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호

환경을 보호하려면 우선 파괴해야 한다?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7-04-11 1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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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을 보호하려면 우선 파괴해야 한다?

    물속에 뿌리를 내리며 생존하는 맹그로브 나무(위). 생명의 보고로 꼽히는 아마존에서 생활하는 원주민 아이들. 인간의 손이 닿을수록 아마존이 파괴된다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의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설파했다. 그것은 인간사회의 경제 구조를 말한 것이고 환경의 처지에서 보면 큰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작은 숲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지만, 큰 숲은 장엄하지 않은가. 게다가 숲이 크면 더 다양한 생물이 더 많이 살지 않겠는가. 호랑이는 작은 산에서 살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환경 보존 측면에서 큰 것이 좋은지, 작은 것이 좋은지의 문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생태학계의 논쟁거리다. 연원을 따져보면 그 논쟁은 하나의 이론과 그것을 검증한 한 실험이 계기가 되어 촉발됐다.

    천재 생태학자의 혜안

    1969년 대니얼 심벌로프와 에드워드 윌슨은 이정표가 될 실험 논문을 내놓았다. 지금 같으면 환경파괴 행위라고 싸잡아 비난을 받을 만한 실험이었다.

    아메리카의 열대 해안에는 맹그로브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맹그로브는 굵은 뿌리를 뻗대고 일어서려는 듯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자주 물에 잠기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기 때문에 그런 생김새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굵은 뿌리의 끝을 바다 밑에 박은 채 물 위로 높이 솟아올라 있다. 맹그로브는 서로 뿌리가 얽히고 붙은 채 자라기도 하지만, 얕은 바다에서는 한 그루씩 멀리 떨어져 자라기도 한다. 그렇게 물 위로 솟아 있는 맹그로브 나무 하나하나는 일종의 섬을 이룬다.



    심벌로프와 윌슨은 플로리다 만에서 맹그로브 섬 6개를 골랐다. 그들은 맹그로브 나무 주위에 가설물을 세우고 나무를 잘 둘러싼 뒤 브롬화메틸이 주성분인 살충제를 뿌렸다. 자칫하면 맹그로브가 피해를 볼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농도를 조절하면서 시간을 두고 뿌렸다. 그렇게 해서 섬에 살던 동물들(주로 작은 절지동물들)을 다 죽인 뒤 감쌌던 막을 풀었다. 화산 활동으로 막 형성된 섬처럼 동물이 전혀 살지 않는 새로운 섬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1년 동안 섬의 동물상(動物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새 섬의 주위에는 절지동물이 우글거리는 섬과 숲이 펼쳐져 있으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동물들이 새 섬으로 이주할 것이 분명했다.

    먼저 날벌레들이 들어올 것이고 진드기처럼 새의 몸에 붙어서 들어오는 동물들도 있을 터였다. 먼저 정착한 동물들은 포식자와 경쟁자가 없으므로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다가 새 동물이 들어오면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잡아먹힘으로써 수가 크게 줄어들기도 했다. 전멸하는 종류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종이 계속 들어오면서 섬의 동물상은 서서히 주위의 섬들과 비슷해졌다. 250일이 지나자 가장 멀리 있는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들은 살충제를 뿌리지 않은 주위 섬들과 종(種)의 수와 조성이 비슷해졌다. 단지 전반적으로 개체수만 적을 뿐이었다. 그 뒤로는 종 조성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일종의 평형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그 실험은 몇 년 앞서 천재적인 생태학자인 로버트 맥아더와 윌슨이 세운 이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 맥아더와 윌슨은 한 섬에 있는 종의 수는 본토와의 거리 및 섬의 크기라는 두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른바 평형 이론을 제시했다.

    환경을 보호하려면 우선 파괴해야 한다?

    자연보호구역과 관련한 탁월한 논문을 발표한 제레드 다이아몬드. 그의 저작 ‘총, 균, 쇠’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본토에서 멀수록 섬으로 이주하는 종의 수가 적기 때문에 섬의 종 수는 적다. 한편 섬이 작을수록 피신처가 적기 때문에 살던 종이 전멸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멀리 떨어진 작은 섬일수록 종의 수는 적다. 그리고 새 섬이 생기면 동물들이 이주해 경쟁하고 먹고 먹히면서 자리를 잡고 멸종하는 과정이 진행되다가 이윽고 역동적인 평형 상태에 도달한다. 그것이 그들의 이론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맥아더와 윌슨은 그 이론으로 사실상 섬 생물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이 정식으로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으려면 이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험이 필요했다. 심벌로프와 윌슨의 논문은 바로 그 부분을 채웠다. 그 논문으로 섬 생물지리학은 확고한 실험 과학으로 자리매김했다.

