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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화의 변용과 가공의 현장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 민병훈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중앙아시아사 bhmin@museum.go.kr

문화의 변용과 가공의 현장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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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삶과 종교’에 게재된 여덟 편의 논문은 모두 최신의 발굴성과와 이를 토대로 한 치밀한 연구 성과를 반영한 수작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근년에 학계와 일반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실크로드의 국제상인 소그드인과 그 문화에 대한 연구결과, 그리고 밸러리 핸슨 교수가 지적한 실크로드의 무역 기능이 실크로드 지역주민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라고 하겠다.

소그드 문화의 실체

근년에 중국의 간쑤성, 닝샤회족자치구, 산시(陝西)성, 산시(山西)성 등 각지에서 잇달아 출토되고 있는 소그드 관련 발굴성과는 구 소련시대에 행해진 파미르 이서의 중앙아시아 지방의 발굴성과와 더불어 소그드 문화의 실체를 밝히는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소그드인은 실크로드의 움직임이 절정에 달한 중국 당대를 중심으로 실크로드의 요충에 집단 거주지를 이뤄 국제무역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무역 이익을 독점했으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한국문화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관련 논문이 향후 이 분야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와 소개의 기폭제가 될 것을 기대해본다.

밸러리 핸슨 교수의 주장은 이미 과거에도 일본 교토대 마노 에이지(間野英二)에 의해 제창되어 학계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신(新) 실크로드론(論)’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특정 지역사회나 경제의 성격에 대하여 잔존하는 문서를 통해 이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과연 이러한 문서가 어떻게 남게 됐는지 그리고 어떤 성격을 띠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잔존 문서는 당시 사회의 일정한 현상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 일상적인 무역형태 등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는 것이 보통이다. 밸러리 교수도 지적하듯, 투르판 출토문서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을 통해 당시의 소그드인들이 국제무역에서 크게 활약했다고 추정하지만, 현존하는 다량의 소그드어 문서 대부분은 종교문서를 중심으로 한 단편에 지나지 않아 소그드어 문서를 통한 그들의 국제무역 활약상을 재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당시의 실크로드 무역 기능이 미미했다거나 실크로드 무역이 오아시스의 성쇠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주장은 너무나 성급한 것이다.



베제클릭을 비롯한 투르판의 석굴사원 조성과 운영은 벽화에 공양자의 모습 등으로 남아 있는 소그드 상인들이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축적한 부를 종교시설에 환원했기에 가능했으며, 부유한 무역인인 소그드인의 모습을 다양한 형태의 인형으로 만들어 묘실에 납입함으로써 죽은 자가 저승에서도 항상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당시 사람들의 염원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 것인가.

학제적 연구의 성과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를 고찰함에 있어 한문사료를 비롯한 여러 토착사료가 그 큰 줄기를 이루는 뼈대라고 한다면, 끊임없이 발굴되는 고고미술자료는 그 사회와 문화를 재구성할 수 있는 근육과 살이다.

한국의 중앙아시아학 자체는 구미(歐美)나 이웃 일본에 비해 1세기가량 늦게 시작됐지만, 한 주제를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조명하는 소위 학제적 연구의 성과로 인해 국제 학술계에서도 뚜렷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중앙아시아학회만이 가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모든 분야에 대해 관심 있는 애호가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신동아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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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중앙아시아사 bhmin@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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