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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북한 HEU 의혹은 美 네오콘의 정보조작?

근거는 ‘러시아 강관 수입’, 그러나 CIA의 ‘선 넘은’ 과장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2002년 북한 HEU 의혹은 美 네오콘의 정보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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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북한 HEU 시인’ 당시 상황

기선제압 시도한 평양, 미국 속내 몰라 오판한 듯


북한은 과연 HEU를 인정했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평양을 찾은 이래 꾸준히 제기돼온 의문이다. 협상 첫날 켈리 차관보의 HEU 프로그램 추궁에 대해 전적으로 부인하던 북한측은, 다음날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그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 있다”고 말한다. 평양 주재 영국대사관을 통해 방북단의 전문을 받아본 볼튼 당시 차관보는 “내가 얘기하던(recount) 그대로여서 믿을 수가 없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볼튼 등 강경파들이 이후 과정을 주도했다는 점을 들어 “북한이 시인했다”는 당시 미국의 발표 역시 강경파의 조작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러나 방북단에 참가했던 이들 가운데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당시 강석주의 뉘앙스는 분명 인정하는 쪽이었다”고 말한다. ‘그래 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는 투였다는 것. 특히 ‘인정했다’는 결론 자체는 방북단 전원이 동의하여 내린 것이었다. 강경파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방북단 구성원들조차 지금도 북한의 시인 자체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를 통역상의 오류나 과잉해석이라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

이후 북한은 공식발표를 통해 “‘더한 것’은 일심단결을 뜻했다”며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럼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서 왜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일까. 27년간 미 국무부에서 일한 당시 방북단의 통역 김동현씨의 말이다.



“북한은 협상마다 으레 강성발언으로 기선을 제압하곤 했다. 초반에 상대방의 의지를 꺾은 다음 조금씩 현실적인 논의를 진전시키는 식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평양은 미국이 새로운 대북정책을 제시할 것이라 기대했다. 따라서 미국이 강하게 나오자 HEU를 인정하는 듯한 더 강한 발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반응을 살펴 다음단계로 나아가려했던 듯싶다. 첫째 날과 둘째 날 사이 밤새도록 그런 전략을 논의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2년 가까운 대북정책 재검토를 끝낸 상태였다. 방북단의 공식적인 목적은 ‘관계개선을 위한 협의’였고, 북한은 물론 한국도 켈리의 방북이 새로운 대북정책을 전달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평소처럼 ‘강도 높은 기선제압’을 시도했지만, 정작 방북단의 실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 북한의 HEU를 확신하고 있던 미국측은 켈리 특사에게 이를 추궁하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대북정책’이 있었다면 강경노선으로의 분명한 선회였던 셈. 따라서 둘째 날 북한의 시인성 발언이 나오자 결론을 얻은 방북단은 바로 귀국했고, 평양은 뒤통수를 맞았다. 이후 “방북단이 오만했다”며 수습을 시도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외교협상에 강한 북한이 남긴 오판 사례의 하나로 기록할 만하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였다”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등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나 제네바 합의를 경멸했지만(despise), 2002년 상반기까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추가정보’가 들어왔고, 정보당국은 HEU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부시 행정부는 켈리를 북한에 보내 ‘우리는 알고 있다. 멈추지 않으면 제네바 합의는 끝난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북한의 시인 발언에 대한 네오콘의 반응은 환호에 가까웠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어겼으니 이제 합의를 끝장낼(kill)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2002년 당시 관련 핵심부처에서 북핵 문제를 다뤘던 미국측 관계자의 회고다. 역시 북핵 관련 실무에 간여했던 또 다른 미 행정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통령이 김정일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나쁜 놈이라는 정보가 들어오면 대통령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최고결정단계는 정보의 세부사항을 따지지 않는다. 분석파트에서 내린 결론을 볼 뿐이다. 모두 그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분위기를 주도하면, 다른 이들이 제동을 걸기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의 선호는 실무진에 영향을 끼치고, 실무진의 성향은 정보분석파트에 영향을 끼친다. 같은 정보를 갖고도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당시 정보판단 부서들의 과장과 실패는 그런 맥락에서 볼 수밖에 없다.”

당시의 정보판단이 과장됐다면 그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누구인가. 미국측 인사들이 거론하는 이름은 볼튼 당시 차관보와 로버트 조지프 당시 NSC 비확산담당 보좌관, 존 맥로린 당시 CIA 부국장으로 압축된다. 각각 실무부처에서 WMD 대응을 주도하는 자리, 대통령의 옆에서 핵 문제를 조언하는 자리, 적성국 군사동향 정보를 책임지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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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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