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호

건설관리 전문기업 한미파슨스 대표 김종훈

“아파트 분양가 잡으려면 ‘메기’를 투입하라”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7-01-08 10: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건설관리 전문기업 한미파슨스 대표 김종훈
    “끝을 모르게 치솟는 아파트 분양가를 잡을 수 있다.”

    귀가 솔깃했다. 김종훈(金鍾勳·58) 한미파슨스 사장을 만나기 전, 이 회사에서 미리 전해준 자료에 이런 주장이 들어 있었다. 건축공사비를 절감하면 분양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골자인데, 그 방법이 궁금했다.

    한미파슨스는 사업주를 대신해 프로젝트 기획부터 설계, 시공자 선정, 유지보수까지 모든 건설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업체. 건설사업관리(CM) 분야에선 세계 18위(세계적인 건설 전문지 ENR 선정, 미국 기업은 제외)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 만큼 평범한 대안은 내놓지 않을 것 같았다. 김 사장을 만나자마자 거두절미, 단도직입으로 아파트 분양가 잡는 법부터 물었다.

    “선진국에선 미쳤다고 할 겁니다”

    ▼ 아파트 분양가 폭등의 주범은 누구입니까.



    “아파트 원가는 크게 보면 땅값, 건설비, 설계 감리비 그리고 유통비 로 나뉩니다. 요즘 시민단체에선 아파트 분양가 폭등이 건설업자의 폭리 때문이라고 비난하지만, 전체 원가 중 건설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30~40%에 불과합니다. 땅값에도 버블이 있고, 시행자로 불리는 디벨로퍼(developer)들의 큰 마진도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주요 원인입니다.”

    ▼ 분양가를 공개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택지비가 부풀려지는 것을 막고, 건설사나 시행사의 지나친 마진을 축소하는 부분적인 효과는 거둘 수 있겠죠. 그러나 이는 부분적, 피상적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에 불과합니다.”

    ▼ 그렇다면 분양가를 근본적으로 낮출 비결이 있습니까.

    “건설비를 낮춰야 합니다. 건설비엔 자재비나 인건비 같은 직접원가, 그리고 공사기간에 영향을 받는 간접노무비, 각종 경비, 금융비용 같은 간접원가가 있어요. 둘 다 줄여야 하는데 우리 건설업체들은 이런 노력을 소홀히 했어요. 김대중 정부 때 카드 버블, IT 버블, 부동산 버블이 일었죠. 건설업체들은 1997년 금융위기 때 잠시 어려웠지 그 뒤론 호황을 누렸어요. 깃발만 꽂으면 주택을 지을 정도로 사업이 잘됐습니다. 이렇다보니 원가와 공기(工期)를 줄이고 품질 경쟁력을 높일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어떻게 하면 분양가를 높여 이윤을 많이 남길 궁리만 했던 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거리에서 흔히 보는 모델하우스가 얼마나 호화판인 줄 아세요? 적게는 몇 십억, 많게는 몇백억원씩 들여서 짓습니다. 선진국에선 미쳤다고 할 겁니다.”

    ▼ 선진국에는 모델하우스가 없습니까.

    “있죠. 하지만 우리처럼 평형대별로 만들어놓고 야단법석을 떨진 않아요. 그저 기본 평면구성이나 자재 샘플을 보여주는 게 다죠. 건설업체들은 모델하우스 비용이야 얼마가 됐던 이미 분양가에 포함돼 있으니, 분양만 성공하면 비용이 회수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 비용은 소비자가 부담하고요.”

    ▼ 우리나라 건설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건물가격은 물론 건설비도 일본보다 비쌉니다. 심지어 인건비도 더 비쌉니다. 1980년대만 해도 일본과 한국의 건설 물가는 환율을 무시하고도 비슷했어요. 일본에서 100엔이면 우리도 100원 했어요. 우리가 7∼8배 쌌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더 비쌉니다.”

    ▼ 왜 그렇게 됐다고 보십니까.

    “일본은 버블이 붕괴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합리화단계로 들어갔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혁신이 일어났어요. 발주나 설비제작에 대한 합리화 작업이 일어났고, 글로벌 소싱으로 전세계에서 값싼 자재를 구매하고 있어요. 인건비도 떨어졌고요.”

