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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연세대 퇴임 고별강연

“이념과잉의 시대, 중도개혁으로 ‘불임정치’ 벗어나자”

  • 안병영 연세대 교수·행정학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연세대 퇴임 고별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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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보 모두 중도적 공론의 장으로 다가와야 한다. 중도적 공론의 장으로 다가오라는 것이 자신의 신념과 이념적 지향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며 때에 따라서는 양보를 통해 정치권의 공멸이 아닌 공생을 지향하라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을 바르게 학습하고 실천하라는 것이다.

중도적 公論의 장

정치권은 먼저 자신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필요하다.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의 체제가치에 대한 신념을 더욱 분명히 하고, 아직도 그 안에 잔존하고 있는 몰(沒)체제적 통일관이나, 지나친 대북 편향성 을 떨쳐버려야 한다. 보수진영은 기득권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한신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후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체제가치를 보다 폭넓게 인정하고 서로 앞장서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 사회의 공론형성에 있어 언론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언론매체가 지닌 지나친 이념적 편향성은 합의문화 형성과 중도적 공론 형성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방송과 신문의 대결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편향적 언론은 담론구조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국론을 분열시킨다. 이미 정해진 자신만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언론에 사회적 공론의 형성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길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대신할 그 어떤 기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언론은 사실과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정론(正論)을 펼쳐야 한다. 미디어의 정론 회복 없이 중도개혁정치의 내일은 어둡기 그지없다. 언론이 언론의 사명을 다하기를 기대해본다. 민주화가 진척될수록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강화된다. 바람직한 시민단체의 대(對) 정부관계는 사안에 따라 공공성의 차원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창조적 긴장관계’이다. 그러나 시민단체가 정치권력에 동원되거나, 그와 야합할 때, 혹은 시민사회 내부에 첨예한 이념갈등이 빚어지는 경우, 공론 형성의 기반은 오히려 약화된다. 무엇보다 시민운동의 ‘포퓰리즘’과 접목하는 것은 자칫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로 전락할 위험을 가중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단체는 어떤 계층이나 집단 혹은 정파와의 이해관계를 넘어 민생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데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역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비판적 지성’의 존재는 중도통합적 개혁정치의 요람이다. 그런데 지성계(知性界)도 양극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념갈등 속에 장기적 역사조망과 공공선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지성계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지성계가 좌우로 극명하게 나뉘어 실명을 거론하며 상호 비판하는 현상마저 목도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적 지식인들이 함께 사상적·학문적 대화를 나누는 변변한 지성지 하나 없는 우리 지성계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암울했던 1950~60년대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사상계’가 그리울 뿐이다.

국민의 힘은 위대하다. 한국 민주주의 정치 발전의 금자탑인 4·19혁명이나 1987년 6월 항쟁의 성공도 국민의 힘이 뒷받침됐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주기적으로 이념적 지향을 좌측으로 되돌리곤 했다. 1920년과 1928년 총선에서 일부 산업의 국유화를, 1946년과 1948년 총선에서는 계획경제를, 그리고 1976년 총선에서는 임노동자 기금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지지율의 급격한 하락을 가져왔고, 1976년에는 아예 권좌에서 밀려났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장기간 중도통합적 개혁정치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국민의 정치적 예지와 균형감각에 힘입은 바 크다. 미국도 최근의 상·하원 선거에서 많은 국민이 공화당 지지를 철회해 부시 행정부의 지나친 보수 편향에 제동을 걸고, 미국을 다시 중도의 길로 되돌리게 했다.

이처럼 국민은 대중민주주의 시대에 정치변화의 마지막 조정역을 맡고 있다. 따라서 위대한 우리 국민은 정치가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좌절감을 되씹기보다는 스스로의 주체적 정치역량의 제고를 통해 한국정치의 거시적 트렌드를 주재해야 할 것이다.

이념정치를 민생정치로

이제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마음의 창을 열고, ‘완승’을 기대하기보다 ‘윈윈 게임’을 겨냥하며 상생(相生)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자면 그들은 스스로 관념의 웅덩이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며, 중간지대로 다가서야 한다. 이들이 움직이면 침묵하던 다수도 스스로 부상(浮上)한다. 그러기 위해서 과도한 거품을 거두고, 민생의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필자는 세계 현대사 연구에서, 그리고 필자 자신의 정책운영과정에서 ‘중도에 서면 해답이 보인다’는 명제를 터득했다. 그것은 대단한 발견이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인 결론이다. 그러나 이 상식적 명제는 이념정치를 민생정치로 옮겨놓는 묘약이다. 정치가 이념싸움을 거두고 교착정치에서 벗어나면, 체제개혁도 정책개혁도 가능해진다. 정치가 이념의 웅덩이에 빠져 있는 한, 체제개혁은 고사하고 이렇다 할 정책논의조차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연세대 퇴임 고별강연
안병영

1941년 서울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석사(행정학), 오스트리아 빈 대학 박사(정치학)

교육부 장관(1995.12~1997.8, 2003.12~2005.1)

現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저서 : ‘현대 공산주의 연구’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변론’ ‘한국정치론’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 등


가장 바람직하기는 정치세력이 스스로 중간지역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언론과 시민사회가 그것을 부추기며 동행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대선이 가까울수록 이념논쟁은 더욱 격화될 공산이 크고 불임정치는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것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침묵했던 중도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민 또한 대선에서 마지막 조정역을 맡을 수 있을지언정, 정치와 정책과정을 현장에서 주재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치인들이 이제 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식인과 언론이 더 이상 이념적 갈등을 악화시켜서는 안 되며, 중도적 가치 속에서 중심을 잡고 정치인들을 중도의 길로 안내해야 한다. 우리 국민 스스로도 보다 주체적으로 공공의 발전을 위한 정치참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치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 민심의 바다만큼 두려운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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