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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 무기개발 3총사의 핵·미사일 개발 비화

“박정희 정권 핵 개발은 헛소문… 설계 도면만 그리다 말았다”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ADD 무기개발 3총사의 핵·미사일 개발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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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 출신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

ADD 무기개발 3총사의 핵·미사일 개발 비화

1978년 10월1일 건군 30돌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한국형 중거리 미사일의 위용을 과시하며 시가행진을 하는 국군장병들.

무기 국산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ADD는 연구부서를 총포, 기동, 탄약, 함정, 로켓 분야로 나누고 무기개발에 착수해 소총, 기관총, 수류탄, 지뢰, 60㎜ 박격포, 나아가 중거리 유도탄까지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박 대통령은 ADD에 “1976년까지 최소한 이스라엘 수준의 자주국방 태세를 목표로 총포, 탄약, 통신기, 차량 등의 기본 병기를 국산화하고, 1980년대 초까지 전차, 항공기, 유도탄, 함정 등 정밀 병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긴급 지시한 중차대한 사업인 만큼 청와대에서 직접 감독하고 통제했다. 당시 오원철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수시로 개발실을 방문해 사업 진행상황을 청와대에 직접 보고했다. ‘매일 진척 상황을 보고하라’는 청와대의 독촉에 과학자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듯 쫓기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초창기 로켓포 개발을 책임진 구상회 박사는 당시 기술낙후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 초엔 우리나라에 기계공업이란 게 아예 없었어요. 농기계를 겨우 생산하는 수준이었어요. 공업이라고 해봐야 가내공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차량정비용 공구조차 못 만들던 시절이었죠. 미국의 지원으로 경남 양산에 짓고 있던 M-16소총 공장도 언제 완공될지 미지수였어요. 박 대통령은 포병 출신이라 로켓포, 유도탄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어요. 하지만 유도탄은 노하우와 시설과 인원이 다 갖춰져 있어도 만드는 데 7년 이상 걸립니다. 그때 우리나라엔 로켓을 연구하는 곳이 두 곳 있었어요. 공군사관학교와 KIST였습니다. 지름 25cm에 길이 4~5m인 로켓을 쏘았죠.



(박 대통령이) ‘로켓포를 국산화하라’고 했지만 연구원 중에 경험자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교과서에서만 봤지 실제로 만든 적은 없던 거죠. 도면과 기술 자료가 전혀 없었어요. 로켓포 도면을 구할 길이 없어 육군 수경사(현 수방사)에서 M20 A1, M20 B1포를 1문씩 빌려와 분해해 부품을 스케치하고 치수를 정밀 측정해 도면을 작성했어요. 역(逆)설계를 한 거죠.”

한편 1972년 ADD엔 두 가지 희망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미 국방부가 기술지원팀을 파견한 것이고, 또 하나는 군 출신이 소장직에서 물러나고 과학자 출신이 소장에 임명된 것.

KIST 소장이던 심문택 박사가 ADD 소장에 임명되자 MI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KIST 핵심 연구원 이경서 박사를 비롯해 국내외 우수한 과학자들이 KIST에서 나와 ADD 무기개발팀에 합류했다. 미사일 개발의 인프라가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이다.

꿈은 결코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구상회 박사는 “(연구원들의) 열의가 대단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기술력으로 미사일 개발은 도저히 불가능했다”면서 미국 정부를 힘들게 설득해 기술을 배워온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했다.

“유도탄은 추진기관, 비행체, 유도조종장치, 탄두로 나뉩니다. 우리가 모방하려던 나이키 허큘리스 유도탄을 개발한 제조회사가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MD)사였어요. 그땐 한국에 유도탄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죠. 미사일의 성격이라도 알아야 하는데 알 길이 없었어요. MD사에서 기술을 도입하려면 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어요.

당시 이경서 박사가 맥도널 더글러스와 교섭해 미 정부의 승인을 받는다는 전제로 기술용역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허큘리스 유도탄의 성능을 개량하는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연구하자’는 취지였죠. 그런데 이를 미 정부가 알아채고 주한미군사령관과 미 국방부 안보담당차관보까지 나서서 개발중단을 요구하더군요. 박 대통령도 상당한 압력을 받았어요. 하지만 (박 대통령은) 미국의 중단 압력에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백곰’ 개발은 기적”

구 박사는 미국 정부의 반대를 극복한 우리측 논리를 설명했다.

“우리측은 미 정부에 ‘허큘리스 유도탄을 개량해 쓰겠다. 향후 한국군이 허큘리스 유도탄을 정비하고 성능을 개량하기 위해서는 기술 습득이 절대 필요하다’는 식으로 설득했어요. 박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고 나갔죠. 당시 미국은 허큘리스를 신형 유도탄인 패트리어트(Patriot)로 대체하려는 분위기였어요. 우리가 개량해 쓰겠다는 말이 씨알이 먹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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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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