    ‘한국은 3년, 미국은 11개월’

    ▼ 한국은 아직 주택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선진국의 주택보급률을 따라잡으려면 500만채를 더 지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니 당분간 국내 건설업체의 원가 절감 노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여건이 달라지고 있어요. 사실 수도권만 주택이 부족하지, 지방에선 미분양 사태가 일어나고 있어요. 제도적인 변화도 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후분양 제도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바람직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요인이 많이 작동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개발업체나 건설업체가 건물을 빨리 그리고 싸게 짓게 됩니다. 이게 건설산업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지금은 어떤 줄 아세요? 30층짜리 아파트를 짓는 데 한국은 3년이 걸려요. 미국은 11개월이면 짓습니다.”

    ▼ 한국이 빨리 짓는 데는 ‘도사’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우리 건설업체들의 공기에는 개선할 여지가 많아요. 이게 다 돈인데 말이죠. 한국에선 공기를 단축한다고 하면 부실공사를 떠올리는 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품질은 확보하면서 최적화된 공정관리계획, 공법의 개선, 작업 생산성 및 효율성 제고를 통해 공기를 단축하는 거죠.

    건설업 선진국인 미국에선 1960년대 이후 건설사업관리(CM)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그전엔 공사비를 높이기 위해 건설업체가 설계변경을 요구하고 저가의 하도급 때문에 하자가 생겨도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소송이 늘어나는 등 문제가 많았어요. 이 때문에 공사기간도 늘어났죠.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CM이라는 새 제도가 나온 겁니다. 건설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주자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사업관리를 맡을 대리인을 고용했어요. 대리인을 통해 설계자와 시공자를 리드하며,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유지관리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한 거죠.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미국 건설산업 전반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어요. 발주자는 자신과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건설회사에 건설 전반을 맡기는 ‘일괄도급방식’에서 탈피합니다. 발주자로부터 공사 책임을 맡은 CM회사는 전체 공사를 수십개의 패키지로 분할해, 패키지별로 전문성을 갖춘 중소규모의 업체들에게 공사를 맡겼어요. 이를 통해 공사비를 절감하고, 품질을 향상하고, 공기를 단축했죠.”

    ▼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입니까.

    “사업 초기단계부터 관여하니까 최적의 설계도면이 나옵니다. 이 설계도가 시공단계부터 실제 건축물로 드러날 때까지 적극적으로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일 뿐 아니라, 10∼20%에 달하는 대형 건설업체의 관리비와 이윤을 배제할 수 있어요. 미국에선 CM업체에 4∼5%의 용역비를 지급하고도 10∼13%의 사업비를 절감하는 계약방식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몸 팔던 시대’는 끝났다!

    ▼ 한국에도 건설사업관리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은 1997년부터 도입했는데, 이 제도의 핵심인 분할 발주를 국가계약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요. 건설사업관리업체가 다수의 중소업체에 공사를 분할 발주해야 건설비를 줄이고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는데, 이게 막힌 거죠. 국내 전문건설업체는 대부분 대형 건설업체로부터 하도급을 받습니다. 실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하도급 업체들이죠. 이들의 경쟁력이 한국 건설업의 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형 건설업체들이 이익을 독식하다보니 전문건설업체의 경쟁력이 높아지질 않습니다.

    분할 발주가 가능하다면 전문건설업체의 성장과 발전을 유도할 수 있어요. 발주자와 직접 계약하면 공사의 책임을 전문건설업체가 지게 됩니다. 책임의식이 높아지죠. 또 기술적, 재무적 관리능력을 배양해 전문성을 높일 수 있어요.”

    ▼ 중소규모 건설업체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것은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대안일 것 같습니다.

    “가장 실질적인 육성책은 이들을 고용해서 쓰는 일반 건설업체의 마인드를 바꾸는 겁니다. 전문건설업체에 지급하는 하도급 금액을 줄여야 이윤이 증가된다는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건설관리 전문기업 한미파슨스 대표 김종훈

    한미파슨스가 국내 처음으로 CM제도를 도입해 건립한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 한국 건설 산업의 경쟁력은 어느정도 입니까.

