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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21

청상과부 신여성 윤영애 자살 사건

“시어미 있는 사람은 연애도 걸지 말아요”

  •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청상과부 신여성 윤영애 자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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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상과부 신여성 윤영애 자살 사건

윤영애의 자살 배경을 전한 ‘동아일보’ 1933년 7월29일자.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원앙이었다. 두 사람 모두 선남선녀인데다, 서로 사랑했고, 나이와 교육 수준, 사상까지 비슷했다. 두 사람의 앞길에는 행복만이 함께할 것 같았다. 굳이 찾는다면 걱정되는 점이 두 가지 있긴 했다. 신랑 정성진의 집이 부유하지 못한 것과 신부 윤영애의 가문이 신랑 집안과 같은 양반 계급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화된 시대에 가문이나 경제력 차이가 결혼생활을 불행으로 이끌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신혼부부는 시집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는 것이 조선의 오랜 풍속이었지만, 가난한 정성진의 집에는 신혼부부가 거처할 공간이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정성진은 당주동 처가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비록 처가살이였지만 신혼부부의 생활은 원앙도 부러워할 만큼 단란했다. 아침이면 신랑은 서소문정 재판소로, 영애는 신촌 모교의 도서관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여 출근했다. 마침 당주동 집에서 두 사람이 출근하는 곳은 방향이 같았다. 두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나란히 출퇴근하며 남다른 행복감에 젖었다.

신혼 첫 달이 꿈결같이 지나간 때, 정성진은 도쿄로 고등문과시험을 보러 갔다. 짧은 이별이었지만 두 사람은 날이면 날마다 전보와 전화로 서로 사랑을 확인했다. 신혼 초 잠깐 동안의 이별은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확인해주었다. 정성진이 시험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후 두 사람은 다시 행복한 신혼생활로 돌아갔다. 사랑하며 살다보니 무더운 여름날도 더운 줄 모르고 지냈다. 그해 정성진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윤영애는 실망하지 않았다. 젊고 유능한 남편에게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 믿었다.

9월이 되자 윤영애는 졸업 후에도 계속 다니던 이화여전에 더 이상 나가지 않고 주부로서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자니 집이 문제였다. 매달 40원씩 받는 남편의 월급만으로 내 집 마련은 요원한 꿈이었고, 가난한 시댁에서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결국 윤영애는 수원에 있는 오빠를 졸라 무교정에다 1만5000원짜리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정성진 부부는 윤태종의 도움으로 결혼한 지 불과 넉 달 만에 영원한 안식처를 장만했다. 윤태종은 도와주는 김에 기분 좋게 도와주고자 집의 명의까지 매제 정성진에게 넘겨 주었다.

뜻밖의 시집살이



무교정 신혼집으로 이사한 후 정성진과 윤영애는 뛸 듯이 기뻤다. 남부럽지 않은 집도 생겼고, 지금은 비록 박봉의 재판소 서기일 뿐이지만 남편의 실력이라면 고등문관시험 합격도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20대 초반의 젊은 부부는 소꿉놀이보다도 더 재미있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바랄 것이라곤 내일도 오늘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달콤한 신혼의 단꿈에 취해 있던 바로 그 순간 비극의 씨앗은 움트고 있었다.

부부 사이의 정분만 떼놓고 보면 정성진 부부는 조선 어느 가정보다 단란했다. 그러나 조선의 가정이 단지 부부 사이의 정분만으로 유지되지는 않았다. 조선의 젊은이들은 기를 펼 수 없을 만큼 갖가지 제도와 인습의 굴레를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이 행복의 절정에 취해 있을 때 그것을 괘씸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정성진의 부모였다.

부모를 모르는 자식! 부모를 잊어버린 자식! 계집에게 홀린 자식! 이 몇 마디 말만으로도 성진이의 등 뒤를 협박하는 폭풍을 짐작할 것이다. 가문이 낮으나 부자란 맛에 얻은 며느리였다. 그런데 덕은커녕 그 며느리는 자기 아들을 빼앗아간 셈이었다. 다달이 타는 40원 월급조차 이제는 저들 두 식구에게로만 가고 자기네들에게 돌아오기는커녕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처음 결혼시킬 때는 이럴 예정이 아니었다. 며느리 덕으로 편안한 살림을 해보자 한 것이었다. 그런데…. (‘윤영애 순종(殉從) 애화’, ‘신여성’ 1933년 9월호)


정성진이 처가의 도움으로 무교정에 대궐 같은 신혼집을 장만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부모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부모의 간섭이 시작되자 행복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파란에 휩싸였다. 새로 집을 산 지 열흘 남짓 지난 후 정성진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왔다. 아버지는 자식의 불효를 책망하면서 아들의 명의로 등기된 집문서를 빼앗았다. 그리고 며느리는 물론 아들도 모르게 빼앗은 집문서를 전당 잡히고 몇 천원을 빌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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