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호

‘내 남자의 여자’ ‘내 여자의 남자’의 질투심리학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7-07-04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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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남자의 여자’ ‘내 여자의 남자’의 질투심리학
    최근에 불륜과 질투심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인기를 끄는 드라마가 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감초 구실을 하는 한 부부의 집 앞에 누군가 아이를 놓고 간다. 아내는 바람둥이 남편이 밖에서 낳은 자식일지 모른다면서 난리를 피우고, 남편은 아니라고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남편이 바깥에서 다른 여성과 일회성 관계를 갖느냐 여부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듯하다. 무슨 짓을 하든 자식만은 낳아오지 말라는 투다.

    한편 주인공 부부는 정반대 상황을 연출한다. 남편은 아내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는데, 마음까지 줌으로써 심각한 갈등을 빚어낸다. 이 드라마는 마치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생물학자들은 자기 연구 분야 쪽으로 다윈이 어떤 말을 했는지 관심이 많다. 진화론을 심리학에 적용하는 일을 하는 진화심리학자들도 다윈의 금과옥조 같은 말을 찾아냈다. 다윈은 “먼 미래에는 심리학이 새로운 토대 위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 토대란 바로 자신이 세운 이론인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다.

    질투심 유발 실험

    그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뒤 다윈의 계승자들은 본격적으로 심리학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진화의 산물로 보고 질투심, 추론 능력, 언어, 지위, 짝 선택, 공격성 등 마음의 다양한 측면을 진화 원리로 풀어보고자 시도했다. 남녀 관계를 연구하는 인물인 미시간 대학교의 데이비드 버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1992년 버스 연구진은 남녀의 질투심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놀아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남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그들은 상황을 둘로 나눴다. 몸을 줬느냐, 혹은 마음을 줬느냐. 그들은 다각도로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실험은 불륜에 대해 남녀가 보이는 반응이 서로 다를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이뤄졌다. 그들은 실험 대상자인 대학생 202명에게 다음과 같은 곤란한 상황을 제시했다.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애인이 누군가와 바람 피우는 것을 알았다. 다음 둘 중 어느 쪽일 때 더 심란하겠는가.

    (A) 연인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때

    (B) 연인이 상대와 성관계를 즐길 때


    이어서 실험 대상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 뒤 같은 지문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음의 둘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A) 연인이 상대와 갖가지 체위를 시도할 때

    (B) 연인이 상대와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결과는 남녀가 큰 차이를 보였다. 감정적 집착과 성관계를 대비시킨 질문에서는 남성의 60%가 성적인 불륜에 더 질투심을 느낄 것이라고 답한 반면, 여성은 고작 17%만 그쪽을 택했고 83%는 연인이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할 때 더 질투심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성과 사랑을 대비시킨 질문에서도 비율은 좀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상대의 성관계에 더 심란할 것이라고 답한 남성이 여성보다 32% 더 많았고, 여성은 다수가 연인이 상대와 사랑에 빠질 때 더 심란할 것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실험은 생리적 반응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남자대학생 21명과 여자대학생 23명의 몸에 자율신경계 흥분 상태와 맥박수를 측정하는 장치를 붙인 뒤 두 가지 상상을 하도록 했다. 하나는 연인이 다른 누군가와 성관계를 갖는다는 상상이고, 다른 하나는 연인이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한다는 상상이었다.

    결과는 남녀가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감정적 집착보다 성관계를 상상했을 때 자율신경계가 훨씬 더 흥분했다. 반면에 여성은 성관계보다 감정적 집착을 상상했을 때 더 흥분했다. 맥박수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남성은 연인의 불륜 성관계를 상상했을 때 맥박수가 더 높아진 반면, 여성은 양쪽 상상 때 맥박수가 비슷하게 올라갔다.

    남자 짓누르는 ‘선택압’

    ‘내 남자의 여자’ ‘내 여자의 남자’의 질투심리학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은 전세계 남성들이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0.7인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그 비율이 여성의 번식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세 번째 실험에서는 남성 133명, 여성 176명 총 309명으로 실험 대상자를 더 늘려서 앞의 실험을 검증하는 한편, 성관계 경험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았다. 여성은 성관계 경험 유무가 답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은 55%가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에 더 심란해한 반면, 성관계 경험이 없는 남성은 그 비율이 29%로 훨씬 낮았다.

    이 실험 결과는 연구진이 세운 진화심리학 가설에 들어맞았다. 포유류가 다 그렇듯, 인간의 정자와 난자도 여성의 몸속에서 수정된다. 따라서 여성은 낳은 아기가 자신의 자식임을 100% 확신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 난자를 수정시킨 것이 자신의 정자인지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니까. 이 불확실성은 남성에게 진화적으로 꽤 골치 아픈 문제를 안겨준다.

    여성이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를 자기 아이인 줄 알고 기른다면, 유전적으로 볼 때 그 남성 처지에서는 여간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는커녕 엉뚱한 유전자를 퍼뜨리는 일에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쏟는 셈이니까. 그에 비하면 여성이 멋진 남자 배우에게 홀딱 반해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는 행위는 별문제가 안 된다.

