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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 원류 탐험기 16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It’이던 그들, ‘He’가 되고‘She’가 되다

  • 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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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을 향한 대장정 워싱턴·애틀랜타

더글러스가 말년을 보낸 워싱턴의 집, ‘세다 힐’.

예컨대 개리슨은 더글러스에게 그의 연설을 계도하면서 “자네는 사실만을 말하게, 철학은 우리가 맡을 것이네”라고 주문했다. 더글러스는 높아가는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개리슨의 하수인, 곧 반노예제집회에서 그의 주장을 예증하는 ‘텍스트’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더글러스에게 ‘인생 이야기’의 집필은 이처럼 흑인에 대한 백인의 고정관념에 맞서서 그것이 근거 없는 편견임을 백인 사회에 인식시키고, 아울러 명실상부하게 자기가 자신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의식(ritual)과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자아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자유의지를 천명하는 행위였다. 그가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노예 상태에서 자유에 이르는 도정”의 첫걸음으로 강조하면서 글을 깨우친 눈물겨운 과정을 ‘인생 이야기’에 소상히 기록해놓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개리슨과 의견차이로 결별한 후 그는 로체스터로 옮겨가 흑인의 처지를 대변하는 ‘북극성(North Star)’이라는 신문을 창간해 독자적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의 전면에 나서는 한편, 탈주 노예의 도피를 돕는 지하조직(Underground Railroad)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도움으로 캐나다로 탈주한 흑인만도 수백명에 달했다.

더글러스는 1848년에 수전 앤터니(Susan B. Anthony), 엘리자베스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 등이 주도해 세네카 폴스에서 열린 미국 첫 여성대회에 참석, 비판적인 여론에 밀려 머뭇거리는 여성 참석자들을 제치고 여성의 참정권 쟁취를 고취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의 기치 아래 세워진 나라인 만큼 미국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억압받는 사람에게 민주적 평등과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여야 함을 역설했다.



백인들만의 독립기념일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의 긴장이 점점 고조돼가는 185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글러스는 뛰어난 지성과 용기, 그리고 능변으로 이미 북부에서 가장 주목받는 흑인 지도자가 돼 있었다. 그는 각지에서 쇄도하는 강연 요청에 응해서 혹은 그 스스로 기획해 북부 각지를 순회하면서 수많은 강연을 했다.

그는 재치와 유머로, 그 자신이 직접 체험한 예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를 19세기 미국의 가장 뛰어난 연설가로 만든 수사적 무기는 무엇보다도 독립이념이었다. 예컨대 명연설의 하나로 꼽히는 1852년 7월5일의 로체스터 연설에서 그는 백인 청중에게 7월4일의 의미를 되새기라고 요구했다.

여러분의 조상들로부터 상속받은 그 풍요한 유산, 곧 정의, 자유, 번영, 독립 정신은 백인 여러분만의 것일 뿐, 나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생명과 치유력을 가져다주는 저 햇볕이 나에게는 채찍질과 죽음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이 7월4일은 여러분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환희에 젖을지 모르지만, 나는 애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슬에 묶인 사람을 이 장엄하게 빛나는 자유의 성전으로 끌어내 환희의 축가를 부르는 여러분에게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비인도적인 조롱이요 신성 모독적인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실로 신랄한 수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시기의 경험을 살려 ‘인생 이야기’를 개작한 그의 두 번째 자서전 ‘나의 예속과 나의 자유’(My Bondage and My Freedom, 1855)는 이런 식의 흑백을 대비시킨 대립적 수사로 채색돼 있다.

어쨌든 백인 지배체제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이처럼 미국적 이념에 근거해 있기에 그는 흑인 투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의 감시자요 민주주의의 전도사라고 불러 마땅한 것이다. 그가 19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중요 작가로 부상하게 된 궁극적 원인도 이처럼 인종의 경계를 넘어서서 더 넓은 지평에서 인간 해방을 꿈꾸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출렁대는 강물에 드리운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들이 피곤한 길손의 눈에도 싱그럽다. 잠시 강변을 따라 메인 가를 달리다가 아나코스티아 강을 가로지르는 프레더릭 더글러스 기념교를 건넜다. 강을 건너자 풍경이 달라진다. 건물도 허름하고 흑인이 눈에 많이 띈다. 안내서에 적힌 대로 마틴 루터 킹 거리를 찾아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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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수 서울대 교수·미국문학 m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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