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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학자의 대담한 제언

“다케시마의 한국 주권 인정하고, 울릉도 기점으로 EEZ 설정하자”

  • 세리타 겐타로 아이치가쿠인대 교수·국제법 / 번역·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minoritylee@hanmail.net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학자의 대담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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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정리해보자.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를 획정함에 있어 가장 큰 장애는 서두에서 지적한 것처럼 다케시마 영유권을 둘러싼 양국의 대립이다. 다케시마는 동서 두 개의 섬과 수십 개의 암초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적은 총 23만㎡ 내외다. 남측면에 잡초가 있는 것 이외에는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암석이다. 일본의 국토 면적이 37만8000㎢임을 감안해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100평 토지의 한쪽 구석에 있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돌무더기 땅을 두고 이웃과 다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웃 한국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48%가 ‘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의식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그 비율이 94%에 이른다. 이러한 영토의식은 대중가요, 텔레비전, 교과서, 교사, 부모 등을 통해 형성되어 젊은층 사이에서도 절대적이다.

한일 양국이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국제법적 논의를 아무리 계속한다 해도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국민이 볼 때 다케시마 편입은 일본에 의한 한국 지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2005년 3월16일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할 당시 한국 국회 등의 반응을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른바 역사인식 문제로 확대되어버리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한국 진출을 결정한 메이지 정부는 한국의 친청파(親淸派)와 친일파(親日派)의 권력투쟁이 비화한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1895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거액의 배상금과 함께 요동반도를 할양받았다.

그러나 극동 경영에 나선 러시아는 요동반도의 할양을 묵과하지 않고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이 이를 반환토록 했다. 일본은 한반도에서도 러시아와 대립해 친러파가 된 명성황후를 암살했다. 이후 1902년 영일동맹이 성립됨에 따라 일본은 한국에서 전면적인 우위를 점하고 만주진출의 발판을 구축해 1904년 2월 러일전쟁에 돌입했다. 그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1월28일에 다케시마를 일본에 편입시킨 것이다.



이후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조약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러시아로부터 한국에 대한 사실상의 보호조치를 승인받았다. 용의주도한 외교협상을 통해 강대국의 승인을 얻은 후, 11월17일 고종황제 등에게 압력을 가해 ‘을사보호조약’을 조인토록 했고 결국 1910년 한국을 병합했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다케시마가 일본의 한국 지배의 상징이 된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법률적으로 볼 때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 2조는 한일합방조약 등이 ‘무효’라고 확인했다. 도의적으로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잘못된 국가정책,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특히 아시아 각국의 인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마음으로부터 사과를 표명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2002년 북한과 일본이 발표한 평양선언 2항에서도 “일본측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조선의 인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힌 바 있다. 전후 60주년이던 2005년 8월15일 고이즈미 총리는 ‘전후 60년 총리 담화’에서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아시아 각국과의 상호이해와 신뢰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의 협력관계를 구축해가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미래를 위한 승부수

다케시마는 이처럼 무거운 배경을 갖고 있다. 게다가 협상은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랗다. 한일 양국민 사이에 가로놓인 이 ‘가시’를 뽑기 위해서는 일본이 대담한 타개책을 제안해야 한다.

일본인이 한국인과 화해하기 위해 다케시마를 한국에 양도 혹은 포기하고 한국의 다케시마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일본해 서쪽의 어업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한일이 각각 자원관리를 추진할 수 있도록 울릉도와 오키도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이 그 골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다케시마를 자연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자연보호구역으로서 12해리 어업금지수역을 설정하고, 세계 모든 국가의 과학자들에게 이를 개방한다. 한국과 일본이 이와 같은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해결책으로서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한국인에게 1905년은 자국이 일본에 의해 보호국화한 해다. 5년 후 1910년 병합에 이르기 전 단계인 것이다. 다케시마 편입과 식민지 지배는 관계가 없다는 일본측 주장은 법률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식민지 피지배 역사를 가진 한국인이 ‘자국의 땅에서 최초로 빼앗긴 것이 다케시마’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맞지 않다고 아무리 설득해봐야 좋은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원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의 격차는 메워지지 않는 법이다.

1965년 맺은 한일협정에서 일본은 어떠한 사죄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 민중 사이에는 일본의 한국통합에 대한 속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 다케시마가 한국인에게 일본의 식민 지배 시작의 상징이라면, 새로운 다케시마를 성숙한 한일협력관계의 상징으로 전환해야 한다.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학자의 대담한 제언
세리타 겐타로

1941년 중국 만주 출생

일본 교토대 법학연구과 박사과정 중퇴

고베상선대학 조교수, 고베대 법학부 교수·동 대학원 국제협력연구과 교수

現 아이치가쿠인대 국제협력 연구과 교수·연구과장

저서 : ‘섬의 영유와 경제수역의 경계획정’ ‘일본의 영토’ 외


새로운 조약에는 우선 ‘평양선언’과 ‘전후 60년 총리 담화’처럼 솔직하게 한국민에 대해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하자. 그런 후에 첫째, 미래 세대를 위해 일본은 다케시마를 한국에 양도 혹은 포기하고 다케시마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인정한다. 둘째, 한국은 울릉도와 오키도를 기점으로 서로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를 획정할 것을 약속한다. 셋째, 동아시아 환경협력의 상징으로서 한국은 다케시마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삼고 모든 나라의 과학자들에게 개방한다. 마지막으로 한일 양국 정부 및 국민은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 번영을 위해 손을 맞잡고 협력할 것을 다짐한다.

물론 이러한 제안에는 한국과 일본 양측으로부터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승부수를 던져보면 어떨까. 그때가 오고 있다.

신동아 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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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타 겐타로 아이치가쿠인대 교수·국제법 / 번역·이준규 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minority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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