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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정신대 할머니’ 김수해

“불인두로 지지고 자궁까지 도려냈지, 그래도 새벽은 오지 않았어”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정신대 할머니’ 김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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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할머니’ 김수해

열 일곱에 가족과 생이별을 한 김수해 할머니. 어머니는 임종 순간까지 수해를 찾았다.

기차역 앞에서 처녀 여덟이 밥을 먹었다. 길을 잃을지 모르니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했다. 방 밖에서 누가 지키는 눈치였다. 무언가 불안했다. 이튿날 기차를 탔다.

“일반차가 아니라 짐칸 같은 찹디다…. 창문이 하나도 없습디다. 덜컥거리며 가기는 가지만 내다볼 수가 없으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냥 며칠을 그 안에 갇혀서 차를 타고 간 거 같소. 그게 암만해도 군용차 같앴소. 보진 못해도 딴 칸에 군인이 가득 타고 있었던 갑소. 우리 중에 얼굴 반반한 몇은 기차 안에서 벌써 어디론가 끌려나갔다 옵디다. 돌아와서 엎드려서 울어싸요. 그게 뭘 뜻하는지 알겠데요. 들은 적은 없어도 왜 우는지 다 알아지데요…. 기가 딱 찹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요. 어데로 도망갈 수가 있었것소?”

며칠 후 기차를 내렸다. 혹은 그냥 하루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극도의 공포와 극도의 절망 속에 기차에서 내리자 일찍이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찬바람이 귀때기를 때리며 지나갔다. 여기가 시베리아라는 데구나 싶었다. 1944년 10월이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니

“알고 보니 목단강이었습네다.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제1신시가지. 산 밑에 허름한 가건물이 죽 늘어서 있데요. 군부대가 주둔한 것 같앴어요. 우리들을…, 그걸 머라고 합니까?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 있잖소? 아, 의무병이라고 칭했습네다. 너희들은 군대다, 군대 중에서도 의무병이다, 의무병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3년만 임무를 완수하면 집으로 보내준다, 돈도 줄 것이다, 얼른 전쟁에 이겨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동안 잘 싸워달라고 했습네다.”



난 정말 물어볼 게 많았다. 우선 그 말을 한 사람의 신분이 뭔지, 도착한 후 기분이 어땠는지, 처녀들의 나이는 얼마 정도인지, 몇 명쯤인지, 거기까지 온 경위를 서로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지, 외모는 평균 이상이었는지, 머리는 어땠는지, 옷이나 화장품을 나눠줬는지, 먹을 것은 충분했는지, 군인은 하루 몇 명쯤 왔는지. 얼마나 머물렀는지, 혹 우정이나 사랑 비슷한 게 생길 틈은 없었는지, 몇 푼이라도 돈을 받은 적은 있는지 등등등.

“내 차근차근 다 얘기할 끼요. 내 죽으면 누가 그걸 말하겠소. 일본 총린가 뭔가 하는 놈, 그 아벤가 뭔가 하는 놈이 우리를 동원한 적이 없다고 한다믄서요? 내가 날마다 아홉시 뉴스는 빼놓들 않고 보요. 내가 당장 일본에 달려가서 허파를 뒤집어 보이고 싶제마는…. 자식들하고 조카들 눈이 있어 가질 못해요. 까짓꺼 이야기사 왜 못하것소? 다만 내 이름자를 말하지는 마시오. 우리 아부지가 특별하게 지어준, 얼마나 뜻이 좋은 이름인데…. 말해뻐리면 자식들이 내 일을 다 알 꺼 아이요?

하긴 알아도 상관없소. 내 인제 얼매나 살 끼라고. 그 안에서 맞아 죽는 것도 봤고 목매 죽는 것도 봤소. 그런데 사과는 못할 망정 그런 일이 없었다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놈들…. 일본이 망하는 걸 내 눈으로 봐야 하는데. 내 몸 한번 볼라요? 내 나이 팔십인데 인제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소.”

일본의 책임 이야기가 나오자 김 할머니는 몹시 흥분하신다. 옷을 걷어 당신의 맨몸을 이리저리 보여준다. 아아, 그 몸은 참혹했다. 온몸이 흉터 투성이였다. 젖가슴과 엉덩이와 등과 팔뚝과 허벅다리…. 깊은 속살, 은밀한 곳마다 흉측하고 잔인하게 흉터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흉터를 지니고도 어찌 그토록 침착하고 유쾌할 수 있었는지.

“일본 군인놈이 불로 지진 거요. 화로 속에 꽂는 인두로. 3년만 임무를 완수하라니. 3년을 무슨 재간으로 버티겠소? 앞이 캄캄합데다. 1년이 안 가 뼈가 다 녹아불 것 같앴소. 온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 허깨비가 될 거 같앴소. 그래서 도망을 쳤어요. 내가 간이 커요. 어려서부터 담대했어요. 포항에서 같이 갔던 여자 셋을 꼬았어요.

여기서 죽느니 나가서 죽자, 중국 시골로 달아나서 농사지으면서 살자. 그렇게 탈출을 주동했어요. 도망치다 붙잡혀 와서 맞아죽는 것을 본 적 있소. 그래도 못 견디겠데요. 한밤중에 문지기가 조는 틈을 타서 대문을 빠져 나왔어요. 잡혀간 게 시월이고 도망칠 때는 간 지 서너 달 뒤니까 섣달쯤 됐을 거 같네요.”

집 울타리에 철조망을 쳐놓고 철조망에 전기를 설치해놨다고들 했다. 다행히 전기에 걸리지 않고 울을 넘었다. 무조건 달렸다. 날이 훤해질 때까지. 외딴집까지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몸이 얼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송화강 주변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신고 있는 신발은 일본식 나막신인 ‘게다’였다.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집안에서 중국인 여자가 나왔다. 바느질 하는 집인데 이상하게 환대를 했다. 그 집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얻어 마시고 지친 몸을 녹이는 중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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