    따라서 남성은 오쟁이 지는(아내가 외간 남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막는 강력한 선택압(選擇壓)을 받아왔어야 한다. 오쟁이 져도 허허 웃고 마는 인품 좋은 남성들이 있었다면 그 남성들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이 성적인 질투심을 강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그런 선택압의 결과라고 본다. 성적 질투심이 약한 남성은 후손을 적게 남기는 바람에 세월이 흐르면서 대가 끊겼을 것이고, 질투심이 강한 남성은 후손을 많이 남겨서 주류가 됐다는 것이다.

    한편 여성은 남성의 도움을 받아야 자식을 키우기가 편하다. 남성이 시간과 노력과 에너지를 육아에 쏟을수록 그만큼 여성 자신의 유전자가 살아남아 후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부일처제에서 남성이 바람을 피울 때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닥칠 위험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냥 딴 여성과 가볍게 바람을 피운다면 자신과 자식에게 투자될 비용 가운데 일부를 잃는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딴 여성에게 아예 홀딱 반해 집착한다면 혼인 관계는 파탄나고 육아 투자를 전혀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그런 위험을 막기 위해 이혼한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는 법 조항이 있긴 하다). 일부다처제하에서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다른 부인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감정적으로 그 쪽에 홀딱 빠지면 육아 투자분이 더 많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연구진은 남성은 여성의 감정적 불륜보다 신체적 불륜에 더 심하게 질투심을 느끼고, 여성은 남성의 신체적 불륜보다 감정적 불륜에 더 심하게 반응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실험 결과는 가설과 들어맞았다.

    질투의 심리

    연구진은 이 실험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실험 대상자가 대학생들이기에 연령과 문화가 한정돼 있으며, 이 남녀의 반응 차이가 정말로 오쟁이 지는 것 대 투자 상실을 가리키는 것인지, 남성이 섹스 자체에 더 관심이 있고 여성은 사랑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지 불명확하며, 남녀 각 성별 내에서의 개인별 반응 양상을 더 상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여성은 성경험 유무와 질투심이 별 상관관계가 없는 반면 남성은 왜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연구진은 이 실험이 성별과 질투심이 상관관계가 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고 했다. 진화심리학을 뒷받침하는 경험 증거인 셈이었다.

    버스를 비롯한 진화심리학자들은 후속 연구를 통해 질투의 심리와 그것이 진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상세히 밝혀냈다. 다양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설이 제기됐고 각각에 대한 경험 증거를 찾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데이비드 버스와 마티 하셀튼은 남녀의 질투심 차이에 관한 가설들을 이렇게 정리했다.

    성적 불륜 신호들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더 질투심을 느낀다.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가 맞는지 불확실해지고 여성이라는 번식 자원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성은 감정적 불륜 신호들에 더 질투심을 느낀다. 남성이 제공하는 자원이 경쟁자에게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자가 질투심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경쟁자가 육체적 매력을 지닌 사람일 때는 여성이 더 질투하고, 부나 지위처럼 조건이 더 좋은 사람일 때는 남성이 더 질투한다.

    한편 질투심은 자기 짝을 지키려는 행동도 유발한다. 남성은 자기 짝이 매력적인 여성일 때 질투심이 더 발휘돼 지키려 애쓰며, 여성은 연인이 조건 좋은 남성일 때 지키려 더 애쓴다. 그리고 여성의 배란기가 가까워지면 성적 불륜의 위험이 커지므로 남성이 짝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남녀는 불륜의 단서를 눈치채고 마음에 담아두는 성향도 다르다. 남성은 성적 불륜에 관한 단서들을 더 잘 기억하며, 여성은 감정적 불륜의 단서들을 더 잘 기억한다.

    불륜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드라마에서처럼 처음에는 날카롭게 감정 대립을 하다가, 용서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용서하든지 헤어지든지 할 것이다. 하지만 남녀는 거기에서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드 섀클포드와 버스 연구진은 앞서 말한 버스의 첫 번째 실험에 어느 행동이 더 용서가 안 되고 갈라설 마음을 더 먹게 하는가라는 질문들을 추가했다. 그리고 자신의 짝이 누군가와 열정적인 성관계를 갖는 동시에 감정적으로도 몰입할 때에는 어느 측면이 더 용서가 안 되고 갈라설 마음을 먹게 하는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남성은 짝의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감정적 불륜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했다. 몸도 주고 마음도 준 상황에서도 여성보다는 남성이 몸이라는 측면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답했다. 즉 불륜을 알아차렸을 때 남성은 감정적 불륜보다 성적 불륜을 더 용서하지 않으려 하고, 성적 불륜이 일어났을 때 결별할 가능성이 높다.

