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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북한 HEU 의혹은 美 네오콘의 정보조작?

근거는 ‘러시아 강관 수입’, 그러나 CIA의 ‘선 넘은’ 과장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2002년 북한 HEU 의혹은 美 네오콘의 정보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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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U 관련 최초 정보는 한국측의 HUMINT?

외교관 아내 피살, 초합금 도입 차단…1999년이 절정


북한의 HEU 개발에 대한 최초의 정보는 한국에서 제공했다는 것이 미국측 인사들 사이의 정설이다. 한국 정보기관의 인간정보(HUMINT·Human Intelligence)를 바탕으로 추적해보니 파키스탄으로부터의 핵 기술 도입이 확인됐고,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강관 수입이 결정타를 날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측 전직 당국자들이 지목하는 사건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6월,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사관의 강태윤 경제담당 참사관의 아내 김신애씨가 저격을 당해 사망한다. 묘할 수 밖에 없는 ‘외교관 아내 피살사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북한인 세 명이 파키스탄의 칸 연구소에 파견돼 있었다는 첩보가 국정원에 입수됐다는 것. 김신애씨의 시신을 본국으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그 관에 파키스탄이 제공한 원심분리기 샘플과 설계도가 들어있었다는 설도 있다. 국정원은 이러한 내용을 미국에 통보했고 함께 추적에 나서 확인하는 수확을 거뒀다.

그 직후에는 북한이 가스 원심분리기의 회전자 재료인 마레이징강 초합금을 수입한다는 첩보가 있어 미국 정보기관과 함께 차단한 적도 있다. 초합금 수입과 관련해 당시 국정원은 북한측의 구매 영수증을 입수해 미국측에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2002년 10월 신건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외부에는 미국측이 말하는 ‘인간정보’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등 탈북 인사들의 진술을 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관계 당국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황 전 비서의 경우 파키스탄의 핵실험 성공 이전에 탈북했고 분야도 달랐기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 적이 없다는 것. 파키스탄에 주재한 적이 있는 홍순경 전 참사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 외에 HEU 관련 정보라며 나서서 진술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사실과 다르거나 턱없이 과장된 내용 뿐이었다는 것.

이러한 정보들은 대부분 기술개발이나 연구 수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대량생산을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는 유럽에서 확인된 것으로 전해지는 러시아 강관 수입과 2003년 NSG에서 확인된 독일로부터의 알루미늄 강관 수입 시도 좌절이 전부라고 관계 당국자들은 전했다. 두 경우 모두 해외에서 파악돼 미국을 거쳐 한국에 통보된 정보다.


“그 알루미늄 튜브는 세계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인데다, 그 자체로는 가스 원심분리기 생산의 수준이나 단계, 앞으로의 일정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 그보다 민감한 다른 품목을 입수했는지에 대한 정보 없이 생산능력 완료시점을 예측하는 것은 막연한 추정(speculation)에 불과하다.”

시간은 흘렀고, CIA의 의회 보고가 설정했던 ‘2000년대 중반’이 됐지만, 북한이 HEU 생산시설 건설을 완료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 언론에서는 익명의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의 HEU 프로그램이 우려하던 것만큼 진척된 것 같지 않다”거나 “생산시설은 아예 없었다” “켈리 방북 당시 북한이 이를 시인한 것은 미국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조작과 실패와 과장 사이

2007년 현재 시점에서 2002년 CIA의 정보판단을 평가해보면 이렇다. 러시아로부터의 강관 수입은 분명 북한이 HEU 연구개발이 아니라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정보였다. 당시는 이라크에서의 정보 판단이 실패였음이 확인되기 전, 다시 말해 알루미늄 강관을 원심분리기 제조의 증거로 삼기엔 위험하다는 것을 CIA가 ‘경험’하기 전이었다. 따라서 미국이 이를 의미 있는 정보로 생각한 것, 이를 바탕으로 ‘1년에 2기’라는 생산능력 목표를 산출한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2002년 당시 북한 HEU에 대한 미국의 정보판단을 음모론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러시아로부터의 강관 수입 자체가 조작된 정보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당시 CIA의 판단을 ‘정보조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 북한이 우라늄 농축기술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파키스탄으로부터의 기술 도입으로도 충분히 확인된다. 다시 앞서의 당시 정보당국 핵심관계자의 분석이다.

“그러나 CIA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생산시설 건설을 위한 재료 구입 착수’로 알려진 2002년 6월 NIE의 결론은 납득할 만했지만, 이를 ‘생산시설 건설’로 고쳐 표현한 그 해 11월의 의회 보고는 분명 ‘선을 넘은’ 것이었다. 특히 ‘2000년대 중반까지 시설구축이 완료될 것’이라는 부분은 압권이다. 공개된 보고서는 북한이 HEU 생산공장 건설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것처럼 기술돼 있지만, 이는 분명 사실과 달랐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상황이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으로 발전했다는 당시 CIA의 정보판단은 분명 ‘실패’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특히 2002년 11월의 의회 보고는 ‘정보 과장’이라고 결론 내릴 만한 정황이 충분해 보인다.

질문은 이제 막바지로 향한다. 과연 왜 이 때의 미국은 정보 판단에 실패했을까. ‘연구개발부터 대량생산까지’ 가능한 다양한 해석 가운데 왜 ‘생산공장 건설 착수’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골랐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지표 하나에 의거해 완공시점까지 지목하는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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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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