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1] 1000년 전 백두산 화산 폭발 당시, 백두산에서 동해를 건너 일본을 지나 태평양까지 날아간 B-Tm 화산회의 분포.
또 탄화목의 내부 파편을 탄소 연대 측정한 결과는 정확한 화산 분화 연대가 아니라 단지 나무의 생존 기간 중의 하나의 연대를 나타낸다는 문제도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백두산 남동쪽 북한 땅의 부석층 내부에 수직으로 서 있는 탄화목 한 그루를 나이테의 중심부로부터 맨 바깥 껍질부까지 체계적인 탄소동위원소 분석을 해 그 연대가 서기 969년±20년이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10개 이상의 시료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측정 오차를 줄이고 정확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일본의 제4기(Quaternary) 학계에서 ‘광역 테프라’(widespread tephra)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테프라(화산재를 포함한 화산분출물)를 분석해 화산재 지층의 연대를 동정(同定)하는 테프라 편년학(tephrochronology)이 도입된 것이다. 규슈 남단에 위치한 칼데라로부터 유래한 아이라-탄자와 부석(약칭 AT)과 키카이-아카호야 화산회(약칭 K-Ah)가 일본 열도의 동서와 남북을 횡·종단하면서 퇴적된 것이 발견됐다.
“하늘이 캄캄해지고…”
이 두 층의 광역 테프라 발견은 당시 일본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의 유적에서 종종 기재되던 알칼리암 계열의 세립질 화산재, 즉 토마코마이 화산회(약칭 Tm)가 어느 화산체로부터 기원했는지, 그 분화원(噴火源)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고무시켰다. 일본의 근세 화산에서는 결코 산출되지 않는 Tm의 독특한 암석·광물학적 특성은 그 시야를 한반도 쪽으로 향하게 했다(그림1 참조).
이 화산재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동해와 태평양의 해저에서 채취한 몇 가지 시료를 조사한 결과, 한반도 쪽으로 갈수록 Tm의 두께와 입도(粒度)가 증가했고, 그 방향은 백두산을 향해 수렴됐다. 이들 화산재는 홀로세 초기의 백두산 화산에서 기원한 것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후 새로이 명칭이 부여된 백두산-토마코마이 화산회(약칭 B-Tm)는 백두산을 분화원으로 하는 10세기 전후의 화산 분출물로 밝혀졌다. 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제1급의 분화 흔적임과 동시에, 현세의 화산 활동사를 밝히고 장래의 활동을 통찰하기 위해서도 의의가 컸다.
일본에서 고고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B-Tm의 분화 시기는 915년 이후부터 1334년 이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일본의 혼슈 북부와 홋카이도에는 화산재 비가 내렸고, 지금도 5cm 이하의 B-Tm 화산재 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습지에 쌓인 화산재의 다져진 두께가 평균 5cm라면 화산재가 비처럼 내리던 시기에는 하늘이 캄캄해지고, 사람의 출입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들 지역에 화산재가 내리던 헤이안 시대엔 이를 천재지변으로 여기고 민심이 흉흉했으며 사무라이의 반란이 있었다고 전한다.
B-Tm 화산재의 분출된 총량에 대해선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1990년대 초 일본의 마치다(町田) 교수는 50km3, 1992년 미국의 길(J. Gill) 박사는 150km3, 1995년 중국의 류뤄신(劉若新) 교수는 172km3, 2006년 일본의 다니구치(谷口) 교수는 83~117km3으로 추정했다. 평균적으로 최대 약 147km3의 화산 분출물을 뿜어낸 것임에 틀림없다.
이 분출량을 화산폭발지수로 환산하면 화산분화 규모는 M=7.4(M은 magnitede, 규모의 약자)로 인류 역사상 최대 분화 사건이다. 백두산 화산의 역사시대 최대 분화는 약 1000년 전 일어났으며 밀레니엄 분화라고 한다. 이때 천지 분화구가 확장돼 현재와 같은 칼데라 모양이 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대의 역사시대 화산 분출 사건은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분화로 M=7.1이었다.
백두산 분화가 있은 후 이듬해 지구상에는 기상 이상이 자주 일어났을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 역사 문헌의 고찰을 통해 연구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