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대선주자 정치입문 비화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 일러스트레이션·최남진

대선주자 정치입문 비화

3/8
대선주자 정치입문  비화

1992년 5월, 국민당 창당에 대한 이견으로 갈라선 정주영 국민당 대표와 이명박 민자당 의원이 롯데호텔에서 열린 ‘고대인의 날’ 기념식장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세 명의 후보 중 이회창 후보가 가장 깨끗한 정치를 펼칠 것으로 믿음이 간다. 오늘 같은 난국을 바라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 목이 메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15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공보특보를 지낸 이흥주씨는 “박근혜씨 정도면 당시 비서실장을 통해 이회창 후보가 직접 챙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1998년부터 지금까지 보좌관을 맡고 있는 정호성씨는 “박 전 대표가 직접 이회창 후보 쪽에 지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손을 내밀기 전에 박 전 대표가 ‘스스로 돕겠다’고 나섰냐”는 질문에는 “명확하게는 모른다”고 답했다. 박 전 대표측 공보팀을 통해 “박 전 대표의 답변을 직접 듣고 싶다”고 수차례에 걸쳐 요청했지만 “정 보좌관의 대답으로 대신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전 대표의 정치입문 과정을 당사자 외에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다. 이 전 총재측에 당시 정황에 대해 묻자 이종구 공보특보는 “이 전 총재는 당시 상황을 잘 모를 것”이라며 “설령 안다 해도 그런 내용을 언론에 밝히는 걸 원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둘 사이에 누가 다리를 놓았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두 사람이 손을 잡았는지에 대해 당사자들은 이렇듯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냥 학교에 남아 계시죠”



1993년 3월초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앞 음식점. 이 학교 정치외교학과 손학규 교수가 7, 8명의 제자와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평소 제자들과 허물없이 대폿집에서 술잔을 주고받는 손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번 (국회의원) 보궐선거(1993년 4월말 예정) 출마 권유를 받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제자가 “교수님, 정치라뇨? 그냥 학교에 남아 계시죠”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또 다른 제자는 “정치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제자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던 손 교수가 “민자당으로부터 출마 제의를 받았다”고 털어놓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민자당이요?” 하고 반문했다.

그의 정치 참여에 찬성한 제자들은 ‘민자당’이라는 말을 듣자 다시 자기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였다. 손 교수는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이 성공해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며 “만일 정치를 하게 된다면 (YS의) 개혁 의지가 꺾이지 않게 하는 역할을 맡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손 교수는 정치 참여에 앞서 제자들뿐 아니라 서울대 65∼69학번 운동권 출신들의 모임인 ‘문우회’ 회원들과 재야인사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

결국 손 교수는 정치를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자 정치 참여에 반대하던 제자들도 손 교수를 전폭적으로 믿고 따르겠다며 지지했다. 그가 민자당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소신 있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 술자리에 참석한 제자 중 정성운(43·현 손학규 전 지사 비서실장)·이윤생(40·현 손학규 캠프 연설문 팀장)씨는 줄곧 손 전 지사의 곁을 지켰다. 다음은 이윤생씨의 말이다.

“교수님이 사직 의사를 밝히자 학교에서는 ‘혹시 떨어질지도 모르니 휴직계를 내는 것이 어떻겠냐’며 휴직을 권했어요. 보통사람 같으면 그 제의를 받아들였을 텐데 교수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더라고요. 학생들과 동료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게 그 이유였죠. 과거의 안위는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사직서를 낸 겁니다. 이왕 나선 것, 학교에 미련을 남기지 않고 올곧게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는 각오가 읽혔어요.”

“현철이를 찾아가보라”

당시 보궐선거 지역은 경기도 광명, 부산 사하, 부산 동래갑 세 곳이었다. 손 교수는 1988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인하대(1988~1990년)를 거쳐 서강대(1990~1993년)에 몸담았다. 정치 현장에 나서본 적이 없는 그가 윤항열 의원의 급서로 공석이 된 광명에서 공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민주산악회 광명지부장인 노병구(76·현 민주동지회장)씨가 발끈했다.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광명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노씨는 여러 경로를 통해 자신이 공천받을 확률이 높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노씨의 주장.

3/8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 일러스트레이션·최남진
목록 닫기

대선주자 정치입문 비화

댓글 창 닫기

2023/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