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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혁명’ 꿈꾼 5·16, 정권탈취와 민주압살로 귀결

  • 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학 ym789@hanmail.net

‘구국의 혁명’ 꿈꾼 5·16, 정권탈취와 민주압살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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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혁명’ 꿈꾼 5·16, 정권탈취와 민주압살로 귀결

5·16군사정변에 참여한 군인들이 경복궁에 모여 무희들의 위문공연을 즐기고 있다(1961년 5월29일).

구조적 원인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군부 지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기적 원인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1961년 당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났더라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장면 정부가 학생과 군부 등 폭발적인 세력을 통제하고 정치적 안정을 이뤘더라면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장면 정부에 이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따라서 군부 쿠데타가 1961년의 시점에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전 혹은 이후의 가까운 시간에 일어났을 개연성은 매우 컸다. 당시의 사회정치적 구조, 특히 군부와 민간집단 사이의 힘 관계를 볼 때 그렇다.

달리 표현하면, 광복 이후 한국 정치사의 전개에서 민간세력과 군부세력의 대결, 또는 이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민주세력과 권위주의 독재세력의 대결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광복 이후의 한국 정치사는 이를 중심으로 한 힘겨룸으로 형성됐다.

국민의 방관과 침묵

일단 쿠데타가 시도된 후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들이 필요하다. 이는 쿠데타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 사이의 힘의 균형과 힘의 행사에 따라 결정된다.



구체적으로 국민의 대규모 저항이 있거나 현직 정부를 지지하는 군 부대의 쿠데타 진압 작전이 있을 경우, 쿠데타는 실패하거나 성공하더라도 상당한 정치 군사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또 강대국의 강한 영향 아래에 있는 약소국의 경우, 강대국이 명백하고 단호하게 쿠데타에 반대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이때 강대국의 의사는 쿠데타가 발생한 지역에서 자신이 가지는 여러 가지 국가 이익에 대한 고려에 따라 결정된다.

5·16군사정변의 경우 국민의 저항도 없었고 쿠데타 진압군도 동원되지 못했다. 현직 민간 정부는 쿠데타를 저지할 능력이 없었을뿐더러 그렇게 할 뚜렷한 의지도 지니고 있지 못했다. 또한 처음에는 쿠데타를 반대했던 미국도 군의 권력 장악이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굳어지자 현상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쿠데타가 일어나자 국민은 적극적인 지지도 적극적인 반대도 없이 침묵하고 방관했다. 적극적인 지지가 없었던 것은 민간 우위의 정치·문화적 전통하에서 군부의 집권이라는 것이 일반 국민에게 생소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반면 민주당 정부하에서의 사회정치적 혼란은 국민이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가 오기를 희망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실제로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 1961년 봄부터 이미 ‘4월 위기설’을 위시해 쿠데타와 관련한 풍문이 나돌고 있었다. 따라서 정작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국민은 체념(또는 안도?)했는지 모른다. 국민은 대체로 군의 개입을 필요한 조치로 받아들였으나, 이를 오직 일시적인 치유로 간주했다.

쿠데타에 대한 현직 민간 정부의 태도는 또 한번 무능과 무책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장면 총리는 5월16일 새벽 쿠데타 발발 보고를 받고 수녀원으로 피신해 이틀 동안이나 나타나지 않았다. 쿠데타와 반(反)쿠데타의 숨 막히는 순간에 행정수반이 잠적함으로써 쿠데타군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다. 쿠데타에 강력하게 반대한 유일한 세력인 미국은 한국의 행정수반을 찾지 못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장면의 피신, 윤보선의 체념

윤보선 대통령은 쿠데타의 주역들이 방문했을 때 “올 것이 왔구나!”라는 탄식으로써 이를 인정했다. 실제로 장면과의 파벌 다툼에서 승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윤보선은 쿠데타를 지지했을 뿐 아니라 은근히 이를 바랐을는지도 모른다. 그는 매그루더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야전군을 출동시켜 쿠데타군을 진압하자고 강권했을 때도 내전을 피한다는 구실로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군 출동 금지 서한을 야전군 사령관들에게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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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한림대 교수·정치학 ym78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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