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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흡연의 문화사’

피워서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 김갑수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흡연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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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울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인가?

도덕적으로 볼 때,

담배를 맛 좋은 친구로 간직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음흉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습관이라고 표현하듯,

위험한 친구로 여기고 피해야 하는지,



어느 쪽이 더 값진 일일까….


시의 지은이는 스목스피어(smokespeare), 그러니까 스모크와 셰익스피어의 합성어니 순 우리말로 하자면 ‘담배피어’쯤 될까. 이 친구 ‘담배피어’가 증언하고 있듯 흡연행위는 19세기에 이미 ‘음흉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습관’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었고, 더 거슬러가자면 문명세계에 본격적으로 전파된 400년 전 이래 담배는 줄곧 찬미와 지탄의 양극단을 오갔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담배를 금하는 주된 이유로 그것이 신앙심과 예의범절을 해칠 수도 있다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우려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흡연을 하면 사형에 처하거나 코와 입술을 베어버리기도 했다.

오늘날의 흡연반대론자들이 크게 내세우는 건강권의 문제도 전파 초기부터 대두된 관심사였다. 담배가 건강에 이로운지 해로운지 확인할 길 없던 시절에는 편의상 귀중한 약재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유럽에서는 매독 등의 전염병을 퇴치해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뇌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던가 핏줄 안에 검댕이 끼게 만든다는 주장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흡연행위는 가히 장미의 전쟁에 비유될 만큼 사랑과 미움이 교차된 역사를 지녔다.

금연운동의 종교성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흡연의 역사와 문화, 제2부 예술과 문학 속의 흡연, 제3부 성(性) 그리고 민족성의 차이, 제4부 불붙은 흡연논쟁. 각자의 기호에 따라 관심사가 다를 테지만 내게 흥미로운 대목은 역시 2부 예술과 문학 속의 흡연이다. 황금기를 맞이한 17세기 네덜란드 화단의 화가들은 술집이나 매음굴 또는 가난한 이들의 삶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담배 파이프를 빈번히 등장시켰다. 흡연은 사회적 일탈의 의미를 띠는 최하층 계급의 오락이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흡연 풍경은 유럽의 회화에서 거의 사라졌다가 18세기 말, 19세기 초반 들어 루소식(式) 자연주의가 성행함과 더불어 재등장한다.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고상한 미개인’을 찬미하는 표현으로 고요하게 파이프 물고 있는 인물상을 설정한 것이다. 그밖에도 동양의 규방에서 성행한 궐련 피우기, 관능적 쾌락, 특히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연관된 오페라 속의 흡연 장면, 니코틴을 찬양한 서적들, 바이마르에서 할리우드로 이어지는 영화 속 흡연 장면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부와 건강과 장수가 추구하는 가치의 모든 것처럼 보이는 이 21세기 초엽의 흡연문화는 앙상하기 그지없다. 흡연은 의지력이 부족한 자, 사회적으로 하층계급, 타인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잠재적 범법자의 행위로 가차 없는 공박을 당한다. 금연의 목소리는 마치 ‘환경을 보호하자’는 주장과 맞먹는 사회적 공리로 인정되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가령 ‘무작정 오래만 살아서 무얼 하려고?’ 같은 흡연자의 항변은 끼어들 곳이 전혀 없다. 21세기에 흡연자는 노예, 흑인, 동성애자 등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다.

‘흡연의 문화사’는 흡연에 대한 찬성, 반대론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지만, 흡연 습관의 역사성을 규명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논란 역시 오랜 전통의 맥락에 놓여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지난날의 흡연 금지령이 대부분 종교적 도그마에 의한 것이었듯이 오늘날의 금연운동 또한 종교성을 띠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와 건강과 장수라는 세속신앙을 말한다. 이 지배적인 종교를 신봉할 의향이 없는 사람들은 지하로 아니 건물 바깥으로 쫓겨나야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모두가 100세 수명이 달성되는 다음 시대에는 또 어떤 흡연문화가 도래할 것인가.

신동아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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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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