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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는 이렇게 당했다”

촛불쇼, 바나나쇼, ‘인간 다트’… 생리 때는 솜 틀어막고 관계 강요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성매매 여성들의 절규 “우리는 이렇게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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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다면’

‘사랑’이라는 가명의 이 여성은 방송국 분장사를 꿈꾸며 분장학원에 다녔지만 ‘고졸’ 학력을 극복할 수 없었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친한 친구와 함께 운영하던 장안동 카페도 접고 쉬다가 우연찮게 상계동의 룸살롱 마담으로 취업해 지난 10년을 유흥업소에서 보냈다.


1996∼98년에는 심야영업 제한시간으로 인해 자정까지만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을 닫은 채 불법으로 장사를 계속했고, 아가씨들 중엔 미성년자도 꽤 있었다. 업주들은 미성년자를 선호했다. 나이 먹은 아가씨보다 ‘영계’가 더 좋다고 했다.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미성년자를 특별대우하기까지 했다. 고등학생도 있었는데, 밤일이 끝나면 우리 집에서 재운 뒤 아침에 학교에 보냈다. 처음엔 몇 번 집에 돌려보냈는데 결국 다시 돌아와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사장에게 받는 월급 외에 아가씨들로부터 수입의 10%를 받았다. 20대 중반이 무엇을 해서도 갖기 어려운 엄청난 수입을 올렸다. 월 평균 800만∼900만원. 물론 그중 절반은 아가씨 관리비로 나갔다.

그러다 업주를 잘못 만나 문제가 생겼다. 아가씨들에게 2차비와 티켓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내가 사장 대신 돈을 줬는데, 그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난 ‘돈 떼어먹는 마담’이 되어버렸다. 급기야 사장이 내 3개월치 월급마저 떼어먹고 도주해버렸다. 20명이 넘는 아가씨를 두고 도망치듯 서울을 떠났다.



법 아닌 법, ‘성구매자 사인증’

2000년, 계속 놀고 있을 수가 없어 다시 마담 일을 하기 위해 안산으로 갔다. 안산은 정말 ‘성매매의 천국’이었다. 2차 행각이 서울과 비교도 안 되게 유별났다. 안산도 ‘지방’이라는 인식 때문에 빚이 많은 아가씨들이 몰려 있었다. 아가씨들의 선불금은 보통 2000만∼3000만원이었다. 선불금이 많다는 이유로 아파도 쉬지 못하고, 매일 2차를 2∼3번은 나가야 했다. 그런데 술 마시고 노래하고 2차까지 다녀오려면 적어도 3∼4시간이 걸렸다. 한 손님방에서 일이 끝나면 기다리고 있는 다른 손님 테이블에 가서 술 마시고 2차 나가고, 끝나면 또 다른 테이블에 가서 술 마시고 2차 나가고…. 한 모텔에 손님이 두어 명씩 기다리는 ‘따블’은 기본,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안산의 아가씨들이 힘들어한 것은, 웃기지도 않는 ‘성구매자 사인증’이었다. 당시 안산엔 손님이 2차를 끝내고 사인증에 사인을 해야 2차가 인정되는 법 아닌 법이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관리 못하면 능력 없는 마담으로 비치기 때문에 나는 아가씨들에게 지킬 건 지키라면서 사인증을 강조했다.

사장은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나 힘 좀 쓴다는 고위공직자들을 상대로 아가씨들이 낮에 눈에 띄지 않게 성매매할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대개 드러나지 않게 술자리를 만들고 아가씨들을 들여보냈다. 아가씨들은 접대할 남성들이 관공서 직원인 것을 모르고 룸에 들어갔다. 그 사실은 마담인 나와 업주만 알고 있었다.

안산에서 일할 땐 월급 없이 매상의 20%가 내 몫이었다. 친한 손님에게 외상술을 줬다가 술값을 못 받으면 고스란히 내 빚으로 쌓였다. 어떻게든 빚을 줄이려면 매상을 올리고, 아가씨들을 2차로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갈수록 남성의 요구사항이 극으로 치달았다.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는 1∼2시간 관계를 하고도 사정을 못했다는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했다. 정말 남자라는 동물이 역겨웠다.

손님들은 2차에서 아가씨의 행동이 비위에 거슬리면 나를 여관방으로 불러댔다. 부끄럽지도 않은지 홀딱 벗은 채로 아가씨들이 너무 성의 없이 관계를 한다며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소리 지르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저녁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남자도 많았다.

2차를 나가면서 일행이 서로 파트너를 바꾸기도 하고, 사정할 때까지 입으로 해달라고 하거나 항문으로 관계를 하는 손님도 너무나 많았다.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여자를 골라달라는 손님도 있었고, 비아그라 준비는 마담의 에티켓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나는 아가씨들에게 어떤 방어막도 되어주지 못했다. 아가씨들은 선불금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든 일하며 2차를 견뎌야 했고, 난 나대로 외상값을 줄이기 위해 손님을 불러들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검찰, 경찰, 의원, 구청 직원 중 누구라도 한 명 온다는 날엔 업소에서 내로라하는 아가씨를 여러 명 대기시켰다. 데리고 노는 아가씨 따로, 2차 가는 아가씨 따로인 경우도 많았다. 이미지 관리 때문에 2차는 모텔로 가지 않고, 그들의 전용 오피스텔로 갈 때가 많았다. 그렇게 지명당한 아가씨들에게 좋은 기억은 없다. 고위층 사람들은 대부분 ‘공짜’로 관계를 맺었고, 오히려 내 손을 거쳐 그들 주머니로 들어간 봉투가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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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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