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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대특집 | 쇼크! 북핵 이후

〈인터뷰〉 ‘핵 무장론’으로 돌아선 ‘비핵화 선언’ 주역 박철언 전 의원

“북한이 끝내 핵 포기 안하면 ‘ 자위적 핵무기 개발권’ 요구해야”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인터뷰〉 ‘핵 무장론’으로 돌아선 ‘비핵화 선언’ 주역 박철언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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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균형에 의한 평화”

▼ 한반도 비핵화 균형이 깨진다면 동북아시아에서 핵도미노 현상으로 지역평화체제가 커다란 위협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남북한 통일도 어려워진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러면 동북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완화되고 평화와 신뢰의 무드에서 남북한이 주변국들의 양해를 구해 국가연합 등 통일의 단계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북한의 핵 보유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상황이라면, 한반도에서 북한만이 핵을 갖고 있는 것보다는 남한과 북한이 모두 핵을 갖는 것이 더 낫습니다. ‘비대칭’에 의한 상시불안보다는 ‘공포의 균형’에 의한 평화가 더 낫다는 것이죠. 일본과 대만까지 핵보유국이 되어 동북아시아 모든 국가가 핵을 갖게 되는 상황에서도 ‘공포의 균형’은 작동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핵으로 이니셔티브를 가진 상황에서 한국이 북한과 통일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통일의 가능성에선 남·북한이 모두 핵을 갖는 것이 북한만 핵을 갖는 것보다 낫습니다.”



박 전 장관은 ‘북한과 관계 속의 한국’ ‘미국과 관계 속의 한국’이 아닌 ‘한국 그 자체의 운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듯했다. 이런 그의 기조는 햇볕쟁책 지지론자와 반대론자에 대한 동시 비판으로 이어졌다.

▼ 북한 핵실험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핵 문제를 오히려 악화했다는 견해도 있고, 반면에 대북 포용정책은 나름대로 유용성이 있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대북 포용정책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 특별선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1989년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1991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민족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공동번영의 시대를 열어보자는 것이 당시 대북 포용정책의 취지였습니다.

나는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 철저한 상호주의를 관철했습니다. 우리가 가면 그쪽이 다음번에 반드시 오도록 했습니다. 고향방문단이나 예술단 행사도 적어도 서울·평양에서 하도록 했습니다. 현금지원, 뒷거래 없이도 남북한은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이 정책이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실제 운용과정에서 일방적인 대북 유화정책으로 변질된 겁니다.”

▼ 북한이 1991년 남북비핵화공동선언을 한 것은 국제정세의 영향도 있었던 것 아닌가요.

“소련의 붕괴로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 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미국이 핵무기로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남북한 비핵화선언을 이끈 동기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남북한 간의 상호주의, 공동번영의 정신이 구현된 것도 사실이지요.”

“친미 일변도 야당, 답답하다”

▼ 야당이 제시하는 대북정책 및 북핵 해법에 대해선 어떤 견해입니까.

“노무현 정부는 감성적 민족주의를 접어야 합니다. 야당과 보수층도 친미 일변도의 자세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특히 야당은 대단히 각성해야 합니다. 야당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 같습니다. 국민은 야당이 미국의 이익이나 처지만 대변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 박 전 의원께서 남북 문제에 관여할 때 미국과도 자주 접촉했습니까.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도 했고…. 내가 반미주의자는 아니죠. 공산권과의 수교를 이끌어낸 북방외교, 남북비핵화선언 등의 실무 작업을 수행할 때 미국측은 여러 번 내게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난 일부러 피했습니다. 일단 자리를 만들면 너무 자세한 내용까지 얘기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미국측이 찾거든 꼭 만나보는 게 좋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죠. 미국에서 ‘좀 오라’고 해서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워싱턴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꼬박 설명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죠.”

그는 “친미 일변도의 태도도 위험하다”는 견해를 누차 밝혔다.

“정말 답답합니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 야당은 누구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닙니다. 1994년 서명한 제네바합의는 북한도 어겼지만 미국도 위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클린턴 대통령 때는 올브라이트가 북한을 방문하고 조명록이 백악관을 찾으면서 북-미 간 상당히 진지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의 ‘악의 축’ 정책 이후 악화일로를 걷더니 2차 북핵위기를 맞았습니다.

정부가 미국을 신중하게 대하고 야당, 시민단체, 언론은 미국을 향해 할 말은 다 하는 나라가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됐습니다. 야당은 미국이 듣기 싫은 얘기는 한마디도 안합니다. 그러니 극우친미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부도 문제고 야당도 문제입니다. 야당은 미국에 ‘왜 그런 수작 부리느냐’고 따질 건 따져야 합니다.”

신동아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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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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