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왕자’를 읽은 것이 아니라, 친구가 보고 있는 그 책의 표지만을 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지금의 시인이 말이다. 이것이 문태준이라는 시인을 형성하는 데 어떤 요소일까 싶었다. 보통의 글쟁이들은 통과의례처럼 카뮈나 지드, 미시마 유키오와 이광수, ‘어린 왕자’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책들을 ‘보고’ 있던 시절에 그는 교과서만 보고, 대신에 논일과 밭일을 했다고 한다.
“꼴 베고, 쇠죽 끓이고, 소 먹이러 다니는 것이 일이었지요.”
각각 자기 집의 소를 끌고 나온 친구들과 들판을 쏘다닌다. 소는 소대로 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았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는 숨을 곳이 참 많았던 문태준의 마을이었다. 한번은 염소를 몰고 아이들과 나갔다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염소를 잃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혼나고, 온 식구가 염소를 찾으러 마을을 뒤졌지만 결국 염소를 찾은 곳은 다른 마을에서였다고 한다.
염소는 ‘음메에에’ 하는 소리를 내면 그 소리에 응답을 한다고 한다. 문태준과 그 식구들이 ‘음메에에’ 하면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염소는 극성맞다. 김용택 선생의 말에 의하면 염소새끼는 솥뚜껑의 손잡이 부분, 그러니까 겨우 간장종지만한 그 꼭지에 올라가서 울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극성스러운 염소새끼 같은 동네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시와 독자가 만나는 것이 염소 울음소리로 서로 소통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시인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로 소리를 내고, 독자 역시 자신만의 소리로 소리를 낸다. 그것이 만나는 자리에 진정으로 완성된 한 편의 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마치 장인의 도자기가 감상자와 만나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소, 염소, 토끼, 개, 닭 등을 키웠는데 특히 토끼를 잘 키운 모양이다. 자신이 기른 토끼를 김천장에서 팔아 개와 바꿔 온 적도 있다고 한다. 토끼가 아주 잘됐다고 자랑하는 모습은 시골의 촌부 같기도 하다.
“어릴 때 놀았던 것만 써도…”
그럼 도대체 시는 언제부터 쓴 것일까?
시는 기자가 되고 싶어 입학한 고려대 국문과에서 만났다고 한다. 대학에서 시도 만났고, 평생의 반려자도 만난다. 문예창작모임에 가입하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를 발표하고 나서는 혹평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경찰대를 갈 생각도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학교생활을 하다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로 내려와서 7월에는 자두를 따고, 8월에는 포도를 따서 추풍령 청과상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 밤이 되면 시집을 읽었다. 주경야독인가?
그때 읽은 시인은 신경림, 김용택, 고재종, 고은 같은 농촌 정서가 배어 있는 시인들의 시집이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지 모른다고, 활활 타오른 시에 대한 열정은 군에 입대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군 생활을 강원도 화천에 있는 부대에서 한다. 첫 휴가를 나와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었다. 하지만 졸병 시절이어서 군에서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집을 모두 분해했지요. 모두 낱장으로 뜯어 온몸에 감추고 귀대했습니다. 신병이 시를 읽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서, 화장실 같은 곳에서 몰래 낱장으로 된 시집을 읽고 지내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성복, 황지우에 눈을 뜨고, 시를 읽으니 자신도 쓸 것이 많았다고 했다. 생각해보자, 군인이 자신의 몸에 한 장 한 장 분해해서 숨기고 들어온 시를 읽는 모습. 한 편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는 시에 대한 사랑을 불태웠다. 그 모습이 마치 나뭇잎이 돋아나는 나무 같지는 않은가. 온몸에 한 장 한 장 이파리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
문태준의 그 시절은 한 편의 시를 나뭇잎처럼 매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 문태준의 시는 피어난다. 열매도 달린다. 그는 시 쓰는 일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어릴 때 놀았던 것만을 써도 되겠더라고요.”
유년시절이 풍성한 사람처럼 부자는 없다. 그의 유년은 가난한 시골이 배경이다. 그의 주위에서 그를 길렀던 것은 세상에서 제일 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태준의 앞마당은 거대한 들판이었으며, 뒷 정원은 산이었고, 흐르는 냇물이 생수였다. 곁에 있는 모든 게 바로 태준의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전부 시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간직하고 있지 않다면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