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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뽕짝 가요계 ‘트로트 르네상스’ 다시 보기

서민, 성인, 지방 ‘코드’로 끈질긴 이별통지

  • 신현준 대중음악 평론가 homey8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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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짝뽕짝 가요계 ‘트로트 르네상스’ 다시 보기

장윤정과 함께 트로트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박현빈, 뚜띠, LPG(위에서부터 차례로).

그러니 정통 트로트냐, 아니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싱겁다. ‘트로트 가수가 부르면 정통 트로트고, 트로트 가수가 아닌 가수가 부르면 퓨전 트로트’라는 것은 단지 말장난이 아니다. 트로트의 시스템 내부에서 제작되고 배급되면 트로트에 속하고, 그렇지 않으면 트로트가 아니다. 또한 트로트는 부단히 다른 장르와의 이종교배에 의해 생명을 늘여갔다. 요즘의 트로트 리바이벌 현상도 이런 이종교배의 최근 사례 이상은 아닐 것이다.

정통 트로트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나는 트로트가 주는 쾌락은 그것이 정통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음악에서 정통성이나 정전(正典·canon)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달리 표현하면, 트로트를 좋아한다는 것은 재즈, 포크, 록 같은 ‘존중받는’ 음악장르를 애지중지하고 사랑하는 행위를 무시하고 전복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중음악이란 그저 ‘유행가’라는 태도가 트로트에 대한 취향과 일치한다. 즉, 트로트를 즐기는 순간 우리는 ‘음악이 예술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있다.

트로트의 쾌락과 고통

그럼에도 트로트에 대한 취향에는 끊임없이 시비가 따라다닌다. 왜 그럴까. 트로트와 연관되는 기호들을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자.

트로트를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는 ‘서민’이다. 서민이라는 단어는 이론적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 용법에 따르면 ‘중산층이 아닌 사람들’을 뜻한다. 이 말이 맞다면 트로트는 중산층(정확히 말하면 중간계급)의 사랑을 받는 음악은 아니다. 교육받고 교양있는 중산층은 트로트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서민에게 트로트는 생활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것 같다. 트로트가 서민의 생활 리듬을 담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성인’이다. 이때 성인이란 단지 물리적 나이만을 뜻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성인이 되었다’는 말은 특정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는 말은 ‘삶의 무게에 허덕이고 있다’는 조건을 총칭한다. 이렇게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연예’는 생필품이고 그만큼 절박하다.

세 번째 키워드는 ‘농촌’이다. 한국 사회에서 농촌 인구의 비중은 현격히 감소했기 때문에 농촌이라는 말이 더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트로트의 음악적 분위기는 대도시의 번잡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 트로트가 대도시에서 연주되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그때 트로트가 전달하는 감흥은 ‘고향을 두고 멀리 떠나온 사람’에게 가장 강렬할 것이다.

정리하면 트로트는 ‘서민’ ‘성인’ ‘지방’이라는 기호를 담고 있는 음악이다. 트로트의 탄생과정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술논문에 따르면 트로트가 탄생했을 때는 농촌 서민의 음악이 아니라 대도시 엘리트의 음악이었다고 한다. 만일 당시의 노래 가사를 접한 사람이라면 가사의 문학적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 아닐 경우 이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트로트의 탄생을 어림잡아 1930년대로 잡는다면 트로트는 1930~40년대 한국에서 전성기를 누린 셈이다. 오케레코드나 태평레코드 등 당시 음반산업계를 주름잡은 레코드사에서는 ‘문예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작사를 했다.

이렇게 도시의 식자층이 만들어낸 음악이 시간이 흐른 뒤 지방의 성인 서민의 취향에 부합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이는 트로트에 원죄처럼 따라다니는 ‘왜색(倭色)’혐의와 관련돼 있다. 이 혐의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트로트, 뽕짝, 그리고 ‘왜색’

트로트라는 용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정설은, 이 논란 많은 용어가 2박자의 볼룸댄스 리듬의 하나인 폭스트로트(foxtrot)로부터 파생됐다는 것이다. ‘폭스’라는 수식어는 이 리듬을 고안해낸 무용가인 헨리 폭스(Henry Fox)에서 유래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정설이다. 미국에서 발원한 이 리듬이 일본에 상륙하면서 일본인 특유의 발음과 결합해 ‘도롯도’가 됐다가 한국에서 트로트로 수정됐다는 설명에 대체로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그런데 우리가 요즘 쓰는 트로트 장르는 리듬 패턴을 넘어 악곡 양식(song form)을 지칭한다. 거칠게 말한다면 ‘흘러간 유행가’는 모두 트로트라고 칭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1950~60년대에 나온 악보들을 보면 우리가 지금 트로트라고 부르는 음악들 모두가 트로트로 범주화됐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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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 대중음악 평론가 homey8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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