    심벌로프는 연구를 계속함으로써 그 이론을 검증해 나갔다. 그는 크기가 서로 다른 맹그로브 섬들을 골라서 같은 실험을 했다. 그러자 종의 수는 섬의 크기가 클수록 많아지며, 섬 내의 서식지가 다양한지 여부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평형 이론은 점점 더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섬은 생물 다양성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제주도와 울릉도엔 육지에 없는 자생종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섬은 어느 정도 외부와 격리돼 독특한 종들이 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의 생물 다양성을 늘리는 기능을 한다.

    섬 생물지리학은 새로운 과학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자마자 곧 의외의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바로 자연보존이다. 섬 생물지리학에서 말하는 섬은 바다로 둘러싸이고 흙과 바위로 된 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외부와 어느 정도 격리되어 독자적인 생물상을 이룰 수 있는 곳은 비유적으로 모두 섬이라 할 수 있다. 사막 한가운데 고립된 오아시스도 일종의 섬이며, 외부와 격리된 식물원이나 동물원도 일종의 섬이다. 건물들로 둘러싸인 도심의 녹지도 하나의 섬이며, 저지대에 둘러싸인 높은 산도 섬이다.

    따라서 섬 생물지리학은 사실상 생물의 서식지가 단절되고 격리된 곳이라면 어디든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인식이 확산되면서 곧 그들의 논문을 인용하고 확대 적용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보호구역의 설계 문제와 연관지은 논문도 등장했다.

    그 분야의 주역은 나중에 ‘제3의 침팬지’와 ‘총, 균, 쇠’ 같은 걸작을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이다. 1975년에 다이아몬드는 섬 생물지리학을 자연보호구역 설정 문제와 연관지은 논문을 발표했다. 자연보호구역은 인간이 본래 있던 자연환경을 개발하면서 선심 쓰듯이 남겨놓은 지역이다. 계획적이거나 무계획적으로 개발이 진행될 때 한 구역을 덩그러니 떼어놓거나 우연히도 개발을 비껴간 공간을 그런 보호구역으로 설정한다. 도심에 있는 공원도 마찬가지다.

    다이아몬드는 평형 이론을 역으로 적용했다. 자연보호구역이나 자연공원은 인위적으로 고립된 일종의 섬이다. 그런 구역은 원래 더 넓었던 면적을 일부 잘라낸 것이므로, 처음 설정될 때에는 종의 수가 평형 상태보다 더 많다. 구역이 설정되고 나면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하기 때문에 유입되는 종의 수는 전보다 훨씬 줄어든다.

    ‘넓을수록 다양하다’

    반면 좁아진 공간 때문에 안에 있는 종들이 사라질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구역 내 종의 수는 점점 줄어든다. 즉 종의 수는 평형 이론이 말하는 섬의 크기에 알맞은 수준까지 줄어든다.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구역의 크기가 작을수록 멸종 속도도 빠를 것이므로 평형에 도달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종마다 생활공간의 크기가 다르다. 호랑이 같은 상위 포식자는 넓은 서식지가 필요한 반면 진드기 같은 곤충은 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살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이런 점들을 근거로 보호구역이 클수록 더 많은 종이 살 수 있다는 보호구역 설계원리를 제시했다.

    그러나 대니얼 심벌로프는 이를 반박했다. 다이아몬드의 주장은 면적이 작은 서식지에 있는 종이 큰 서식지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면적이 커질수록 거기에 새로운 종이 추가된다는 견해다. 심벌로프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총면적이 같을 때 숲만 있는 하나의 큰 서식지보다는 숲과 연못으로 이뤄진 작은 서식지 둘이 종의 수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못에는 숲에 살지 않는 생물들이 있을 테니까.

