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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호 특별부록 | 한국의 核주권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4부

한반도 核 게임! 南 140만㎾급 원자로 vs 北 조악한 원자폭탄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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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사고로 다가온 행운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4부

2006년 10월20일 웨스팅하우스를 일본 도시바에 합친다고 선언한 웨스팅하우스의 CEO 스티브씨(왼쪽)와 도시바의 아스투토시 니시다 회장.

1979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미국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미국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 그리고 B·W(Bob Cocks and Will Cocks)사가 경수로를 제작했는데, 스리마일 섬 원전은 B·W사가 만든 것이었다. 이 사고로 인해 B·W사의 원자력 부문은 문을 닫았다.

웨스팅하우스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도 일감이 없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 고통은 2위 업체인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에 더 가중되었다. 두 회사 모두 해외 수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때문인지 세계적으로도 원전을 지으려는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이 시기 프랑스와 일본은 원전을 계속 지었지만, 프랑스에는 프라마톰, 일본에는 히타치와 도시바, 미쓰비시 등 그 나라의 원자력 회사가 있으니, 웨스팅하우스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진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때 한국이 원전을 계속 짓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두 회사는 한국시장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 제공을 전제로 영광원전 3·4호기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선수를 치고 나왔다. 미 에너지부 차관을 지내고 이 회사 수석부사장이 된 셀비 브로어(Shelby Brewer)씨가 이창건 박사 등 원자력연구소 관계자들을 만나 “모든 기술을 넘겨줄 테니 우리 회사와 계약하자”고 제의했다. 웨스팅하우스의 오만에 지쳐 있던 원자력연구소 관계자들에게는 눈이 확 뜨이는 제의였다. 아시아 시장 진출을 노리던 프라마톰은 컴버스천 엔지니어링만큼 분명한 제의를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영광 3·4호기 공사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에 돌아갔다.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에게 영광 3·4호기를 맡기면서 한국은 “이후 새로 짓는 원자로는 프랑스처럼 동일하게 하자. 같은 형을 반복해서 건설하면 기술도 습득되고 비용도 내려간다. 원자력발전소 전체 설계는 한국전력기술이, 원자로 설계는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원자로와 터빈발전기 제작은 한국중공업이 맡아 전문화하자”는 중요한 결정도 내렸다.

CE 기술로 만들어진 한국형 원전

그후 원자력연구소에서 수십명의 연구원이 코네티컷 주 윈저에 있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로 날아가 이 회사가 만든 100만㎾급 시스템 80 원자로를 토대로 한 한국표준형원자로를 공동설계하게 되었다. 시스템 80이 100만㎾였으므로 한국표준형원자로도 100만㎾가 되었다.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는 이때 ‘소스 코드’로 통칭되는 원자로 설계 핵심 기술을 한국에 건네주었다.

한국은 프랑스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울진 3·4호기, 영광 5·6호기, 울진 5·6호기,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 등 도합 12기를 영광 3·4호기와 똑같이 지은 것이다. 이 가운데 8기는 이미 완공돼 발전 중이고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 2호기 4기는 공사 중에 있다.(신월성은 경수로로 건설된다.)

영광 3·4호기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중심이 돼 설계한 것이라 국제적으로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의 시스템 80 원자로로 불린다. 그러나 울진 3·4호기부터 신월성 1·2호기까지의 10기는 한국에서 설계된 것이라 한국표준형원자로라는 뜻의 KSNP로 불린다.

기술을 익히려면 6기 정도만 복제하면 되는데 한국은 12기나 제작했으니 기술 자립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건설 단가는 크게 낮아졌다. 그 덕분에 최근 한국은 원자로 수출을 검토할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한국은 전두환 정부 말기인 1987년 컴버스천 엔지니어링과 영광 3·4호기 계약을 체결했다. 영광 3·4호기부터는 논 턴키보다 훨씬 발전해 국내 업체가 주계약자가 되고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은 지원 역할을 맡았다. 한국은 영광 3·4호기가 준공되는 1995년 말 95%의 기술을 자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로써 한국에 6기의 원전을 세운 웨스팅하우스사는 한국시장을 영원히 잃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웨스팅하우스 한국지사장은 한국계 미국인인 Y씨였다. 1987년 정국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6월사태와 6·29선언을 거쳐 연말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여당 후보인 노태우(盧泰愚)씨가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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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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