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입력2007-05-03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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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계곡에서 고기를 잡다가, 물놀이를 하다가, 바위타기 놀이로 바꾸어가는 아이들. 자연은 살아 있는 놀이터이자, 변화무쌍한 놀이터다.

    싱그러운 봄이다. 풀도 나무도 곡식도 마음껏 봄을 누린다. 아이들은 어떨까. 이번 호에는 내가 사는 마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아이들 자라는 건 정말이지 잠깐이다. 우리 아이 자라는 것도 빠르지만 이웃 아이 자라는 건 더 금방이라 느껴진다. 아이들 자라는 걸 지켜보는 건 행복하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활력을 주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이따금 이 아이들 성장에 내가 도움이 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하지만 무언가를 주거나 가르치기 이전에 먼저 아이들을 이해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다.

    ‘내 자식’보다 ‘우리 아이’

    우리 마을은 새로 생겼다. 오래전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1996년부터 한두 가정씩 모여들어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그 사이 다시 떠난 이웃도 있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웃도 있다.

    우리 마을은 산골치고 젊은이가 많고 덩달아 아이도 제법 있다. 아이만 손으로 꼽아보니 아홉이다. 다섯 살부터 열세 살까지. 남자아이가 여섯, 여자아이가 셋이다. 이 아이들은 나이나 성별을 크게 따지지 않고 어울리는 편이다. 아이들이 고만고만해서 이웃집을 자주 오고 가며 어울려 자란다. 여기 아이들은 어떤 점에서는 ‘내 자식’보다 ‘우리 아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태어나 부모 따라 이곳으로 온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다. 지금은 아홉 살이 된 채연이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여러 사람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우리 이웃이 됐다. 그 기억을 조금 더듬어본다.



    채연이에게는 두 살 많은 오빠 현빈이가 있다. 현빈이도 처음에는 집에서 낳으려고 출산 준비를 했다가 양수가 일찍 터지는 바람에 병원에서 유도 분만으로 태어났다. 현빈 엄마는 첫아이 경험을 밑천 삼아 둘째아이 채연이는 집에서 낳기로 했다.

    이렇게 결정한 데는 본인의 준비도 철저했지만 가까이에 든든한 이웃이 여럿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었다. 그이들 이름이 윤희, 근희, 현희라 자칭 ‘희자매’다. 윤희씨는 도시 살 때부터 아이를 받아본 약사 출신이라 산모는 그이를 의지할 수 있었다. 채연이를 낳던 날 진통이 시작되자 희자매를 집으로 불렀다.

    채연이가 우리 곁에 온 시각은 새벽 세시쯤. 은은한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전깃불 없이도 사람 움직임은 다 알 수 있는 그런 어둠. 갓 태어날 아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전깃불을 밝히지 않았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시간. 침묵과 이따금 들리는 산모의 신음 소리.

    산파를 해주던 윤희씨는 산모랑 함께 호흡했다. 산모가 진통을 느끼면 같이 숨을 길게 내쉬고, 진통이 물러간 사이는 숨을 길게 들이쉬고. 근희씨는 큰아이 현빈이가 엄마 신음 소리에 놀랄까봐 돌봐주었다. 현희씨는 무사히 아이가 나오게끔 곁에서 기도했다.

    “생일에 아저씨 가도 되니?”

    남편은 방을 따뜻이 하려고 아궁이에 군불 지피고 물을 데웠다. 드디어 마지막 진통이 오고 산모가 한껏 힘을 주자, 아기가 빙그르르 돌면서 ‘쑥’ 빠져나왔단다. 그리고 태반이 나오고. 기다림 끝에 탯줄에서 일어나는 호흡이 자연스럽게 멈추자, 남편이 탯줄을 끊었다. 이렇게 채연이가 태어나고 이웃들이 산후 수습을 다하고 나자, 겨울 아침 햇살이 유난히 밝고 따뜻했단다. 이날 채연이가 우리 곁에 온 이야기는 마을 역사에서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이 됐다.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아버지가 만든 투박한 활. 활시위를 당기는 채연이 눈은 오직 목표물을 맞히고자 하는 일념으로 빛이 난다.