    큰 서식지 하나가 나은지, 작은 서식지 여럿이 나은지의 논쟁(SLOSS·Single Large or Several Small)은 1975년부터 많은 생태학자가 참여하면서 열기를 더해갔다. 토머스 러브조이 같은 학자는 아예 아마존 열대우림에 다양한 크기의 격리지역을 만들어놓고 대규모 실험을 했다. 포유류와 조류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조사와 실험 결과도 쏟아졌다. 이 논쟁의 진행 과정은 데이비드 쾀멜의 ‘도도의 노래’에 상세히 나와 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생물들이 다양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벌로프의 초기 실험에서는 종의 수가 면적과 비례 관계에 있고 서식지의 다양성과는 별 연관이 없다고 나왔지만, 육지 등에서 이루어진 후속 실험에선 서식지의 다양성이 종의 다양성과 중요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 인식은 경관을 여러 구성 요소의 조각보로 파악하는 경관생태학과 보존생물학에 반영됐다. 도시처럼 인간의 간섭이 심한 공간에 있는 자연과 식생은 일종의 섬처럼 고립되게 마련이다. 주택단지, 건물, 도로 등으로 조각난 자연 공간은 공원이나 생태 공간으로 아무리 잘 가꾸고 보존한다고 할지라도 섬 생물지리학의 평형 이론을 적용할 때 종의 수가 빈약할 수밖에 없다.

    파괴자 vs 보호자

    경관생태학은 그 문제를 ‘생태통로’라는 개념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즉 인공물들 사이에 고립되고 단절된 자연 공간들을 생태통로를 통해 서로 연결하면 전체적으로 면적이 넓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통로를 도시 너머의 산이나 숲 같은 파괴되지 않은 자연 환경과 연결하면 도시 내의 조각난 식생으로 종의 이주가 가능해지므로 종 다양성이 유지될 수 있다.

    생태통로는 도로의 위나 아래를 가로지르도록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도로변을 따라 죽 뻗은 덤불이나 생울타리도 생태통로가 될 수 있다. 거기에다 마당이나 옥상에 정원 같은 소규모 생물 서식 공간인 비오톱을 조성하면 종들이 자리를 잡고 건너다닐 수 있는 징검다리 노릇도 할 수 있다.

    섬 생물지리학을 응용한 이런 개념은 1990년대부터 국내에 활발하게 적용됐다. 생태통로를 설치하려는 노력이 선행됐고, 최근엔 생물 서식 공간을 늘리고 연결해 전반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잘못 설치되거나 관리 부실로 무용지물로 전락한 생태통로도 많긴 하지만, 도시 내까지 자연을 끌어들이려는 이런 개념은 이제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언뜻 보기에 경관생태학 관점은 SLOSS 논쟁에서 작은 서식지 여럿이 낫다는 쪽의 손을 들어준 듯도 하다. 하지만 생태통로와 비오톱은 사실 인간 활동 때문에 필연적으로 조각날 수밖에 없는 자연 환경의 종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측면이 강하기에 SLOSS 논쟁을 해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 공간이 아예 조각나지 않았다면 종이 더 다양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물에 따라 필요한 공간의 넓이와 서식지의 특성은 제각기 다르다. 육지에 살다가 번식할 때는 물로 돌아가야 하는 개구리 같은 양서류에는 서식지의 면적뿐 아니라 다양성도 중요하다. 반면 호랑이 같은 대형 포식동물은 상당히 넓은 생활공간이 필요하다.

    SLOSS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맥아더와 윌슨이 내놓은 평형 이론이 옳은지를 놓고 지금도 논문이 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단절된 서식지들을 연결하는 것이 종 다양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심벌로프와 윌슨은 지역 방역 당국의 도움을 얻어서 맹그로브 섬의 동물들을 전멸시켰다. 동물들을 전멸시킨 행위 자체도 그렇지만 그들이 쓴 살충제인 브롬화메틸은 나중에 오존층 파괴를 일으키는 주요 화학물질 중 하나로 밝혀졌으니, 지금 누군가 그런 실험을 하겠다고 나서면 환경 파괴자라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寶庫를 찾아라!

    하지만 서식지의 특성과 면적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가 드러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는 등 연구가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할 때, 그런 비판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꼴이다. 방향은 좀 다르지만 지금도 그런 식으로 살충제 같은 약품을 뿌려 생물을 잡아서 조사하는 연구 방식이 쓰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우듬지 생물학(canopy biology)이라는 분야다.

    1982년 테리 어윈은 파나마 열대림의 종 다양성을 다룬 색다른 논문을 내놓았다. 그는 마치 심벌로프와 윌슨의 실험 방법을 그대로 갖다 쓴 듯한 방법을 썼다. 그는 열대림의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서 우산을 뒤집어놓은 것 같은 채집망을 군데군데 설치했다. 그런 다음 나무 꼭대기에 살충제를 살포했다. 그러자 거기에 살던 딱정벌레류를 비롯한 절지동물들이 죽어서 우수수 떨어졌다.

