와 소초도의 옛날 지주들은 1000원씩, 2000원씩 뭉칫돈을 받아들고 뒤로 돌아서서 김기덕을 손가락질했다.

“젊은 녀석이 정신이 나갔지. 그 섬이 어디 농사가 되는 땅인가, 땔나무가 나오는 땅인가. 하고많은 논밭 놔두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초도를 사는가.”

“그러게 말이야. 그것도 조선은행에서 이자 내고 빌린 돈으로 산 것이라지. 꼬박꼬박 이자 물면서 돌섬 산 돈 갚으려면 제아무리 김기덕이라도 속이 터질 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대초도와 소초도의 옛날 지주들은 아름다운 나진만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대초도와 소초도를 볼 때면 황무지를 ‘거금’을 받고 외지인에게 떠넘긴 자신의 탁월한 선택을 기특하게 여겼다. 적어도 1932년 8월23일 아침까지는 그랬다.

불꽃 튀는 종단항 쟁탈전

1932년 8월23일,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조선총독은 담화를 발표했다.

“지난 2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건설하고 있는 길회선의 종단항이 오늘로서 결정되었다. 그간 종단항 입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청진, 웅기, 나진이 후보지로 경합을 벌였고, 청진과 웅기 두 항구를 병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청진을 주항으로 삼고 나진을 보조항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 나진과 웅기 두 항구를 병용해야 한다는 의견 등 여러 가지 의견이 많았다. 다양한 의견을 검토하여 총독부와 만철이 숙고한 결과 길회선 종단항은 나진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오늘부터 만철이 중심이 되어 나진에 대규모의 축항설비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나진이 유일한 종단항이라는 것은 아니다. 장래 북만주의 개발이 진전하여 북만주와 북조선을 연결하는 대규모 산업단지가 구축되는 때에는 도저히 현재의 웅기, 청진 두 항만만 가지고는 물자를 처리하기 곤란하다. 길회선이 개통하여 2, 3년간은 웅기, 청진 두 항구를 함께 사용하면 족할지 모르나 10년, 15년의 후에는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 명백하다. 그때를 대비해 만철은 나진에 대규모 축항공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진이 출현한다고 즉시 청진, 웅기 두 항구가 몰락하는 것은 아니다. 나진의 번영은 곧 청진, 웅기의 번영을 의미한다.” (‘길회선 종단항 나진으로 결정’, ‘동아일보’ 1932년 8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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