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늘 그를 따라다니는 이력은 역시 ‘국내 최초로 1억원 고료를 받은 작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올림픽 금메달처럼 화려한 이력이다. 수상작인 장편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 아직도 독자가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다. 이 상금으로 생활비 걱정을 조금 접고 전업작가로 하루 종일 글을 쓰는 생활을 만끽한다.
가난한 예술가는 돈 걱정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생활이 누추해질 정도로 돈이 없다면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예술은 묘하게도 돈을 질투한다. 돈과 명성을 같이 얻은 예술가와 지독하게 가난한 예술가 유형이 있다. 피카소가 전자라면 고흐는 후자다. 그는 예술가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나 예술가로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방법이 있지요. 유산이 많거나, 배우자가 돈을 벌거나, 아니면 가난하게 혼자 사는 것입니다. 저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어요.”
예외도 있겠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결혼한 상태에서 좋은 소설을 쓰기가 남성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남성인 나는 이것을 거꾸로 생각한 적이 있다. 이성은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풍경’ ‘천개의 공감’은 독자뿐 아니라 편집자도 매료시켰다. 그래서 또 다른 에세이를 기획 출판하려는 출판사의 제안이 잇따랐다. 하지만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정직한 성격의 그는 이를 조용하게 거절했다. 소설을 쓰면서 에세이를 집중적으로 쓸 수 없다고 했다. 소설을 쓸 때는 오로지 소설만을 쓰는 것이다.
그는 무척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경제적인 여유가 다시 생긴 것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직장을 다니고, 1억원을 받았던 시절이 경제적으로는 훨씬 여유가 있었어요. 딴에는 뭔가를 다 이룬 것 같았는데도 그때는 마음에 안정, 평화 이런 것이 없었어요. 요즈음은 그때보다 경제적으로는 덜 편안해도 마음만은 편안해요.”
오랜만에 만나 느낌으로 전해지는 김형경의 이미지는 안정감이었다. 마치 모범적인 선생 같은 안정감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나? 아니다. 그럼 소설이 잘되나? 아니다. 그냥 행복하다. 여기까지 오기 전 그는 지독한 시련의 시기를 거친다.
30대 후반부터 마흔까지의 삶은 그야말로 인생의 바닥을 치는 지독한 경험이었다. 그 바닥을 힘껏 쳐내고 그는 상승했다. 그것을 통과하고 난 후의 행복감이다. 그가 심리치료에 각별한 전문가가 된 것은 이러한 자신의 고통을 치유한 경험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우울증의 폭발이기도 했고, 중년의 위기이기도 했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은 유년기에 형성된 가치관이었고, 그 전환의 시점이 유독 지독하게 찾아온 것이다. 인간은 유년기에 형성된 가치관으로 마흔까지를 산다. 그래서 인간에게 마흔 살은 일종의 전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