    한마을에서 사람끼리 어울리다보면 이러저러한 일로 때로는 부딪치기도 하지만 아이를 낳는 뜻 깊은 일에는 모두가 마음을 모은다. 채연이가 그렇게 우리 곁에 온 이후에 여러 아이가 집에서 태어났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도 이웃이 함께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아이들은 이웃집을 가도 마치 제 집처럼 지내곤 한다. 엄마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밥때가 되면 자기 식구처럼 함께 먹는다. 어느 때는 아이 생일이 동네잔치가 된다.

    얼마 전에는 정수 생일이었다. 정수는 아홉 살, 남자 아이다. 산골 동네라 아이들 생일이라면 자연스럽게 마을에 소문이 돈다. 나도 정수 생일에 은근슬쩍 끼고 싶었다. 정수가 우리 집에 온 김에,

    “정수야, 네 생일에 아저씨도 가도 되니?”

    정수는 빤히 쳐다보면서 대답에 망설임이 없다.

    “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밖에서 들어온 우리 큰아이도 정수를 보더니 같은 걸 묻는다. 아이야 다 좋다 그런다. 그렇지만 정수 어머니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 같아 정수에게 엄마 의견을 물어보라 했다.

    정수 생일날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정수네서 전화가 왔다. 얼른 오라고. 아내는 이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땅콩을 한 솥 삶아놓았단다. 생일 부조 삼아 그걸 한 봉지 들고 정수네로 올라갔다. 정수네 거실이 사람으로 그득하다. 아이만 아홉에 어른도 일곱이나 된다. 아이들은 저네들끼리 선물을 주고받았고 음식도 거의 다 먹어간다. 정수네서 떡과 김밥을 했고, 채연이네서 케이크를 구워왔다.

    음식을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논다고 밖으로 우르르 나가고 어른들은 남은 음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어울려 노는 게 좋다. 밖에서 한참을 놀고 들어온 아이들은 남은 음식을 마저 다 먹는다. 메뚜기떼가 따로 없다. 어른들 생일은 소리 없이 지나가기 일쑤인데 아이들 생일은 이렇게 떠들썩하다. 우리가 어릴 때는 생일인지도 모르고 지나치곤 했는데 세월이 많이 변했다. 요즘 아이들이 부럽다.

    집중과 확신, 그리고 당당함

    이곳 아이들은 어찌 놀까. 내 어린 시절 놀이에는 성별이 뚜렷했다. 남자아이들 놀이와 여자아이들 놀이가 달랐다. 남자들은 기마전, 말뚝박기, 땅따먹기…. 여자들은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소꿉놀이…. 행여나 남자아이가 무얼 모르고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면 놀림을 받았다. 남자애는 여자애들 근처에 가지 않았고, 여자애는 남자애들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여기 아이들은 성 구별이 거의 없다. 온갖 놀이를 함께 한다. 계곡을 누비며 가재를 잡고, 마당에서 편을 나누어 축구를 한다. 드라마 ‘주몽’을 볼 때는 활쏘기 놀이에 푹 빠졌다. 활 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멋있다. 직접 쏘아보는 맛은 더 좋다. 쏜 화살이 과녁에 꽂힐 때는 온몸이 짜릿하다.

    활을 만들자면 탄력이 좋은 대나무가 필요하다. 현빈이네 집 뒤에는 대숲이 있다. 현빈이는 자연스럽게 대나무를 이용한 다양한 놀이기구를 만든다. 낚싯대를 만들어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창을 만들어 전쟁놀이도 즐긴다.

