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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장기집권의 뼈대, 한미동맹과 북진통일론

  • 정일준 아주대교수·사회학 ijchung@ajou.ac.kr

이승만 장기집권의 뼈대, 한미동맹과 북진통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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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장기집권의 뼈대, 한미동맹과 북진통일론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중앙부두에서 발견된 고교생 김주열의 시신.

이러한 상황은 북진통일론이 국가 프로젝트로서 효과를 상실했음을 뜻한다. 이승만은 분단 문제를 철저하게 냉전체제와 직결해 파악했다. 국제적인 반공 진영 결속과 적극적인 대공정책만이 한국의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 보았다. 195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한국, 대만, 남베트남이 결속해 공산주의에 대항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철저히 자유 진영을 결속하고 미국의 적극 개입을 촉구함으로써 남북통일을 달성하고자 했다.

휴전 이후 한국군의 병력은 엄청나게 증가했다. 따라서 한국군의 병력 문제는 휴전 후 한미관계에서 최대 쟁점이였다. 한국에서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군사력이 유지된 주 원인은 북진통일을 내건 이승만 대통령의 군비확대정책이었다. 중공군의 북한 주둔과 미군 감축도 무시 못할 요인이었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지역적 위협으로 대두한 중국을 봉쇄할 필요를 느끼고 일본의 재군비(再軍備)가 지지부진한 상황전개에 위기감을 가진 미국 군부의 후원도 있었다. 6·25전쟁을 통해 경제력을 훨씬 넘어서는 군사력을 떠안게 된 한국은 중국 견제와 더불어 일본의 통상병력 방위부담까지 짊어진 셈이었다.

아이젠하워 정권은 아시아정책의 기조로 중국 봉쇄와 더불어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적 경제통합을 추구했다. 6·25전쟁 후의 대한부흥 원조가 일본의 ‘부흥특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 대해 이승만은 격렬히 항의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보기에 아시아에서 일본을 중시하는 미국의 정책은 한국을 다시 일본의 경제세력권에 집어넣으려는 수작이었다. 더욱이 6·25전쟁으로 미국의 군사공약이 확정되고, 경제원조도 기대할 수 있게 된 마당에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굳이 받아들일 필요가 없었다.

“1956년 선거는 ‘정치적 전복’의 계기”

그렇지만 미국의 대한정책의 무게중심은 점차 군사 분야보다 경제 분야로 옮겨졌다. 한국경제의 전후복구 방향은 1956년을 기점으로 구호와 재건에서 발전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한국에 근무하는 미국 관리들은 미 정부에 군사 중심의 대한경제정책을 바꿀 것을 건의했다. 1956년 7월 주한 미대사와 경제조정관이 모두 교체되었다.



새로 부임한 다울링(Walter C Dowling) 대사와 원(William Warne) 조정관은 군사안보와 더불어 경제발전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1956년 10월25일 다울링 대사는 다음과 같은 장문의 보고서를 미 국무부에 보내 대한정책에도 ‘뉴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한정책은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새롭고 복잡한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데, 특히 경제발전 및 군비지출 수준과 관련해 그렇다. 군사 분야에서 우리는 침략에 대항하여 한국의 방위력을 증강한다는 목표를 달성한 반면 구호와 복구 분야에서는, 비록 그것이 성공적이었다고 해도 한국의 필수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기초를 닦은 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공산주의자의 군사위협에 대항하여 강력한 방위력을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정치 분야와 경제 분야 양쪽에서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는 내적인 어려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정치, 군사, 그리고 경제 분야에서 우리의 노력을 조정할 것을 요구하며, 이제까지보다 더욱 더 한국측의 협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한국인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상상력이 풍부한 프로그램을 수립할 수만 있다면 한국측의 협력을 얻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한국지도자들이 국가목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1956년 5월에 실시된 전국적인 선거 결과는 한국민이 현 상황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기적절하게 경고해준 것이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그들이 민주적인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징조다.

만일 앞으로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이승만 대통령이 승인한다면, 당분간 그는 우리의 소중한 동맹자일 것이다. 비록 이승만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크긴 하지만, 이승만은 여전히 한국민에 대해 지도력을 가지고 있으며, 달리는 불가능할 일을 그의 협조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많다(“Broad Evaluation of U.S. Program in Korea,” October 25, 1956, RG 469, Office of Far Eastern Operations, Korea Division, Korea Program Files, 1953-57, box 1, WN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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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준 아주대교수·사회학 ijchung@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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