    “국내 건설업체의 경쟁력은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양적, 질적으로 따져도 국내 건설업체 중 세계 50위권에 드는 업체가 단 한 곳도 없어요. 조선업은 세계 1위부터 7위까지 한국이 독차지하잖아요. 한국 건설의 역사로 보면 세계 10위권에는 들어가야죠.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게 해외건설 수주금액입니다. 올해 들어 해외공사 수주가 많이 회복됐다고 하지만 대부분 플랜트지 건설이나 토목은 적어요. 지난해 겨우 20억달러를 넘었어요. 1980년대 우리 건설업이 해외에서 140억달러를 수주했어요. 지금은 20억달러로 줄었으니, 완전히 거꾸로 간 겁니다.”

    ▼ 원인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해외 지향적이지 못했어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현대건설만 해도 해외 물량이 매출의 80%를 차지했어요. 지금은 많아야 10%나 될까요. 국내 업체들이 해외진출을 꺼리는 것은 해외에 위험 요인이 많은 탓이죠. 한 프로젝트에서 1억~2억달러 적자 본 사업이 많았어요. 이렇다보니 해외에서 신뢰를 잃고 입찰에서 번번이 떨어졌어요. 이 때문에 월급쟁이 사장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로 나가기보다 국내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지 않아도 국내 시장은 호황이었으니까.

    해외 시장이 한국 업체에만 불이익을 줬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요. 선진국 업체들은 이런 환경에서도 잘 견뎌냈어요. 그만큼 경쟁력이 있는 거예요. 그 차이가 뭐겠습니까. 예전의 해외공사는 그야말로 몸 팔던 공사였어요. 한국의 저임 노동자들 데리고 나가면 돈 벌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니지먼트 시대예요. 현지 업체를 거느리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합니다. 현지 인력을 관리하는 노하우도 있어야 하고요. 설계능력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요소가 굉장히 중요해졌어요. 그런 노력을 소홀히 했으니 해외 가기가 두려운 것이 당연하죠.”

    ▼ CM제도가 건설비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기존의 일괄도급방식은 계약관리, 하도급업체 선정 등을 투명하게 하지 못하는 구조였어요. 이 때문에 한국의 건설산업은 속을 알 수 없는 ‘블랙박스’라고 하지 않습니까. CM제도를 통해 분할 발주하면 프로젝트를 수십 개로 분할하기 때문에 공사 참여자들이 공사원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한 명을 속이기는 쉽지만 수십 명을 속이기는 어렵잖아요. 결국 공사비를 투명하게 집행할 수밖에 없죠. CM제도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아니지만 투명성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됩니다.”

    ▼ 한국 건설사업관리(CM)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3000억원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한미파슨스가 20∼30%를 차지합니다. 3000억원이라는 게 용역비용이니까 작게 느껴지지, 건설비로 환산하면 10조원은 됩니다. 우리나라 건설물량이 한해 100조원이니까, 그중 10%는 CM으로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특히 중요한 프로젝트에 CM이 적용되고 있어요.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 건설업은 ‘블랙박스’

    ▼ 한미파슨스는 어떤 프로젝트에 CM을 적용했습니까.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공사에 국내 처음으로 CM을 도입했어요. 외국계 할인점 공사도 많이 맡았어요. 100개가 넘을 겁니다. 경남 사천의 던힐 담배공장은 땅 사는 것부터 우리가 맡았어요. 지금은 여의도에 초대형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 두 개를 맡고 있어요. 한 건물은 이미 착공했는데, 완성되면 72층짜리 국내 최고층이 될 겁니다.”

    김 사장은 건설업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건설업은 건설과 용역으로 나뉩니다. 설계나 엔지니어링을 용역이라고 하는데, 사회에서 이들을 대접하는 게 시원치 않아요.

    설계비도 형편없이 낮습니다. 이들이 대우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건설산업에서 소프트웨어는 용역을 맡는 업체인데, 산업이 발전하려면 소프트웨어가 발전해야죠. 디자인 실력이 없으면 제품이 팔리지 않잖아요.”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