    채연이는 오빠 현빈이와 어울리면서 뭐든 따라 한다. 현빈이가 사냥놀이를 즐기니 덩달아 활쏘기도 좋아한다. 현빈이네 마당에 과녁이 있고 그 곁에 활과 화살통이 있다. 활도 어른 것과 아이 것 해서 서너 가지나 된다. 아이들이 우르르 모이고 누군가 활을 들면 서로 쏘아보고자 한다. 그러나 활을 쏘자면 차례가 꼭 필요하다. 누군가 활을 쏠 때는 과녁 가까이에 있어서는 안 된다. 줄을 서서 차례차례. 너 한번 나 한번 쟤 한번….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창호씨가 이끄는 노래모임. 아이들 표정이 제각각이나 모두 나름대로 열심이다. 노랫말이 적힌 종이를 얼굴로 바싹 당겨 부르는 아이가 채연이.

    활통을 보니 어른 활도 있다. 겉보기는 헙수룩하고 투박하다. 하지만 활시위를 당겨보니 만만치 않다. 오른팔과 왼팔에 똑같이 팽팽하게 힘이 들어가야 한다. 현빈이는 그동안 여러 번 해보아서인지 곧잘 과녁을 맞힌다. 채연이 솜씨도 제법이다. 시위를 당기는 모습에 그 어떤 흔들림도 없다. 집중과 확신 그리고 당당함. 화살과 시위 그리고 과녁을 향하는 눈빛. 자랑스럽다. 활쏘기로 꼭 상을 타야만 자랑스러운 게 아닐 테다. 집중하는 모습 그 자체가 아름답다.

    그런데 마을 아이들 놀이에 제동을 걸 일이 생겼다. 그러니까 1년 전만 해도 마을에서 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들이 우리 집만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현빈이와 채연이마저 학교를 안 다니게 됐다. 아이들이 학교를 원하지 않았고, 부모가 이를 받아들였다.

    현빈이와 채연이는 집에서 마음껏 놀며 자란다. 이제는 우리집 작은아이까지 함께 어울려 논다. 아이들 가운데서도 현빈이가 가장 왕성한 힘을 가진 것 같다. 현빈이는 들과 산, 계곡을 곧잘 누비고 다닌다.

    그러다보니 아이들 노는 게 정도를 넘는 듯했다. 산골이라 자연에서 놀 거리도 많은데다 인터넷이 연결돼 놀이문화가 더 다양하다. 어디서 배우는지 도시 아이들 놀이도 곧잘 한다. 각종 보드게임은 물론 나는 이해도 잘 안 가는 유희왕 카드게임도 종종 한다. 아무리 놀아도 아쉬운 게 놀이다. 결국 두 집 어른들끼리 상의를 했다. 아이들 하는 대로 마냥 놀게 둘 수만은 없다고. 어울려 놀되 배울 건 배우게 하자고. 그렇다고 어른들이 다 가르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선 어른들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부터 몇 가지라도 아이들과 함께 해보자 했다.

    수다 떨기 교육?

    현빈이 아버지 박창호(朴昌鎬·38)씨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 노래모임을 맡기로 했다. 어머니 박경미(朴京美·38)씨는 자신의 전공인 읽기와 쓰기를 일주일에 한 번 맡았다. 그리고 내 아내가 자연 관찰, 나는 수영과 수다 떨기를 자청했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딱히 날짜를 정하지 않고 형편껏 하고 있다.

    이렇게 두 집 아이들이 함께 공부한 지 어느덧 석 달쯤 돼간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글쓰기든 노래공부든 몸을 배배 꼬며 하기 싫어했지만 이제는 제법 자리가 잡혀간다. 적어도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집중한다. 다음은 채연이가 얼마 전 글쓰기 시간에 쓴 글 한 편. 제목은 ‘도둑잡기’다.

    어제 나는 아이들과 도둑잡기를 했다. 나랑 정수가 도둑이고, 오빠랑 정인이가 경찰이었다. 그래서 내가 끈에 묶여 있을 때 정수가 와서 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도망치는데 하필 내가 대나무 숲으로 도망쳐서 잡혔다. 이번에는 둘이 잡혀서 오랫동안 묶여 있었다. 그 때 정수가 끈을 풀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오빠가 마침 나무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정인이 보고 잡으라 했다.

