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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영훈 전 국무총리

“북한을 사회민주주의로 이끌 대통령 나와야”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강영훈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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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선생은 분명한 애국지사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총독부 지시로 조선어독본이 없어졌어요. 조선인이 조선말과 조선글을 못 배운다는 사실에 민족감정이 치밀어 오르더군요. 왜 우리민족이 이렇게 됐나 싶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만주 건국대에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신 최남선 선생이 계시다는 걸 알았습니다. 입학을 해서 선생을 만났는데 ‘너희는 절대 조선 사람이란 걸 잊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당시 ‘우리도 진정한 일본 사람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조선 지식인도 많았거든요.”

▼ 학병으로 참전한 것도 최남선 선생의 권유 때문이었습니까.

“일본에서 조선인 학병을 모집했는데, 그때 민족지도자들은 나가라는 사람과 나가면 안 된다는 사람으로 갈려 있었습니다. 최남선 선생은 우리에게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천황이나 일본 군대를 위해 나가라는 게 아니다. 조선 민족을 위해 나가라는 거다. 우리나라가 왜 망했냐, 힘이 약해 망했다. 군사력이 중요하다. 일본은 지금 조선 학생들까지 장교로 모집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전쟁에 나가면 당연히 희생자가 생기겠지만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살아온 사람은 죽은 사람 몫까지 합쳐 조선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할 날이 올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의 조선 학생들은 전부 학병으로 갔습니다. 그 때문에 선생을 친일파라고 하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 그때 참전한 학병들이 광복 후 대한민국 군대 창설의 주역이 된 것이군요.

“선생은 광복 후에도 저를 만나면 늘 ‘군에 몸담는 게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인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주자학의 영향으로 자기 잘났다고 할 뿐 단결이 안 된다. 그런데 군대는 규율과 단결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지금은 과학시대다. 군대만큼 기계과학 기술이 집약된 곳이 어디 있느냐’고 강조하셨죠.”



“민주주의는 조급하면 안 된다”

▼ 5·16 직후 반혁명죄로 구속된 첫 번째 군 장성이셨죠.

“육사 교장 때 중령, 대령들이 와서 ‘군인이 나서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장면 정부가 1년도 안 됐는데 그러면 되겠냐’며 말렸습니다. 결국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군사혁명을 일으킨 뒤 제게 육사 학생들을 동원해 지지 데모를 해달라고 했어요. 저는 사관생도를 정치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구속됐죠.”

▼ 당시 꼭 박정희 장군이 아니었어도 언제든 쿠데타가 일어날 만한 분위기였습니까.

“영관급에서 개혁에 대한 욕구가 강했습니다. 군에서 볼 때 장면 정권이 너무 허술했거든요. 당시 군은 미국 군대로부터 선진적인 관리경영 능력을 배운 상태인 반면 정부 등 다른 기관들은 원시적인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되고 있었죠. 그래서 낙후된 정부 시스템을 바꾸려는 욕구가 강했어요. 국방대학만 나오면 장관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하지만 영관들이 군이 나서야 한다고 했을 때 저는 반대했어요. 민주주의는 조급하면 안 된다, 우리가 배운 선진적인 관리능력을 정부에 가르쳐주고 솔선수범해서 그들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설득하곤 했습니다.”

▼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15년 만인 1977년에야 귀국을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과 화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듯합니다.

“혁명 정국이 안정된 1962년 무렵 미국 국방부가 저를 비롯해 반혁명 장성 4명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구명(救命)을 했습니다. 그래도 박정희 장군은 ‘강영훈을 큰 도시에는 보내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변두리에 있는 뉴멕시코대학으로 갔다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남캘리포니아대학으로 옮겨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15년간 미국에 머물게 됐습니다.”

▼ 지금은 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집권 후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주도함으로써 우리 민족사에 큰 공을 세웠다고 봅니다.”

▼ 강 전 총리께선 5·16쿠데타엔 반대한 반면, 1980년 신군부 쿠데타는 용인했는데요.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저는 신군부가 쿠데타를 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대통령이 총에 맞아 서거하니까 자동으로 군이 개입한 거죠. 그런 무법천지 상태에서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있는 곳이 군대말고 어디 있었겠습니까.”

▼ 노태우 대통령 때 총리를 맡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미국에 갔을 때 남캘리포니아대학에 공산주의연구소가 처음 생겼어요. 거기서 공산주의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정치발전론’이라는 정치학 이론을 전공했어요. 후진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가야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었죠. 그 공부를 한 것이 행정관리로 일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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