    잡은 동물들을 살펴본 그는 깜짝 놀랐다.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사실 10m가 넘는 열대림의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전까지 숲 연구는 주로 숲 바닥을 위주로 이뤄졌다. 나무 둘레를 재고 낙엽과 토양을 분석하는 방식이 주류였고, 멀리서 식생의 조성을 살펴보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숲 아래쪽이나 맨 꼭대기의 생물상이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랬던 터라 어윈의 연구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어윈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구의 생물 종 수가 이전에 추정된 약 1000만종이 아니라 3000만종은 될 것이라고 3배나 늘려잡았다. 나중에 너무 성급한 일반화라는 지적을 받긴 했지만, 살충제를 살포하는 실험 방법이 생물 다양성의 이해에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마거실 로우먼이 ‘나무 위 나의 인생’에서 말하고 있듯이, 지금은 아예 열대림 꼭대기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이동통로까지 설치해 연구하는 등 새로운 실험 방법들이 개발되어 있지만, 살충제를 안개처럼 뿌리는 방법도 여전히 쓰인다.

    지금 선진국들은 아마존 열대우림을 비롯한 생명의 보고(寶庫)를 열심히 뒤지고 다닌다. 아예 속 편하게 해당 국가의 연구기관에 연구비를 주고 계약을 맺기도 한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알려져 있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생물들의 추출물이다. 식물과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의 추출물은 관련 연구소로 전달되고, 연구소에서는 그 물질들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비롯한 다양한 병원체에 효과가 있는지를 조사한다.

    만일 그 물질들에 어떤 병원체를 억제하거나 죽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 추출물을 정밀 분석해 해당 물질을 찾아낸다. 그것은 새로운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몇 년 전 미국은 그런 방법으로 말레이시아의 밀림에 사는 한 식물에서 에이즈의 진행을 억제하는 약물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미봉책이라도…

    신약 개발은 성공하면 대박을 안겨주는 사업이므로 많은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뛰어든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용한 천연 자원을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가 중요하므로 선점하려면 남이 미처 알지 못한 생물 다양성의 보고를 먼저 뒤져야 한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그 일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그런 유용한 생물자원을 얻으려면 국가간 또는 기업간 선점 경쟁 외에 또 다른 경쟁도 해야 한다. 바로 환경파괴와의 경쟁이다. 아마존 밀림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생물 서식지들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생물 다양성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몇 달 전에 구한 식물 추출물이 약효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 그 식물을 찾으러 현장에 가면 이미 숲이 농경지로 변해버린 사례도 있다. 또 환경오염으로 특수한 약물 성분을 지닌 개구리가 멸종할 수도 있다.

    삼림 파괴, 산성비, 오존층 파괴, 내분비계 교란 물질, 지구 온난화 등 어떤 환경파괴 요인이 주된 사회적 현안으로 부상하는가는 때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런 요인들이 생물 다양성을 줄임으로써 인류의 장래 건강과 복지에 해를 입힌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우리가 미처 알기도 전에 사라진 생물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각국은 미처 사라지기 전에 세계 각지에서 생물의 종자, 추출물, 생체 표본 등을 모으느라 애쓰고 있다.

    현재 인류가 추구하는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영위하려면 필연적으로 자연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아직 과학기술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인류 번영을 지탱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가이아 이론을 내놓은 제임스 러브록은 그런 번영을 가능하게 할 기술이 핵융합 기술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언제 실용화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미봉책이라도 찾아낸 것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르겠다. 러브록은 자원 재활용, 재생 에너지, 에너지 효율 등을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발전조차 뒤늦은 조치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

    섬 생물지리학은 그런 미봉책들의 이론적 및 실험적 배경이 되어왔다. 뒤늦은 조치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섬 생물지리학의 이론과 실험은 막연한 감상주의에만 의지하지 않은 과학적이고 계획적인 환경관리 방안들을 도출하는 밑거름이 됐다.

    환경을 보호하려면 우선 파괴해야 한다?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그 학문의 출발점이 된 실험은 당사자 두 사람의 행보에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심벌로프는 생태학 연구를 계속했고 최근에는 외래종이 어떤 위협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외래종이 위협하는 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다. 왠지 보수주의 냄새를 풍기는 듯도 하다.

    한편 윌슨은 생물 다양성 보호에 매진하고 있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덴마크 통계학자 비외른 롬보르는 열대림 파괴와 서식지 단절이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킨다는 말이 헛소리라는 통계 수치를 들이댄다. 그 통계 수치들이 현실과 유리된 것이라는 점은 차치하고 현장을 자세히 조사하면 오히려 그 수치들이 생태통로의 기능과 섬 생물지리학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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