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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⑫

‘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허무와 절망 넘어선 ‘극기적 긍정’의 미학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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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뉴베드퍼드에 있는 고래잡이 박물관.

추방자, 방랑자, 아웃사이더

이스마엘은 누구인가. 그는 24만 단어에 이르는 이 방대한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이다. ‘모비딕’은 곧, 스물한 살 난 이 젊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모비딕’은 간단히 말해서 피쿼드라는 고랫배에 승선, 태평양으로 출어했다가 ‘모비딕’이라 불리는 거대한 흰고래에 받쳐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그것을 포획하고자 하는 광기 어린 집념에 사로잡힌 선장을 비롯해, 다른 모든 동료 선원들이 사망한 가운데 혼자 살아남은, 스스로 이스마엘이라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한 젊은이의 체험담이다.

달리 말해 이스마엘은 홀로 살아남아서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세상에 전하는 전형적인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이스마엘은 가령 그런 양식의 하나인 ‘천일야화’ 화자 셰헤라자데처럼 이야기의 뒷전에 물러나 있는 화자는 결코 아니다. 그는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끊임없이 그것을 분석하고 논평하고 종합해 자신의 이야기로 변용한다.

물론 소설의 전경을 차지하는 것은 카리스마적인 선장 아합과 흰고래 모비딕의 대결 드라마이다. 그래서 ‘모비딕’의 주인공으로 흔히 아합이나 흰고래 모비딕을 지목해왔다. 그러나 이질적 경험과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통어하는 의식으로서 이스마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평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이런 점에서 소설의 진정한 중심은 아합이나 모비딕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고 주장한다.

왜 이스마엘인가. 멜빌은 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화자에게 성경에서 따온 이스마엘이란 이름을 부여했을까. 창세기에 나와 있듯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서자이다. 본처 사라의 박해를 피해 그는 어머니 하갈과 함께 집을 떠나 각지를 방랑한다. 그는 추방자요 방랑자이며 아웃사이더이다.



소설 속의 이스마엘 역시 계모 밑에서 고아나 다름없이 자라난 인물이다. 그에겐 가정도 어머니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웃사이더로서 절망적인 소외감에서 선택한 여정이기에 이스마엘은 피쿼드호의 선상에서 일어나는 삶의 현실을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렵고 위험스러운 것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삶의 조건으로 바라보게 된다.

삶과 죽음, 세속적인 것과 천상적인 것, 광기와 이성을 ‘평등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자세, 이것이 험난한 고래잡이 여정에 나선 젊은 이스마엘의 삶에 대한 태도요 소설가 멜빌이 스스로 다짐한 마음가짐이었다.

10시가 되자 ‘뱃사람들의 교회’와 박물관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먼저 교회를 둘러보기로 했다. 늙수그레한 관리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낸 이스마엘이 이튿날 아침, 거리를 구경하고 맨 먼저 찾은 곳도 바로 이곳이다. 멜빌은 인도양이나 태평양으로 출어하는 고래잡이 선원들 중 마음이 울적한 사람은 대부분 일요일 이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바닷길을 떠났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고래잡이들의 교회(Whaleman’s Chapel)’라 한다.

1층의 로비에는 교회의 연혁과 주요 활동상을 담은 화보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붙임성 좋은 관리인은 안내책자를 건네며 교회의 역사를 설명해준다.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은 1832년. 당시 고래잡이로 번창하던 뉴베드퍼드 항에 드나드는 5000여 선원을 교화하기 위해 뉴베드퍼드 항구협회가 주동이 되어 모금한 기금으로 세운 것이다.

모비딕의 혼을 담은 교회

멜빌 생전에 이미 ‘모비딕’으로 친숙해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40년 멜빌이 방문했던 교회는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 1866년에 불이 나고 다시 지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2층 본당의 설교단을 모비딕에 묘사된 대로 배의 앞머리 모양으로 개조한 것. 현실이 예술을 모방한 것이다. 그밖에 지붕에 탑을 세워 교회다운 모습으로 밖을 치장하고 이층 본당으로 오르는 계단을 안에 설치해 편리함도 도모했다.

2층의 본당은 소박하고 아담했다. 선수 모양의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로 배열된 네댓 줄의 좌석이 전부이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예배를 보고 있으나, 매월 셋째 일요일과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축일에만 한정되어 있고, 주말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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