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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김광화의 사람 공부, 이웃 이야기6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 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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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기쁘게

거침없이  마음을 열자, 아버지 자리 찾고 웃음도 찾고

이 집 원두막과 평상에서 점심식사 하는 손님들. 초록손이는 서울 살 때 가족 밥상조차 제대로 차려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한창 일할 때면 하루 세 끼 밥 하고, 두 끼 참 내고, 이따금 손님들 밥도 해낸다. 그렇게 바뀐 자신이 정말 대견하단다.

저녁에 다시 가족이 모였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일로 바뀔 때 일어나는 기적은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책벌레는 영어를 좋아해, 학교 그만두고 줄곧 영어 비디오를 보더니 넉 달 만엔가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점점 영어가 재미있으니 나중에는 영어책을 번역도 해보고, 영어 일기도 한동안 썼다.

성격이 예민하던 양손이는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성격으로 변한다. 양손이는 요즘 코밑수염이 거뭇거뭇해지고 있다. 보통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짜증을 낸다거나 이유 없는 반항을 한다는데 양손이는 그 반대다. 다정다감하고 여유 있고 유머 감각도 뛰어나 이 집을 곧잘 웃음바다로 만든다. 킹 메이커가 아니라 ‘스마일 메이커’다. 몸과 마음이 부쩍 자라는 걸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느끼고 이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게다가 양손이는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기에 더 빛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양손이 자신은 “반항하는 사춘기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사춘기를 짜증이 아닌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는 책벌레도 마찬가지. 초경을 하는 날 기뻐서 소리를 치며 엄마에게 알리기도 했고, 이제까지 생리통이란 걸 겪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이 본 책에는 사춘기 증상에 대해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왜 자신에겐 그런 증상이 없느냐면서 오히려 걱정할 정도다.

이렇게 부정적인 사춘기를 겪지 않는 데는 건강은 물론 스트레스나 가족 사이의 소통도 큰 몫을 하리라. 이 가족이 지금처럼 소통을 해가는 데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는 것은 물론 좀더 ‘의도적인 노력’도 있었다. 성격유형을 검사하는 프로그램인 MBTI도 함께 해보고, 영화를 본다거나 인문학 토론도 곧잘 했다. 원불교에서 하는 법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참여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소중한 계기로 삼았다. 이 집 가족은 한동안 한자 공부도 함께 한 적이 있는데 책벌레가 들려준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한자로 ‘온(툘)’ 자가 있잖아요, 그럼 이게 왜 성낼 온 자인가. 우리 네 사람이 한자를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얼렁뚱땅 떠오르는 대로 막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툘자를 뜯어보면 마음 심, 가둘 수, 그릇 명이 합쳐진 글자잖아요? 가둘 수(囚)는 다시 감옥처럼 갇힌 틀(口)안에 사람(人)이 갇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감옥 밖에 밥그릇(皿)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감옥에 갇힌 건만 해도 답답한데 밥그릇마저 손이 안 닿는 곳에 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거다(웃음). 이렇게 하니 재미도 있고, 식구끼리 서로 잘 알게 되고, 잘 잊어먹지도 않는 것 같아요.”

“책임을 다할지어다”

이렇게 가족 사이 소통이 활발하자 이는 또 다른 구심점으로 나아간다. 양손이네 가족이 시골로 간다고 했을 때 양손이 외가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다. 자주 들러 일도 도와주고 삶의 고민을 함께 풀어주신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자식들이 못마땅하면 호통을 치기도 한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이 집 원푸리와 초록손이는 도대체가 책임감이 결여된 애비/어미들이여 시방. ㅉㅉㅉ.

양손이가 여러 날을 배가 아팠다는 데 병원 한번 안 데리고 가고.

미식가인 양손이가 밥을 못 먹어.

현기증이 나고 배가 하루 종일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이 아픈 아들을 병원은커녕 유기농이라는 미명을 붙여 낙엽 모으는 작업장으로 끌고 다니면서 혹사를 시켜도 되는 겨! 시방.

아무쪼록 이 글을 접하는 즉시 모름지기 애비/어미로서 책임을 다할지어다.


그러자 놀란 가족들이 줄줄이 댓글을 달고, 외할아버지는 오해를 푼다.

양손이 : 할아버지, 오해를 푸세요. 어머니 아버지가 무지 걱정 했고, 죽도 쒀 주구, 손발 따주고 배 주물러 주구 다 했어요.

원푸리 : 열심히 만져 보고, 들여다보고 했사옵니다~. 시간 지나면 나을 것 같아서 (안타깝지만) 내버려두었사옵니다~. 방치한 것 아니오니 노여움 푸시옵소서~. (덧붙임) 양손이가 아프다고 한 뒤로 낙엽작업엔 책벌레만 데리고 다닙니다요~.

초록손이 : 아부지, 오늘 아주 잘 먹고 있어요. 그동안 못 먹은 거 먹는다고 해서 말리는 중^^. 아부지 손자 잘 돌보고 있으니, 걱정 마서요.

할배 : 양손아! 그랬니? 아버지/어머니가 걱정 해 주었구나. 이곳 이 외할배뿐만 아니라 외할머니도 너의 식사하는 습관에 몹시 못마땅해 하신단다. 모든 음식을 오래오래 꼭꼭 씹어서 먹을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충고하니 철저히 지켜서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거라. 양손이 홧팅이다!


이렇게 할아버지가 거침없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바탕에는 양손이가 배 아프다는 일기를 홈페이지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부모 처지라면 솔직히 숨기고 싶거나 가리고 싶은 부분이다. 자식이 아프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부모가 있을까. 그래도 이 집 아이들은 기쁜 일, 슬픈 일 가리지 않고 거의 날마다 일기를 쓰고 이를 세상에 고스란히 공개한다. 나와 함께 지내던 날도 컴퓨터 앞에 앉더니 잠깐 사이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일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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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농부 flowing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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