    그런데 정인이는 들은 척 만 척했다. 그래서 할 수 없어 오빠가 나무에서 내려와 우리를 쫓았다. 그러자 정인이도 쫓았다. 그리고 나랑 정수는 정수네 집으로 갔다. 그런데 나는 잡히고 정수는 계속 도망갔다. 정수는 아궁이까지 갔다. 거기에 시계가 있어서 정수가 시계를 보고 이랬다. “야, 차정인, 갈 시간이다, 어서 오라.”

    어른이 아이를 앞장서 끌어간다는 건 대단한 에너지라 생각한다. 현빈이 부모는 아주 열심이다. 정해진 모임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시간을 낸다. 젊다는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이 부부는 우리 부부보다 한참 젊다. 노래모임만은 어른, 아이 함께한다. 현빈 아버지가 노래 가사를 준비해오고 기타로 반주를 하며 노래모임을 끌어간다.

    처음에는 현빈이가 노래모임을 싫어했다. 뭐든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 아이. 함께 노래하자고 둘러앉으면 몸을 배배 꼬며 싫다는 내색을 하곤 했다. 그러나 동기 부여에 시간이 걸리지, 하기로 마음먹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한다. 아이들은 배우고자 하면 정말 잘 배우고 빨리 익힌다.

    그런데 이 노래모임은 시간이 갈수록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간다. 현빈이네와 우리 집 식구를 다 더하면 여덟이다. 이렇게 두 집이 하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현빈이네 가까이 사는 정수도 함께 하고 싶어한다. 정수는 학교에 다닌다. 그래서 정수를 배려한다고 모임 시간을 늦추었다. 학교가 끝난 오후 세 시로. 정수에게는 동생 정인(7)이가 있다. 정수가 노래모임에 오니 정인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정인이는 노래를 함께 하기도 하고 저대로 놀기도 한다. 이렇게 모임을 하다보니 어느새 열 사람이다.

    지면 쪼그려 뛰기!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경미씨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글쓰기 시간. 아이들은 말할 때는 온갖 수다를 떨다가도 글을 쓸 때는 몰두한다.

    아이가 점점 많아지니 산만하기도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적당한 경쟁의식 같은 게 생기고 상승 에너지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한번은 ‘개구쟁이’라는 노래를 배우고 나서 “누가 혼자 부를 사람?” 그러자 “저요” 하며 채연이가 먼저 나선다. 그리고 다음은? “제가 할래요” 하며 현빈이가 부른다.

    그 다음은 아이들이 남자 대 여자로 편을 나누자고 한다. 굳이 경쟁을 가르치지 않아도 어디선가 경쟁의식을 배워오나 보다. 그러면서 시합을 해서 진 편이 ‘쪼그려 뛰기’를 하자고 한다. 몇 번 할까를 놓고 한참을 토론(?)했다. 현빈이는 50번. 헉! 나는 겁이 난다. 그렇게 했다가는 나중에 종아리에 알이 박히는 거 아닐까. 아무래도 남자들이 질 텐데. 현빈이를 달래고 설득해 30번 뛰기로 하고 시합을 했다.

    노래 분위기가 점점 과열된다. 결과는? 심판을 맡은 현빈 아버지가 “똑같다”고 하자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확실히 말해요. 누가 이겼어요?”

    그러자 내가 나섰다.

    “솔직히 내가 봐도 남자들이 졌어. 여자들은 한 군데 틀렸는데 남자들은 세 곳 쯤 틀렸잖아!”

    그랬더니 남자 녀석들이 군말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는 쪼그려 뛰기를 한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쪼그려 뛰기 열 번이 넘어가니 여자인 채연이도 줄 끝에 끼어,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뛴다. 승부는 승부대로 재미있지만 그렇게 쪼그리고 뛰는 것도 재미있나 보다. 가만 있자, 나도 진 편인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스무 번이 넘어갈 때쯤 나도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뛰었다. 아이들 덕에 나도 나이를 잊고 노래가 주는 신명과 활력을 조금씩 되찾고 있다.

