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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한국의 對중국 외교 변주곡

美·中은 ‘택일’ 아닌 ‘연계’의 대상… ‘양수겸장’의 이중전략 구사해야

  •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한국의 對중국 외교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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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주년이 다 되어가면서 한국이 전략적 성찰의 십자로에 들어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계화와 민주화가 던지는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물과 정파에 관계없이 한국을 이끌어야 할 지도부는 다양한 집단과 사회계층의 이익을 모두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 동안 집중해온 한미관계에 대한 돌아보기만큼이나 한중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관계가 잘 된다고 믿고 안이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 균열의 충격과 상처는 크게 마련이기에, 겉보기에는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중관계에 대한 돌아보기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 중국의 ‘미국화’-패권적 대국으로서 주변 소국에 대해 일방주의를 시행하는 추세-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키 어렵다면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전략적인 대비를 충실히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과연 중국에 대한 전략적 사고는 독립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대외관계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적 틀이 만들어져야 하고, 안보와 발전, 국격의 세 가지 요소를 어떤 순위와 비율로 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 리더십 차원의 정치적 합의와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안보와 발전이 여전히 국익의 두 기둥이라면 미국과 중국은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연계’의 대상이다. 즉 중국과의 포괄적인 협력으로 발전의 이익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미국과의 긴장된 관계로부터 파생된 안보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그 긴장을 이완시키고자 하는 이중전략이 채택돼야 한다. 국격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말만 앞서기보다는 궁극적으로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중한 일관성’

이와 같은 상황은 상당부분 양다리 걸치기(hedging)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중국의 확실한 ‘부상’에 따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나타나는 안보와 경제 논리의 양분화로 인해 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세계 대국들 사이에 소재한 중진국으로서의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자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 이외에 별다른 선택이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신중한 일관성(prudent consistency)’이 가장 중시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모든 것을 일거에 부정하고 바꿔버리는 모습보다는 신중한 정책검토의 기간을 거쳐 ‘관중’으로서의 주변 국가들을 의식하면서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대외관계가 밖에는 어떻게 비춰지고 인식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략적 사고의 창출에는 지도자와 그를 보좌하는 전문가그룹의 생각이 관건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뛰어난 인재를 많이 가진 한국에서 국내 정치적 고려와 모든 현안의 정치화 가능성만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유용한 중장기 전략적 사고의 창출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사족 같지만 자기 임기, 자신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비판적 사고와 담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외교 문제를 놓고 고함치고 싸우는 여야 의원들의 하나 같은 모습에서 전략적 사고의 단초는 찾을 수 없다. 국격은 아주 조그만 것에서부터 찾는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그렇다면 일단 전략적 사고가 만들어지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쉽게 모든 책임을 한 사람, 대통령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략적 사고의 창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미시적 관리’이며, 이를 위해서는 외교관련 부서의 장에서부터 일선에서 한국을 위해 뛰는 말단 외교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소지한 능력과 국익수호에 대한 집착이 또한 중요하다.

흔히들 우리 외교부의 인적규모는 덴마크보다도 작고 미국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고 얘기한다. 이는 분명히 개선될 필요가 있는 사실임에 틀림없지만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자. 과연 지금보다 인적규모를 늘리고 예산을 늘려 편성하면 한국 외교의 미시적 관리가 반드시 나아질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심각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계와 언론계는 전략적 사고의 부재 및 결핍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정책적 연구에 시간을 할애하는 학자들의 상당수는 사실 대부분 끝없는 단기 프로젝트에 얽매여 ‘숲을 보는’ 전략적 사고에 대한 연구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의 가시성(visibility)은 오히려 더 높은 경우가 많아 학계에 대한 일반화된 평가의 주된 대상이 되곤 한다.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언론인 것 같은데, 불필요하게 미국과 중국을 이분법적 논의의 대상으로 만든다든지 보수나 진보의 실질적인 정책차이를 과장하는 등의 소모적 행태는 재고되고 또 조정되어야만 할 과제이다.

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한국의 對중국 외교 변주곡
정재호

1960년 부산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미국 브라운대 석사(현대중국사), 미시건대 박사(중국정치)

홍콩과기대(HKUST) 교수,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

現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저서 및 편서 : ‘Central Control and Local Discretion in China’ ‘Between Ally and Partner: Korea-China Relations and the United States’ 등 10권


과거는 돌이킬 수 없지만 미래는 창조할 수 있는 것이며 우리 자신을 그저 ‘작은 나라’로 치부하는 타성에서부터 우선 벗어나야 한다.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허장성세(虛張聲勢)도 피해야 하지만 지나친 자기비하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 능력에서는 열세일지라도 행태적 힘의 창출과 발휘에서 더 나은 면을 보여준 사례는 세계외교사에서 적잖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향적인 자세의 견지가 전제되지 않고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비한 상황별(양자적 및 다자적 상황) 선택과 대응을 준비하기는커녕 기존의 국익조차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21세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바로 이때 전략적 사고의 필요성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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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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