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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로 엿본 한국 대기업 ‘대리學’

경제전쟁 첨병, 대표이사급 대리들의 군주적 본능을 깨워라!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일러스트·박진영

꽁트로 엿본 한국 대기업 ‘대리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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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똑똑. “홍보실 윤병굽니다.” “들어오세요.”

김정도 상무. 임원이 됐지만 표정은 근엄하지 않다. 어깨에 힘도 들어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좀더 부드러워졌다고 할까. 근데, 이 심상치 않은 기운은 뭐지?

“혹시 저 때문에 윤 대리님도 한국전자로 발령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어르신들의 생각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상무님.”



“근데 맞아요. 아니 반쯤은 내가 원했어요. 아무래도 제 생각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분이 필요해서요.”

엥? 그럼 이제부터 나는 김 상무 라인? 이거, 기회야, 위기야?

“우선 한 가지 물어봅시다. 소문 들었겠지만 한국전자 대리들의 퇴사율이 그룹 계열사 중 최고예요. 이유가 뭘까요?”

“그거야….”

“그리고 회사에 흘러다니는 이 문건 본 적 있어요?”

하얀 A4용지 석 장에 글이 빽빽하다. 이게 뭐지? 어디 보자. ‘H전자에서 얻은 상식’ ‘심심할 때 읽어보세요’ ‘단 과장님은 읽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듯’.

“누군가 이런 내용을 작성해 사적인 e메일로 전파하는 것 같아요. 인사팀은 이 문건이 퍼지면서 대리들의 퇴사율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어요.”

“읽어보겠습니다.”

“읽어보시고, 누가 이 문건을 작성했는지 알려줘요.”

“아직 온 지도 얼마 안 됐고, 또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오자마자 스파이 노릇하는 게 꺼림칙하다는 거죠? 내가 진심으로 알고 싶은 것은 요즘 대리들의 머릿속입니다. 그 머리로 뭘 생각하면서 회사에 다니는지 궁금해요. 사보 담당이니까, 특집기사 쓴다는 명분으로 우리 회사 대리들 좀 만나보세요. 그리고 결과는 알려주시고. 이건 윤 대리와 나 사이의 비밀이요.”

김 상무 라인에 선다는 것, 위험할 것 같다.

#Scene 3

도대체 뭔 내용이기에 호들갑이야. 한번 볼까.

제목: H전자에서 얻은 20가지 상식

1. MIT, 스탠퍼드, 칼텍 등 세계 주요 대학 출신들 다 소용없다. 결국 S대가 평정했다. SSAT, 식스시그마 시험을 비롯한 모든 사내 시험의 1등은 S대였다.

2. 연수원 동기 150명 중 40명은 입사 5년 뒤 퇴사한다. 110명이 경쟁하지만 15년 뒤 부장은 딱 한 명만 된다.

3. 1년에 50명 중 4명이 퇴사한다.

4. 과장 퇴직자는 집에서 논다. 부장 퇴직자는 하청업체에서 논다. 상무 퇴직자는 꽤 괜찮은 회사의 고문실에서 논다.

5. 인사 실수로 한 부서에 한 명은 일 없이 1년 내내 논다.

6. 대부분의 과장급은 일하지 않고 지시만 한다.

7. 대리 승진에서 한 번 탈락하면 임원의 꿈은 접어라.

8. 임원에게 인정받는 상사를 모시는 사원 나부랭이는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

9. 임원들의 주요 경영 전략은 ‘노동력 착취의 극대화’다.

10. 임원들의 두 번째 ‘필살기’ 전략은 ‘재료비 단가 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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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일러스트·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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