    또 다른 덤도 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 음악교육이 부족하다 싶었는데 이렇게 하다보니 많은 부분이 해결되는 듯하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곧잘 노래를 흥얼거린다. 또 박자와 리듬에 귀가 열리는지, 설날 받은 세뱃돈으로 디지털 피아노를 사고, 피아노 책을 다른 이들에게 물려받아 스스로 배우고 있다. 어느덧 우리 삶 속에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가!

    이렇게 이웃이랑 함께하니 한 주가 금방 지나가고 금방 돌아온다. 재미있는 건 이웃끼리 가까워질수록 할 이야기도 더 많아지고 서로에게 자극이 된다는 점이다. 가끔은 일상을 뛰어넘는 대화라고 할까, 근본을 돌아보는 자리도 서로에게 필요하지 싶다. 모임이 끝난 자리에서 이 집 부부의 교육철학에 대해 좀더 알고 싶었다. 그러자 창호씨가 쑥스럽다는 듯 말을 꺼낸다.

    ‘이거다 하는 방향’

    “교육철학이요? 너무 거창한데(웃음). 그냥 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어쨌든 아이는 부모 뜻으로만 움직여지는 게 아니잖아요. 또 부모의 영향이 크겠지만 아무래도 부모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부모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부모 이외 환경이라면 친구 관계나 이웃 관계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했을 때 제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이 자연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리라는 믿음 때문이지요. 자연이 부모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점이 가장 크지요.”

    완벽한 부모가 없다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그런데 그 부족분을 ‘자연이 보충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보니 부모 노릇에 대해 조금은 부담이 덜어진다. 그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다.

    “아이들은 일단 보고 배우는 거잖아요? 학교 다닌다면 학교를 보고 많이 배우겠지요. 자연에서 보고 배운다면 아이들 심성에 좋은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요? 이는 아이들 교육뿐만이 아니라 저 자신을 봐도 그래요. 자연에 살다보면 저 자신의 왜곡된 심성이 어느 정도 극복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돼요. 그렇지만 아이들 교육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건 고민해보지 않았어요. 단지 어떻게 하면 저 자신이 지금보다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지요.”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정수 생일. 어른들까지 끼어 잔치를 벌인다.

    지금보다 더 나은 부모?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이 와 닿는 말이다. 잠시 말을 그치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생각에 빠져든다. 그렇게 말없이 뜸을 들이자 곁에 있던 경미씨가 말을 받는다.

    “아직 확고하게 정리되지 않은 거지만 ‘이거다 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맞다고 봐요. 저도 이곳에서 10여 년 사는 동안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제 생각이 정리되는 만큼 아이들 교육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요리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집에 있다보니 일단 자기 먹을 거 챙기게 되고, 자기 놀이를 스스로 찾게 되고,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고, 자기 주변을 살피게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정신이 훨씬 일찍 깨어나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자기 주도성이 높아진다고 할까요. 요즘 현빈이나 채연이를 보면 요리를 서로 하고싶어 해요. 열두 살 아이가 벌써 밥 할 줄 알고 찌개 끓일 줄 아는 거예요. 제가 집에 없어도 아이들이 스스로 하니까. 그런 걸 보면서 이 방향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들을 학교에 보낼 땐 애들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꾸 돈 벌 궁리를 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돈에만 내 마음을 쏟지 않고 어떻게 배울까를 같이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내 학창시절에 아쉬웠던 부분을 떠올려보지요.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정말 참지식을 얻고 싶었는데 그걸 놓쳤거든요. 그 과정에서 좌절감도 컸고 상실감도 컸는데 요새 그걸 느껴요. 아이들과 집에서 같이 지낸다는 건 내가 새롭게 배울 기회를 얻는다는 거지요. 수학도 같이 하고, 노래도, 글쓰기도 같이 하고, 나중에는 영어도 같이 할 거고.”

