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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만드는 여행, 자양분 가득한 ‘영혼의 사치’

  • 일러스트·박진영

내 손으로 만드는 여행, 자양분 가득한 ‘영혼의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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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층에 중앙이 뻥 뚫린 구조, 화이트톤의 매끈한 실내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로 활력이 넘쳐났다. 단순하지만 기존에 보지 못했던 테이블과 의자 디자인이 내 눈을 자극했다. 특히 1층 중앙에 길게 놓인 폭 좁은 테이블 배치를 통해 낯선 사람들이 한데 앉을 수 있게 한 설정은 색다른 느낌을 선사했다. 바로 옆에 낯선 이의 체온이 느껴지고 그들의 대화가 그대로 들리는 경험은 흥미로웠다.

주변 테이블 하나하나의 분위기를 힐끔거렸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있을 수 없을 듯한 개방적인 구조지만 누구 하나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공기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한데 이어주는 심장박동과 거의 흡사한 비트의 음악은 당시 인기 최고였다는 ‘라운지 음악’ 장르에 속한 것이었다.

음식의 생소함 또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시아-쿠바 퀴진’이라니, 먹어보지 않으면 그 풍미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릴에 구운 돼지고기를 망고와 파인애플향이 부드럽게 감쌌고 마늘향이 연하게 밴 간장소스는 감칠맛을 더했다. 다양한 열대과일과 해산물을 넣어 볶은 밥에는 실란트로와 같은 동남아시아 허브가 이국적 풍미를 덧댔다.

“당신이라면 향기로운 민트에 깨끗하고 강렬한 모히토가 어울리겠어요!” 블랙셔츠와 팬츠 차림의 젊은 남자 웨이터는 아예 내 의자에 팔을 떡하니 걸치고 너스레를 떨며 칵테일을 골라주었다.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보낸 시간 중 무엇 하나 새롭지 않은 경험이 없었다.

내가 이토록 한 장소, 특히 레스토랑에 대해 세세한 감동을 늘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요즘 박물관이나 유적지 못지않게 각광받는 여행명소가 바로 이런 ‘힙’ 분위기의 레스토랑, 바, 호텔, 갤러리, 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전에 보지 못하던 디자인, 음식, 음악, 그리고 사람들의 패션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최신 트렌드이거나 곧 트렌드가 될 요소들을 경험하는 최적의 무대인 것이다.



‘아시아 드 쿠바’에 이어 들른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작품전시 못지않게 미술관 내외부 장식의 창의성이 돋보였다. 생활에서나, 일에서나 디자인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나에게 그곳은 영감과 아이디어의 천국과도 같았다.

뉴요커를 밀도 있게 관찰할 기회를 얻은 것도 개별여행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센트럴파크에 쏟아지는 풍광 사이로 백발의 트럼펫 연주자가 뽑아내는 재즈 선율이 바람을 타고 흐르고, 그 사이를 애완견과 함께 달리는 남자, 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읽다가 책으로 얼굴을 덮고 낮잠을 청하는 남녀, 피크닉 바구니를 손에 들고 아이와 애완견을 데리고 소풍 나온 사람들. 뉴요커의 일상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소호의 유명한 식품점 ‘딘 앤드 델루카(Dean and Deluca)’에는 세련된 모양과 생소한 맛의 케이크가 가득했고 냉장고는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고안한 생수병으로 꽉 차 있었다. 실내는 다채로운 옷차림과 머리장식을 한 채 즉석 유기농 식품을 고르는 젊은 뉴요커들로 가득했다. 나 또한 그들처럼 즉석 조리코너에서 우리나라 시래깃국처럼 보이는 채소수프와 표면이 거칠거칠한 통밀빵을 산 다음 입구의 테이블에 기대어 서서 요기를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회사 업무에 복귀했을 때 여행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업무에서는 아이디어가 솟구쳤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풍요로워진 듯했다.

“당신 뉴욕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호텔의 외국인 총지배인, 총주방장과 뉴욕 스타일을 주제로 즐거운 대화에 빠져들었다. 직장 바깥의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다. 이국적인 카페와 레스토랑을 찾아 마치 여행을 떠나온 듯한 분위기와 풍미를 만끽했다. 식품점에서 장을 보는 재미도 한층 더해졌다. 다양한 맛을 경험하는 것 또한 새로운 여행지를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줬다. 낯선 곳이 배경이 되는 영화를 감상하며 잠시나마 그곳의 햇살과 색과 사람살이에 푹 빠져보기도 했다.

파리 코스테스(Costes) 호텔 바에서 듣던 감각적인 라운지 음악을 담은 CD를 들으며 생기 넘치는 파리의 도심을 내 일상으로 잠시 끌어오기도 했다.

이만하면 작지 않은 변화다. 바쁜 와중에 짜낸 소중한 시간과 적지 않은 여행경비를 투자해 얻은 즐거움과 배움은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게 이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요즘도 휴가기간을 길게 낼 때는 런던 파리 뉴욕 밀라노와 같은 장거리 여행을, 5일 이내의 단기 휴가에는 홍콩, 도쿄, 상하이와 같은 주변 아시아 도시 여행을 떠난다. 내 여행 스타일은 여행자나 관광객들이 아닌 현지인들에게 더 각광받는 명소(레스토랑, 갤러리, 호텔, 바, 공원 등)를 찾아 각 지역의 라이프 스타일을 경험하는 데 집중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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