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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호 특별부록 | 한국의 核주권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4부

한반도 核 게임! 南 140만㎾급 원자로 vs 北 조악한 원자폭탄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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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자력史 속에서 본 한국 원자력史 - 제4부

경수로에 들어갈 MOX연료. 1996년 한국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MOX 연료를 만들려고 준비하다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포기한 바 있다.

그런데 1988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함으로써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펼쳐졌다. 그해 가을 서울올림픽이 끝나자 야당은 과거 청산을 요구하며 5공비리 청문회와 광주 청문회 등을 열었다.

이때 국회에는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주고 영광 3·4호기를 수주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영광 3·4호기를 계약할 때 한전 사장은 박정기(朴正基)씨였다. 박 사장은 대구공고와 육사 13기 출신인데 윤필용 사건 연루 혐의로 중령에서 예편했다. 그리고 종근당에서 일하다 전두환 정부 출범 후 정우개발 사장과 한국중공업 사장을 거쳐 한전 사장이 되었다.

웨스팅하우스의 반격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육사) 후배인 박 사장을 “정기야”라고 부르고, 대통령 전용헬기에 동승시킬 정도로 가까이 대했다. 한전은 박 사장이 재임할 때인 1986년 9월 한국형 원자로 제공회사로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을 결정했으니, 반대세력은 박 사장이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리베이트를 받고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에 사업권을 주었다고 의심했다. 때마침 국회에는 이러한 의심을 갖게 하는 갖가지 자료가 나돌았으므로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의 원자로 도입 건은 5공 비리 청문회의 대상이 되었다.

이어 검찰이 영광 3·4호기 도입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검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박정기 사장은 한국표준형원자로 도입이라는 큰 결정을 내렸다. 이런 까닭에 그는 인도의 핵실험으로 위기에 처한 월성의 중수로 도입을 결정한 김영준 사장과 더불어 한국의 원자력산업을 발전시키는 물줄기를 터준 사람으로 기억된다.



1990년대가 열리자 갑작스럽게 북한 핵문제가 등장했다.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주장해온 북한이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국가가 무너지자 핵무기 개발에 매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시작되었다. 1992년 초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했는데 이로써 한국은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길이 막히게 되었다.

한국 원자력인들의 오랜 꿈은 우라늄을 농축해 핵연료를 만들고, 이 핵연료를 원자로에 태워 꺼낸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얻고, 그 플루토늄으로 다시 핵연료를 만드는 ‘핵주기의 완성’이었다. 이러한 핵주기는 핵무기를 만드는 핵주기와 완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맺은 원자력협정 때문에 핵연료를 만드는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할 수 없었다.

핵 확산금지조약(NPT)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미·러·중·영·불 다섯 나라에 대해서만 핵무기 보유를 인정한다. NPT는 여러 나라가 가입한 다자조약이므로 이 조약 가입국인 한국은 이를 어기며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NPT는 원자력발전을 위한 핵주기 완성은 인정한다. 따라서 양자 조약인 한미 원자력협정만 고치면 한국은 발전(發電)을 위한 핵주기 완성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노태우 정부가 북핵 문제를 풀어보겠다며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는 바람에 이 꿈이 좌절되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핵위기는 계속되었다. 북한은 1993년 동해로 노동미사일을 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위협했다. 미국은 군사적인 제재를 준비했는데, 이에 김영삼 대통령이 반대하고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을 만남으로써, 갑작스럽게 미-북 양자 대화 국면이 만들어졌다. 북핵위기를 통해 북한은 미국과 담판을 벌이는 양자회담 마련에 성공한 것인데,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부장은 이 회담을 통해 제네바합의를 도출했다(1994년 10월).

너무 쉽게 결정된 KEDO 원전 2기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핵 개발을 중지하는 대신 미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만들어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갈루치-강석주 회담이 이 결론에 도달한 데는 한국의 ‘준비되지 못한 오판’이 작용을 했다.

앞에서 설명했듯 당시 한국은 신나게 한국표준형원자로를 짓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은 북한이 조만간 붕괴할 것으로 보고 북한에 한국표준형원자로를 제공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미국측에 제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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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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