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진안 마이산의 석탑군.
마이산에 있는 탑과는 달리 그림 속 봉우리의 끝부분에 외줄탑이 없는 것은, 이 외줄탑들이 원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외줄탑은 후에 쌓은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서 가운데 봉우리가 유달리 크고 나머지 봉우리들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그림의 구도와 균형을 위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45개의 물결무늬
필자는 아래쪽에 줄지어 늘어선 물결무늬가 뜻하는 바를 발견하게 된 뒤 이를 더욱 확신하게 됐다. 여러 일월오봉도를 거듭 검토한 끝에 필자는 물결무늬가 모두 45개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으나, 45라는 숫자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풀 수 없었다. 우리 선조들은 그림이나 공예품 등에서 숫자를 아무 의미 없이 배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45라는 숫자도 분명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봤다. 마침내 나름대로 이 무늬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을 때 일월오봉도의 전반적 해석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
앞에서 이 무늬가 바다의 물결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은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대지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은데, 희한하게도 진안의 옛 지명은 월랑(月浪 혹은 越浪)이었다. 현재도 진안의 대표적인 경관을 ‘월랑팔경(八景)’으로 부르는 등 주민들은 여전히 월랑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따라서 고동색 물결무늬가 월랑이라고도 불린 진안의 대지를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은 충분히 해봄직하다. 위치상으로도 대지에 속할 뿐 아니라 무늬가 랑(浪)이라는 한자와 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문헌들을 뒤적인 결과 이 월랑은 원래 월량(月良)에서 비롯된 데다가, 이 해석으로는 45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필자는 심사숙고 끝에 이 물결무늬가 석탑군의 외줄탑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추측하게 됐다. 졸저 ‘마이산 석탑군의 비밀’에서 마이산의 석탑군이 우리 민족에게 천권(天權)의 상징이던 금척(金尺)의 조형물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금척은 이성계가 꿈속에서 하늘의 신인으로부터 조선 건국에 대한 천명의 계시로 받았다는 사물이다. 그러면서 외줄탑들이 나타내는 것은 우리 민족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금척은 천부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부경은 1에서 9까지의 숫자로 이뤄져 있다. 1에서 9까지의 합은 45이므로 천부경을 외줄탑으로 모두 나타내는 데는 45개의 탑이 필요하다. 물론 석탑군의 실제 탑의 수를 45로 보긴 어렵다. 하나의 외줄탑을 양효(陽爻)로 삼아 대신 음효(陰爻)에 해당하는 작은 2개의 탑을 배치하고, ‘生 7, 8, 9’의 항목에서 9개의 탑으로 7, 8, 9를 동시에 나타내는 운영의 묘를 기했기 때문. 그러나 원래의 탑 개수는 45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서 각 물결무늬의, 이른바 동심반원형의 여러 무늬가 의미하는 것은 외줄탑의 돌들이 쌓인 상태를 나타내려는 게 아니었을까. 그저 물결 형상만 나타내려 했다면 구태여 이처럼 다중적인 무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 동심반원형 무늬는 5개 봉우리의 바윗돌 형상과 같이 그림의 비밀을 간직한 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다.
금강과 섬진강의 근원
그렇다면 그림의 해와 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와 달은 그동안 우리 고대의 사고방식에 흔히 등장하는 문자 그대로 일월(日月)로 풀이하기도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왕과 왕비로 풀이하기도 했다. 음양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언급한 바 있다.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면 이 해와 달은 마이산의 두 봉우리, 즉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다. 흔히 해와 달은 음양을 상징하는 표본으로 여겨지는데,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음양을 상징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위치도 닮아 있다. 석탑군을 기준으로 암마이봉은 달이 있는 왼쪽에, 수마이봉은 해가 있는 오른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