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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한국의 對중국 외교 변주곡

美·中은 ‘택일’ 아닌 ‘연계’의 대상… ‘양수겸장’의 이중전략 구사해야

  •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한국의 對중국 외교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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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보다 국가이익

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한국의 對중국 외교 변주곡

1973년 6월23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이른바 ‘6·23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에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 김용식 외무장관 등 전 국무위원이 배석했다.

한국의 외무부 또한 자국 외교관들로 하여금 중국 외교관들과의 직접접촉을 허용함으로써 중국과의 교류의 창을 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대한민국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한국 정부는 비밀리에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및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과 홍콩 소재 총영사관을 중국과의 접촉을 위한 핵심공관으로 내부 지정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대만에 대한 방침도 이미 이 시기에 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한국과 대만 사이에 기존 수준을 넘어서는 정치적 관계가 확대되는 것을 암묵적으로 금지했음을 보여주는 공식 사료(史料)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정치체제의 성격을 감안할 때 이렇듯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직접적인 결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전략적 사고의 핵심은 그동안 견지해왔던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Principles)’을 과감히 포기하고 중국과 소련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6·23선언에 요약되어 있다.

1973년 3월, 한국 정부는 황해의 대륙붕 경계 확정을 위한 협상에 중국이 참여할 것을 제안하면서 공산 중국을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라 지칭했다. 또 1974년 박 대통령은 대(對)중국 외교를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홍콩 상완(上環)의 고층건물을 구매했고, 이 건물을 한국센터(韓國中心)로 명명해 총영사관 및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사무소 등을 입주케 했다.

1975년 베트남의 적화(赤化)는 한반도에 구축된 미국의 방어망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뢰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워싱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플루토늄 생산을 위해 핵 재처리시설을 건설하는 비밀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그 노력은 결국 미국에 의해 무산된다. 또한 이 시기 카터 대통령은 1980~81년 안에 한국에 주둔하는 미 지상군병력 전원을 철수할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이 시기 한미 간 갈등의 증폭은 박정희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유화적 접근이라는 ‘외교적 보완재’를 고려케 한 것으로 보인다.



1978년 11월1일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였던 김경원은 홍콩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같은 해 11월17일 박동진 외무장관도 한국 정부가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공산권 국가와의 어떠한 형태의 상업활동도 금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978년 12월18일 중국의 대외무역부장 리창(李强)은 홍콩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한국 및 이스라엘과의 교역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부 시기 전략적 사고의 핵심에는 내부적 균형보다는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를 통한 외향적 균형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주된 배경에는 경제 발전에 대한 깊은 염원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측의 인식 및 전략 변화로 인해 이에 대한 불안정성이 높아지자 한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전략의 조정을 감행한 것이다. 당시의 전략적 사고에는 국격이나 자존 같은 가치의 추구보다는 안보의 확보와 민족의 생존이라는 국가이익에 대한 박정희 정부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주된 작용을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비록 중국에 대한 박 대통령 개인의 전략적 사고와 그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부분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중국을 향해 보였던 박정희 정부의 제스처 상당부분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난항을 겪고 있던 정권의 마지막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전두환의 역할 - 적극적 무역외교 시행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전두환 대통령은 소련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잖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전두환은 특히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긴밀하게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사에 따르면 전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한 대기업 임원들로부터 중국에 관한 정황보고를 자주 받았다고 한다. 1981년 워싱턴 국빈방문 기간 중 행한 연설에서 전두환은 “중국이 미국의 친구라면 나 또한 그 논리에 부연하여 친구의 친구는 우리에게 덜 위협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전두환의 실용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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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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