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파워우먼과 명품 브랜드, 그 은밀한 교감

‘아르마니 입은 좌파’ ‘프라다 입은 악마’…

  • 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parisstyle@naver.com

파워우먼과 명품 브랜드, 그 은밀한 교감

2/5
파워우먼과 명품 브랜드, 그 은밀한 교감

조르지오 아르마니 브랜드 아이덴티티
* 장 노엘 카페레의 ‘아이덴티티 프리즘’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적용한 모형.

유럽의 경제사회연구원(RISC)이 최근 미국, 유럽, 일본의 성인 1만85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이 갖기를 꿈꾸는 럭셔리 브랜드가 뭐냐”고 물었다. 조사 결과 미국과 유럽에서 압도적인 다수가 아르마니를 꼽았다. 미국에서는 시계 브랜드 롤렉스, 보석 브랜드 티파니에 이어 3위에 올랐고, 유럽에서는 샤넬, 디오르, 입셍로랑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아르마니가 이미지의 메신저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내는 것은 그만큼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일 펠로시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브랜드의 정장을 입었더라면 그 스타일이 아무리 멋있었다 한들 이처럼 널리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르마니 수트가 왜 전문직 여성의 자존심을 지키는 ‘갑옷’이 됐는지 알아보려면 디자이너 아르마니와 여성 기성복의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마니는 20세기 여성 기성복에 큰 영향을 끼친 디자이너를 꼽을 때 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다. 1934년생인 그는 1975년 자신의 이름을 딴 남성복 라벨을 만든 지 1년 만에 여성복 라인을 만들면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는 남성복 정장의 기능적, 해부학적 균형을 바탕으로 여성의 몸에 더 잘 맞고 여성이 활동하기 좋은 디자인의 정장을 고안했다.

아르마니의 여성복 정장이 인기를 끈 것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여성의 사회 진출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활발하게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과 더불어 남성복을 여성의 비즈니스 수트에 접목한 이 시도가 여성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이다. 당시 여성 정장은 ‘파워 수트’로 불렸다.

아르마니의 여성복 정장에서는 남성 특유의 자신감과 함께 약간의 거만함이 묻어난다. 이 옷을 입은 여성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성공한 남성만큼의 카리스마를 자랑하거나, 자랑할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준다.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여성의 갑옷 노릇을 하는 것이다.



고상함 속에 숨은 관능

필자는 2005년 밀라노의 아르마니 본사를 방문해 경영진으로부터 브랜드와 경영 전반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르마니 브랜드 가치의 절반 이상은 디자이너 자신의 카리스마에서 기인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르마니를 사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디자이너 아르마니의 카리스마와 그 카리스마가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이라는 이미지를 산다는 것이다. 밀라노의 아르마니 카페에서 마주친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게선 백발이 성성한 단구(短軀)의 노인임에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는데, 이런 이미지 자체가 브랜드 가치와 직결된다는 것이 많은 패션 전문가의 분석이다.

각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할 때 여러 비즈니스 스쿨이 사용하는 모델은 프랑스의 마케팅 분야 석학인 장 노엘 카페레가 고안한 ‘아이덴티티 프리즘’이다. 아이덴티티 프리즘은 육각형을 이루는 여섯 개의 선분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각 선분은 ‘외면적 특성(physical)’ ‘개성(personality)’ ‘문화(culture)’ ‘사용자 이미지(reflection)’ ‘자아 이미지(self image)’ ‘관계(relationship)’를 뜻한다(다음쪽 표 참조).

특히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아이덴티티 프리즘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자주 케이스 스터디용으로 활용될 만큼 독특하다. 아르마니 여성복의 사용자 이미지(‘이 브랜드의 옷을 입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어떤가’에 대한 답변)는 세련됨(sophistication)과 고상함(sober)으로, 자아 이미지(‘내가 이 브랜드를 입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표출되는가’에 대한 답변)는 ‘높은 사회적 지위’ ‘성공한 여성’으로 각각 분석돼 일관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브랜드의 개성을 규명해보면 지적이고 잘 다듬어진 이미지(sophisticated)와 함께 관능성(sensuality)’을 발견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정장이나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성에게서 성적 매력을 발견하는 남성들의 심리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아르마니 여성복의 이 같은 이중적 이미지는 이 옷을 즐겨 입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아르마니를 좋아하는 여배우로는 조디 포스터, 미셸 파이퍼와 함께 이들과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마돈나, 비욘세 등이 꼽힌다. 영국 패션 브랜드 버버리의 전설적인 여성 CEO 로즈 마리 브라보 또한 아르마니 수트를 즐겨 입었다. 그는 “아르마니 수트는 여성들로 하여금 강해 보이면서도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수트는 약점을 커버해주고 우아함을 극대화한다”고 했다.

2/5
김현진 패션 칼럼니스트 parisstyle@naver.com
목록 닫기

파워우먼과 명품 브랜드, 그 은밀한 교감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