    불륜을 용서할 것인지에 대한 남녀의 이런 반응 차이도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성적 불륜이 저질러졌을 때 다른 누군가의 자식을 키울 위험이 커지는 쪽은 남성이며, 따라서 남성 쪽이 더 큰 비용 부담을 안게 된다. 그런 진화적 역사를 거쳤기에 남성이 성적 불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여성은 감정적 불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쪽이 남성이 장기간에 걸쳐 제공할 자원을 빼앗길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사실들을 그냥 나열한 듯하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지겹도록 보아온 연애나 불륜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그런 현상들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 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간파했다. 질투심 같은 심리적 현상들이 감정적으로 미숙해서 생기는 것도, 자제를 못해서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것도, 인성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허리와 엉덩이 비율 0.7의 비밀

    진화심리학자들은 질투심뿐 아니라 남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다른 성향 차이들도 문화적 구성물이 아니라 선택을 거쳐 진화한 생물학적인 것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버스는 전세계 남녀의 성적 취향을 조사한 끝에 남성들은 원칙적으로 무한히 많은 자식을 가질 수 있으므로 여성보다 바람기가 더 다분한 반면, 여성은 평균적으로 한 해에 한 명밖에 자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짝을 선택할 때 더 신중한 경향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와 소득 수준과 지능이 높고 건강하며, 착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버스는 남성의 그런 특징들이 가족을 잘 부양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남성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는 현상도 본능적으로 여성의 번식 잠재력을 가늠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은 전세계의 남성들이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0.7인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며, 그 비율이 여성의 번식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보면 질투심도 바람기도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속물근성도 멋진 몸매를 선호하는 성향도 다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때로 정도를 벗어나서 날뛰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보듯이 질투심은 때로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드잡이질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를 살해하는 지경으로 치닫곤 한다. 바람기는 심심치 않게 집안을 파탄내곤 하며, 요모조모 따지는 근성은 때늦은 후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멋진 몸매를 따지다가 사회 전체가 비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본래 그것들이 진화의 산물로서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면 과하지 않도록 막는 수단도 진화했어야 하지 않을까?

    진화심리학은 현대 사회에서 그런 병적인 증상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우리의 심리적 성향이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시대 환경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원시시대에는 그렇게 때로 과하다 싶은 행동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시시대 이후로 인류는 급격히 발전해 수많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현대 도시들을 건설했다. 질투심 같은 뇌의 특정 기능들은 그 변화를 미처 따라잡지 못했을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연인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상상하도록 하면서 뇌를 촬영했다. 그러자 성적 행동 및 공격 행동과 관련이 있는 편도핵과 시상하부가 흥분하는 것을 발견했다. 즉 질투심은 공격성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 뇌에 새겨진 본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 둘러싼 논란

    남녀의 성향 차이를 진화의 산물로 보는 관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그것이 기존의 불평등한 관계를 합리화하는 논거로 쓰일 수 있고, 사회나 문화나 교육을 통해 남녀의 성향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자 새러 블래퍼 르디는 현대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가 적으니 경제적으로 더 능력 있는 짝을 고르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과학철학자 데이비드 불러는 진화심리학이 언뜻 볼 때는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듯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 많다고 말한다. 남성이 번식 잠재력이 큰 젊은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이 지위가 높은 남성을 선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거나, 남성이 성적 불륜에 더 질투하고 여성이 감정적 불륜에 더 질투한다거나, 부모가 친자보다 의붓자식을 더 학대한다거나, 둘째가 첫째보다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라는 등의 연구 결과들이 다른 가설들을 배제시킬 만큼 확실한 근거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브루스 윌리스처럼 나이를 꽤 먹은 할리우드 남자 배우들이 젊은 여자를 끼고 다니고 ‘플레이보이’ 모델이던 안나 니콜 스미스가 20대에 90세가 다 된 석유재벌 하워드 마셜과 혼인한 사례를 보면 진화심리학적 주장이 옳다고 여겨지지만, 젊은 남자 배우가 브루스 윌리스의 전처인 40대의 데미 무어와 사귀고 유명 배우이면서도 평생 반려자와 늙어가는 배우도 많다.

    첫째로 태어난 사람이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는 반면 둘째는 자유분방한 경향을 보이는 식으로 출생 순서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는 연구로 유명한 프랭크 설로웨이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첫째는 부모의 자산과 유전자를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둘째가 태어나면 잃을 것이 많으므로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고 말한다. 따라서 첫째는 권위에 수긍하는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반면에 동생들은 처음부터 부모의 기대 수준도 낮고 기대에 어긋나도 잃을 것이 별로 없으므로 변화와 모험을 선호한다. 그래서 세계를 혁신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첫째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혁신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설로웨이도 첫째가 아니다. 하지만 반박하는 사람들은 반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첫째였다.

    ‘내 남자의 여자’ ‘내 여자의 남자’의 질투심리학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구체적인 사례마다 논란이 분분하긴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았고, 인간의 심리적 적응 양상들을 새롭고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인 틀을 제공한다. 제프리 밀러는 ‘메이팅 마인드’에서 진화심리학이 지나치게 억지 해석을 한다는 견해를 반박하면서, 오히려 인간 특유의 창의적인 능력들을 소홀하게 다루는 등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본다.

    그는 음악, 미술, 지능, 학습 등도 진화의 간접적인 산물이 아닌 짝 선택에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선택된 형질들이라고 말한다. 진화심리학자마다 인간 마음의 다양한 특성들을 해석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곤 하지만, 진화심리학이 언제까지나 알 듯 모를 듯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처럼 여겨졌던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화론과 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자연과학과 인문학 및 사화과학의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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