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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시론

‘대선의 해’에 쓰는 대통령論

국민이 품위 있게 ‘국민노릇’ 할 수 있기를

  • 한수산 작가, 세종대 교수

‘대선의 해’에 쓰는 대통령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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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의 해’에 쓰는 대통령論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인천의 한 거리에서 청중에게 둘러싸인 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국가 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에 정문으로 출근조차 하지 못하면서 역주행을 해서야 회사로 들어가는 바로 이런 사람을 온갖 억지를 마다하지 않으며 다시 사장에 앉히는 정부에서 대통령이 한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고, 그렇게 생각할 때 2007년 대선의 과제 하나는 분명해진다. 오늘의 걱정을 국민과 함께하고 내일을 위해 국민과 고통을 함께 나눌 대통령이다.

님, 노릇, 질

헤아려보니 나도 어느새 참 많은 대통령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run for the Presidency) 선출되어(be elected President) 취임한(be sworn in as President) 사람이 ‘나, 이 짓 못해 먹겠다’는 나라에서까지 살게 되었다.

우리말에는 재미있는 의존명사나 접사가 있다. 사람, 신분, 행위 혹은 맡은 바 구실 등에 붙어서 그것을 하는 사람에서 그 행위까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내주는 말들이다. 님, 노릇, 놈, 쟁이, 꾼, 질 같은 것들이다.

‘님’은 직분이나 신분 혹은 그 대상을 인격화하여 높인다. 선배님이나 선생님이 그 예다. 근자에 이렇게 격상된 것에는 기사님과 고객님이 있다.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아주 능숙할 때는 ‘꾼’이라는 말이 붙는다. 술꾼이 대표적인 예라면 같은 이유로 정치꾼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도 국회의원꾼이라는 말은 없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 말에 상대를 속된 말로 낮춰 부르는 의미가 덧붙어 상인을 장사꾼이라고 하면 심한 모욕이 된다. 때밀이를 청결사라고 부르는 현실에서는 더욱 가당치도 않다.



나쁘기로는 ‘질’이 제일 아닐까 싶다. 어떤 도구나 신체의 일부분 혹은 명사에 붙어서 그런 일 또는 행위를 의미하는 이 말은 참 널리 쓰인다. 걸레질, 손가락질, 주먹질이 있는가 하면 도둑질에 선생질, 싸움질도 있다. 이런 말들 가운데서도 재미있는 것이 노릇이다. 직업이나 직책에 이 말이 붙을 때는 좀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된다. 군인노릇, 경찰노릇, 선생노릇, 임금노릇이 그렇다.

이 말들에 대통령을 대입해서 대통령질이니 대통령노릇이니 하는 불경을 말할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다만 다음 대선에서 오직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대통령노릇이라고는 비하해도 좋으니 제발 국민이 제대로 국민질도 하고 국민노릇도 해서 국민님으로 격조를 유지할 수 있게 할 대통령이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만찬을 ‘청와대 만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이런 만찬을 ‘a State Dinner’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안다. ‘국가’가 베푸는 만찬인 것이다. 국민은 이런 격조를 그리워한다. 운동권 노래를 합창하며 눈물지었다는 청와대 만찬이 아니라, 국가가 베푸는 만찬에 담긴 격조 말이다. 그 격조야말로 바로 국민의 격조가 되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열광

3선개헌에 반대하던 학생시절의 시위를 제외하고, 나는 대통령선거에 관한 한 ‘내 한 표’ 이외에 어떤 정치적 의사를 표출해본 적이 거의 없이 살아왔다. 그것은 정치적 냉소주의라기보다는 기대하고 열광할 대상을 찾지 못한 내 불행에 더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도 정치적 의사를 거리에서 표출한 적이 있다. 단 한 번, 3김이 격돌한 대선 때 나는 여의도에서 열린 한 후보의 유세에 참석했다가 지지자들과 함께 시청 앞까지 걸은 적이 있다. 한강을 건너, 마포를 지나, 시청 앞이라니. 택시를 타고 가도 먼 그 길을 무슨 정신에 구호를 따라 외치며 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이제 되돌아보면 나는 그때 그 후보가 내건 어떤 상징에 매료되어 있지 않았던가 싶다. 그것은 내 청춘을 그토록 억누르며 어둡게 했던 시대에 대한 분노였고, 그 분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내걸린 ‘군정종식’이라는 상징이었다.

1955년 미국의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42세의 흑인 재봉사 로자 파크스는 비오는 날 퇴근길의 버스에서 올랐다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뒷자리로 가라는 지적을 받는다. 당시 앨라배마에서는 분리평등(separate but equal)이라는 흑백분리 정책에 의해 버스 앞좌석 네 번째 자리까지는 백인만이 앉을 수 있었고 흑인의 좌석은 뒷자리였다. 중간좌석은 백인이 없을 때만 흑인이 앉을 수 있었다. 이를 거부한 로자 파크스는 체포되었다. 이에 격분한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버스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며 381일에 걸친 긴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때 이 운동을 이끈 젊은 목사가 바로 26세의 마틴 루터 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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