    말문이 터지니 경미씨 입에서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술술 흘러나온다. 요즘 대학까지 마치고도 홀로서기를 못하는 젊은이가 많은 걸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려운 점도 있겠지.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 어려움도 있지요. 창호씨는 자연과 주고받는 교감에 비중을 두지만 저로서는 사회와 소통에 무게를 두는 편이거든요. 아이들이 노는 것도 좋지만 공부든 일이든 좀더 체계 있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들과 함께 해 나가다 어떤 벽에 부딪힐 때 어떻게 방향을 잡아가야 하나 고민될 때가 가끔 있어요. 우리만의 틀을 잡아가야 하는 게 숙제라고 봐야겠지요.”

    아이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려운 게 없단다. 요리조리 찔러보지만 끄떡도 없다. 묻는 걸 바꾸었다.

    “현빈이는 심심할 때 어떻게 하니?”

    “저는 밖으로 나가서 막 돌아다녀요. 그러다보면 하고 싶은 게 생겨요.”

    “채연이는?”

    “저는 가만히 있어요. 그럼 하고 싶은 게 떠올라요.”

    간단하면서도 명쾌하다. 두 아이 이야기를 듣고보니 묘한 그림이 떠오른다. 현빈이는 남자로서 동굴 밖으로 사냥을 나가는 모습, 채연이는 동굴을 지키며 이것저것 살림을 사는 모습. 그러니까 심심함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먹는 걸 좋아한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데다 과자 같은 걸 사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가게까지 너무 먼 것도 이유. 어쩌다 한번 면에 있는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이라도 먹을 때 보면 알뜰히도 먹는다. 몸을 많이 움직이는 현빈이는 자장면 한 그릇으로 모자라자 면을 더 시켜 곱빼기를 먹는다.

    이렇게 먹성이 좋으니 둘레 있는 먹을거리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나보다. 계곡에서 가재나 다슬기를 잡아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요리에 관심을 갖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 욕구를 내치지 않고 그 부모가 잘 이끌어 주니 우리 식구도 현빈이가 한 요리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매화꽃이 활짝 피던 날, 모임이 끝나고 현빈이네서 밥을 먹고 가란다. 현빈 엄마는 마당에서 쪽파를 뽑고, 아이들은 머위 잎을 뜯어온다. 현빈 아버지도 달걀을 풀고 있다. 준비되는 대로 전을 부치고 밥을 하는 등 시끌벅적하다.

    다시 아이들끼리 잠깐 놀더니 현빈이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아참, 나 된장찌개 끓여야 돼.”

    “네 된장찌개 맛있다!”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모춤 하나를 들고 우리 집 논두렁을 뛰어가는 현빈이. 아이들은 일과 놀이를 구별하지 않는다.

    조금 지나자 밥상이 차려진다. 아이들이 뜯어온 머위 잎 먼저. 그리고 부침개를 접시에 담고, 깍두기를 상에 놓는다. 밥을 사람 수에 맞게 푸고, 된장찌개는 드문드문 놓는다.

    현빈이가 끓인 된장찌개, 탑탑하니 맛있다. 무얼 넣고 끓였나 보니 감자도 있고, 표고버섯도 있다. 그리고 다시마와 쪽파도 넣었다. 봄비에 막 돋아난 표고버섯이라 맛이 아주 좋다. 찌개 간도 잘 맞는다. 그냥 칭찬이 아니라 함께 먹은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간을 잘 맞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요리를 한 가지 하면 거기에 집중하니까 그렇다는 거다.

    “현빈아, 된장찌개 맛있다. 요리를 얼마나 배웠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된장찌개말고는 김치찌개와 달걀국 정도예요. 그리고 밥 하기.”

