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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리포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한 첫 백인 여성 얀 루프 오헤른

“그냥 잊으라고요? 지금도 밤마다 강간의 공포에 떠는데…”

  • 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한 첫 백인 여성 얀 루프 오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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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한 첫 백인 여성 얀 루프 오헤른

일본 외교관이 호주의 일본대사관 시위 현장에 나와 항의서한을 접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나는 오히려 호기심의 대상이 됐습니다. 일본군들은 내가 머리를 밀어버린 처녀라며 저를 더 원하게 됐어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제가 원한 것과 정반대의 효과를 낳았던 겁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매주 성병(性病) 검사를 받던 방이 있었습니다. 일본군들은 방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창문도요. 그래서 우리가 검사받는 동안 일본군인들이 지켜보도록 했습니다. 의사가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말했죠. “선생님이 힘 좀 써주세요. 상관들한테 우리가 강제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세요.”

의사는 그저 웃기만 했고 결국엔 그마저 나를 강간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매주 정기검진을 할 때마다 그 의사는 나를 맨 먼저 강간하곤 했습니다. 이런 일이 매주, 매달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소지품을 챙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임시 수용소에 수용됐습니다. 거기서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그 모든 치욕을 겪고 나서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된 거죠.

어머니는 내 머리를 보시더니 내게 일어났을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첫날밤에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머니의 팔에 안겨 있었고(지금도 느낄 수 있군요), 어머니는 날 감싸주셨습니다. 그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죠. 내 대머리를요.

다음날 나는 어머니에게 저와 다른 소녀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얘기했습니다. 그 소녀들도 모두 어머니와 함께 있었습니다. 어머니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죠. 그래서 어머니에겐 그 일을 절대로 다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너무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꽃을 싫어했던 이유

내가 모든 걸 다 털어놓은 지금에야 내 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딸들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오랫동안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왜 엄마가 의사한테 가는 것을 싫어했는지 알겠어요”라고. “아! 그랬군요. 그래서 엄마가 남들은 다 좋아하는 꽃 선물을 거절했군요.”

그러나 나도 이제는 꽃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 털어놨기 때문이지요. 나도 이제 꽃을 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합니다. 일본인들이 내게 꽃 이름을 붙이지만 않았어도….

나는 내 이야기를 도쿄에서만큼은 증언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호주로 돌아오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내가 도쿄에서 비밀을 다 털어놓았을 때 그 앞에는 전세계 사람들이 있었어요. 내 증언은 바로 큰 뉴스가 됐습니다. 저는 생각했죠. “오 이런, 애들레이드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봤겠구나”라고요.

다시 호주로 돌아와 교회에 가자 친구들과 교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팔을 벌려 나를 감싸안았습니다. “얀, 집에 잘 돌아왔어요. 그리고 정말 잘했어요”라고 했어요. 심지어 그들은 내가 앉던 자리에 꽃까지 갖다놓았더군요.

그리고 두 딸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우리는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로 충분했거든요. 솔직히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특히 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딸들이 나를 그렇게 안아준 겁니다.

비밀을 털어놓은 후 나는 결심했어요. 남은 생애를 전쟁에서 상처 입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살겠노라고요. 그래서 지난 15년 동안 아시아의 일본군 위안부들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북아일랜드와 영국, 네덜란드 회의에서 제 비밀을 털어놓았고 도쿄에는 두 번이나 갔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하원 청문회에도 참석했고요.

나는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우리가 모두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며 아시아의 일본군 위안부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받아낼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들은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내 이야기의 가장 큰 메시지는 믿음과 용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나는 다른 여성들이 나처럼 평생을 공포 속에서 사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 공포를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어두워진다는 것은 내가 다시 거푸 강간당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죠. 아시겠어요 그 공포는 절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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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 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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