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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서울맨’ 제타룡

습관성 ‘미래 읽기’로 서울을 용(龍) 만들다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서울맨’ 제타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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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강기(博覽强記)의 ‘서울맨’ 제타룡

제타룡씨가 도시철도공사 사장 시절 서울시 마라톤대회에 참가했을 때. 퇴임 후에는 골프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늘 몸을 ‘젊게’ 가꾸고 있다.

과연 앎은 힘이었다. 안다 한들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겠지만 지와 행의 합일을 꾀할 수 있는 힘이 제타룡에겐 있었다. 결국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을 때 도시철도공사 노조는 30%의 인원만 동조했다. 70%가 현업에 종사했으므로 지하철 파업사태를 막을 수 있었고 정시운행이 가능했다. 반대로 다른 사업체들은 70%가 파업에 동조하고 30% 정도만 현업에 남은 꼴이었는데, 지하철 파업이 흐지부지되자 민주노총의 파업투쟁 자체가 오래 끌지 못했다.

“너새니엘 호손을 읽다 알게 된 말인데 ‘체인 오브 더 휴먼’이란 게 있어요. 사람들은 서로 체인으로 엮여 있어서 도덕적으로 그 고리가 헐거워지면 사회 속에서 외롭게 고립된다는 뜻이지요. 나는 반대로 생각해요. 내가 먼저 사람들 사이 그 체인을 강화하는 에너지를 보낼 수 있다고요. 감성 리더십이란 것도 결국 그 체인으로 사랑을 보내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한번 보내놓으면 사라지지 않고 다시 강화되어 되돌아오거든요”

경남 사천이 고향이지만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에 ‘남 타’자를 붙여 작명한 것 같다. 선친이 일본에서 자그만 사업을 벌이고 계셨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일본경찰과 충돌이 일어났다. 일경과의 충돌이 다 독립운동일 수는 없겠지만 조선인에 대한 모욕이나 부당함을 참지 못해 생긴 일인 걸로 짐작한다.

그가 여섯 살 때 부모는 일경의 눈을 피해 몰래 사천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당시의 충격 때문인지 병을 얻어 돌아가시고 그는 할머니 손에서 자란다. 개구진 아이였다. 호기심이 많으니 장난도 심했다. 겨울에는 얼음이 왜 어는지 신기해 얼음판 위에서만 놀았다. 덕분에 아침에 입은 옷이 저녁이면 흠뻑 젖었다.

할아버지는 서당 훈장이셨다. 큰 아이들이 공부하러 집으로 몰려오곤 했다. 초등학교 내내 공부하지 않고 놀기만 했지만 6학년이 되자 버럭 철이 든다. 당시는 희한하게 중학 입시에 국가고시를 보던 시절이었다. 1년 동안 6년 것을 한꺼번에 공부했다. 그러면서 공부에 재미를 들였다. 시험 보면 답을 맞힐 수 있는 게 즐거웠고 책 읽다가 코피가 터지는 기쁨도 알게 됐다.



“중학 입시를 보러 갔는데 감독 선생님이 ‘답은 천천히 써도 된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셔요. 침착하라는 뜻이었을 텐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정말 일부러 천천히 답을 썼어요. 3분의 2밖에 안 썼는데 종이 치는 겁니다. 아이코 떨어졌다 싶었어요.”

그런데 발표를 보니 500점 만점에 360점이었다. 1등이었고 경기중학에도 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쓴 답이 모조리 정답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순박한 구석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에게선 그런 순박함이 느껴진다. 독서에서 얻은 지식을 그대로 믿고 정면 돌파하는 힘은 그 순수와 소박에서 나온 것 같다.

개구쟁이 수재

진주고등학교로 진학했다.

“6시에 사천비행장에서 버스가 출발해요. 진주 사는 직원들을 출근시키는 통근버스였는데 빈 차로 출발하거든요. 그 버스를 얻어 타야 편하게 진주까지 갈 수가 있어요. 아침마다 그걸 타자니 할머니는 4시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셔야 했지요. 요즘처럼 시계만 있어도 좋았을 텐데…. 어떤 때는 새벽 1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짓기도 하셨어요.”

훗날 서울시 교통정책을 책임질 인재가 그렇게 새벽마다 남의 버스를 얻어 타면서 길러지고 있었다니 흥미롭다. 고생스럽게 학교를 다녔어도 성적은 좋았다. 하긴 책읽기에 매료된 호기심 투성이 학생이었으니…. 사물의 원리를 궁구(窮究)하는 게 좋았다. 실용학문을 하고 싶어 서울대 공대를 지망했다. 그런데 입학시험 치러 가서야 자신이 적녹 색약이라는 걸 알게 된다. 색약이면 공과대학엔 응시 자체가 불가능했다.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좌절이었다. 좌절을 이길 수 없어 친구 따라 지원해서 입대해버린다. 그리고 제대 후 역시 친구 따라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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