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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전문가 이계안의원이 본 ‘열린우리당 실패학’

“입바른 소리했다고 ‘왕따’시켜… 신당 리더는 경제계 인사가 맡아야”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구조조정 전문가 이계안의원이 본 ‘열린우리당 실패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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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은 더욱 뼈아팠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는 조직이 아니니까 그럴 수밖에요. 닛산은 늘 스스로 ‘기술의 닛산’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좋은 자동차는 이래야 한다’며 구매자를 가르치려 들었죠. 반면 도요타는 ‘마케팅의 도요타’로 지금도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늘 소비자의 눈높이를 의식했다는 겁니다. 지금 닛산은 문 닫기 직전인데 반해 도요타는 해가 갈수록 세계 최고의 자리를 더 굳건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 김근태 당의장 시절 비서실장을 하면서 당에 더 큰 실망감을 가졌겠습니다.

“저는 나라의 민주화에 일생을 바친 개인 김근태의 삶을 존경하지만, 제 삶과의 접점을 찾긴 어렵습니다. 저는 스스로 ‘양심적 산업화 세력’이라고 생각해요. 자라온 배경도, 생각하는 것도 당연히 다릅니다. 다만 제가 그 자리를 수락한 것은 재야 출신의 김근태 의원 비서가 아니라 열린우리당 당의장의 비서실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의장은 기업의 CEO입니다. 자기 자신과 조직의 명운을 걸고 결단하고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당의장을 거들며 일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특히 당시는 5·31 지방선거 대패 이후 당이 자력갱생의 구심력을 잃은 엄중한 시절이었습니다.

김근태 의장께서 취임 때 한 말씀이 ‘오직 경제고 두 번째도 경제, 세 번째도 경제’였습니다. 저는 ‘조직을 바꿔야 산다’고 말했죠. 일하는 사람에게 책임지는 자리를 주자, 국민과 소통하는 조직을 만들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하셨고, 그렇게 실행해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직 인선에 들어가니 당의장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더군요. 당헌당규상 원외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과 당의장의 의사결정권이 모두 n분의 1이었기 때문이죠. 근본적인 의사결정구조마저 모순의 연속이었던 겁니다.”

▼ 김 전 의장이 앞세운 ‘뉴딜 정책’의 실패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요.



“당의장은 원외뿐 아니라 원내와의 관계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과 원내 행정기구간 협조가 잘 안됐습니다. 뉴딜이 뭡니까.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갖고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투자를 촉진시키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공이 많아졌죠. 원내는 원내대로 김 의장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려는 것 아닌가 우려했고요, 전선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하니까 기업 기(氣) 살리기라는 당초 취지는 묻히고 노동조합, 시민단체들의 ‘여기 좀 봐달라’는 목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경제 문제가 사회 제(諸)세력 간의 통합 문제로 변해갔고,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우려대로 ‘대권행보’로 오해를 살 만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 본인이 나서서 조직의 체질개선을 도모할 방법은 없었습니까.

“아시다시피 당에 경제계에서 온 자원이 무척 적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당에 뭔가를 제안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간부급 모 의원은 제가 발언만 하면 ‘정치가 기업과 같냐’고 타박을 줍디다. 기분상으로는 거의 ‘왕따’였죠. 마케팅에도 ‘critical mass(임계질량)’란 용어가 있지 않습니까.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절대량이 돼야 정책이건 건의사항이건 논의가 붙고 이슈가 될 텐데, 아예 싹이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나온 정답은 ‘나 같은 사람을 더 모아야겠다’였습니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탈당’으로 결론내린 거고요.”

시장은 ‘청산’을 원했다

▼ 그럼에도 탈당한 것은 무책임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현대그룹 임원으로 있으면서 숱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참가하며 배운 바로 보건대 이 방법이 가장 낫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정당은 사람 중심, 주식회사는 돈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다소 다른 측면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든 돈이든 ‘자산’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그러니 주식회사 구조조정 경험을 정당에 적용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겁니다.

지금의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부도 상태입니다. 회사가 부도나면 은행은 청산가치를 계산해서 청산할 것인지, 아니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 나갈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분석 결과 청산 가치가 ‘플러스’면 청산해야 합니다. 지금 열린우리당에 대한 제 생각도 ‘일찍 청산해야 차라리 몇 푼이라도 건지겠다’는 겁니다.

청산하기도 살리기도 애매한 때 은행에서 쓰는 제3의 방법은 뭐냐, 기업을 ‘배드 컴퍼니’와 ‘굿 컴퍼니’ 두 개로 쪼개는 겁니다. 배드 컴퍼니에는 온갖 부실을 다 털어넣고 굿 컴퍼니는 구조조정을 해가는 가운데 ‘고비를 넘기면 고배당을 받을 수 있다’며 실력 있는 외부 투자자를 유혹합니다. 그때 전제는 굿 컴퍼니가 투자자들이 보기에 상당한 미래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의 열린우리당에서 ‘굿 컴퍼니’를 추려내기가 쉬울까요? 추린다고 해도 투자자, 즉 국민이 굿 컴퍼니로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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