    아이들은 자라면서 엄마가 하는 요리를 따라 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를 말리는 엄마가 적지 않다. 다친다고 하거나, 그냥 공부나 하라면서. 아니면 부엌을 어지럽히고 일거리만 더 만든다고 성가시게 생각한다. 그러나 현빈 엄마는 아이들이 요리에 관심을 갖는 게 무척 대견하고 예쁘다고 했다. 이웃인 우리가 봐도 예쁘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아이들이 싱그럽게 자라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먹고, 자고, 싸기를 저 알아서 할 때 그렇다. 배우기도 마찬가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걸 배울 때는 눈에서 빛이 난다. 일도 그런 것 같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일과 놀이는 구별이 안 된다. 부모가 하는 일을 지켜보다가 자신이 할 수 있다 싶으면 달려들어 해본다. 채연이는 빨래를 곧잘 갠다. 현빈이는 부모랑 같이 감자를 심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렇게 잠깐씩 집안일을 하면서 한식구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이웃집 일도 놀이 삼아 곧잘 한다. 현빈이와 채연이는 우리 집에 자주 오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집 일도 함께 한다. 산에서 불쏘시개를 해오기도 하고, 나락(벼) 베고 타작할 때면 자기 집 일인 것처럼 단단히 한몫했다.

    지난해 모내기 때는 아이들이 흥분한듯이 우리 집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일이란 ‘모춤 던지기’였다. 우리는 모를 손으로 심는다. 그러자면 먼저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야 한다. 이 모를 한 움큼씩 묶는 걸 모춤이라고 한다. 다 된 모춤을 이제 본 논에 골고루 던져 넣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모춤 던지기는 어찌 보면 투호놀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볼링 같기도 하다. 이 놀이는 보통 재미있는 게 아니다. 반대로 모춤을 묶어내는 일은 더디다.

    아이들끼리 서로 던지겠다고 난리다. 못자리에서 모를 뽑아 묶고 있으면 아이들이 가져가려고 기다린다. 모춤이 하나가 되자 그냥 들고 뛴다. 좁은 논두렁을 넘어지지도 않고 기우뚱 균형을 잡으며. 이렇게 놀이 삼아 일을 하고 나면 밥이 얼마나 맛있겠나. 논두렁에 둘러앉아 참을 먹다보면 그야말로 우리는 식구가 된다. 내 아이, 네 아이 없이 우리 아이가 된다.

    “건강한 게 돈 버는 거래요”

    어른들이 너무 바쁠 땐 아이들끼리 서로 치이기도 한다. 아이들은 한두 살 차이만 나도 몸집에 차이가 크다. 이곳 아이들은 어떤 때는 네댓살 나이 차이에도 서로 어울려 놀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이따금 작은아이들 울음소리가 들린다. 형이나 오빠들 리듬을 따르다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마음이 아프다.

    큰아이들에게 어린아이들을 친동생처럼 대하라고 말을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식구 사이에도 위아래 형제나 남매 사이에 가끔 다툼이 생기니까. 어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아이들이 어리더라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어른이란 잣대를 접고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종종 느낀다. 작은 아픔조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와 내가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는 걸 발견하곤 한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내려오는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시골로 온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럼,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부모는 자신이 좋아 선택했지만 아이는 어떠냐고. 그럴 때는 아이에게 그 질문을 직접 던져보는 게 좋지 않을까.

    “현빈이는 도시에 가서 자라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없어?”

    “음, 전 그냥 이렇게 살고 싶어요.”

    “그래? 좀 자세히 말해볼래?”

    “도시 나가면 매연도 많고, 몸에 좋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받고. 돌아다녀봐야 병밖에 안 걸리고. 지금처럼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러자 곁에 있던 채연이 왈.

    “이곳은 동심과 호기심에 가득 찬 어른들이 사는 마을”
    김광화

    1957년 경북 상주 출생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1996년 서울을 떠나 1998년부터 전북 무주에서 자급자족 농사

    정농회 회원

    저서 : ‘아이들은 자연이다’


    “아빠가 그러는데요. 건강한 게 돈 버는 거래요(웃음).”

    다른 아이들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자신이 사는 곳과 배울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이 아이들이 10년쯤 뒤면 어른이 된다. 그때 모습은 어떨까. 그리고 이 마을은? 이 아이들이 어른이 돼 다시 아이를 낳고 키운다면?

    문득 살아 있는 동화를 한 편 쓰고 싶은 마음이 인다. 어린 시절 자연의 삶을 점점 잃어버리는 세상. 아이다운 마음과 호기심을 가진 어른도 드물어지는 게 아닐까.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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