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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CEO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사장과의 1박2일 여행

“세상은 놀이터요, 인생은 놀이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사장과의 1박2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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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았다”

한용외 삼성사회봉사단 사장과의 1박2일 여행

한용외 사장(가운데)과 시민단체, 삼성봉사단 멤버들이 울산 십리대숲 살리기 캠페인에 나서기 전 기념식수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 하면 으레 1993년 신경영이 그의 첫 일성(一聲)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1987년 회장 취임 후 첫 사업으로 사재를 털어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그게 1989년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커져야 하는데, 아이들을 맡길 보육시설이 없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한다. 특히 서민 가정의 여성들이 맞벌이를 못 하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양극화는 심화된다.

이런 사회현상을 염려한 이 회장은 서울의 달동네를 둘러보며 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심한다. 서울 미아동에 처음으로 서민을 위한 어린이집을 세웠을 때만 해도 1919개에 불과하던 어린이집이 2005년 2만8000개로 늘었다. 그의 철학은 장남 이재용 전무로 이어져, 이 전무도 때때로 보육원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1994년, 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하다 삼성SDS 상무로 옮긴 지 2개월도 안 돼 한 사장은 삼성문화재단 전무로 발령을 받는다. 삼성문화재단은 복지재단, 호암재단 등 재단을 총괄하는 곳. 한 사장은 각 재단의 역할과 기능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재단의 위상을 높이는 일뿐 아니라 재단이 그룹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기업의 성장은 사회의 성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이 회장의 철학이었고, 그의 생각이었다.

철학을 공유한다는 것은 머리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공유의 고리는 끊어지고 만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으면, 그 도움을 진정으로 고맙게 생각한 적이 없으면, 누가 시킨다고 남을 돕겠는가. 한두 번은 가능해도 계속할 수는 없다. 한 사장이 제일합섬, 그룹비서실과 감사팀, 삼성전자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가장 오랫동안 근무한 곳이 사회공헌 관련 재단이라는 점은 그가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지, 그룹에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다. ‘적재적소(適材適所)’는 삼성의 인사원칙이 아닌가.



그가 삼성에 입사한 1974년, 공채 14기 동기는 450명이었다. 그중 7명이 현재 사장에 올랐다.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이수창 삼성생명 사장이 동기다. 역대 공채 기수 중 사장을 가장 많이 배출했는데, 운도 좋았고 상황도 좋았다.

삼성에서 사장이 된다는 것은 탁월한 능력은 기본이고 보통의 운(運)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실력으로 1% 안에 든다고 해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날로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 샐러리맨의 운명이다. 한 사장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밤길 조심하슈!”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한 사장은 삼성에 취직할 때까지 생활 형편이 어려웠다. 그 시절, 누군들 어렵지 않았을까마는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입학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영남대 상대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돈과 싸워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입학금이 없었어요.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을 땐데, 하루는 주인집 어른이 나를 불러 자기 아들도 학교에 들어가는데 공부도 함께 하고 잘 지내면 입학금을 대주겠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고비를 넘겼지. 근데 경북중학교 들어갈 때도 입학금이 없었어요. 그때 초등학교 친구가 함께 경북중학교에 합격했는데, 그 아버님이 제 입학금과 등록금을 대주셨어요. 너무 고마웠지. 내 초등학교 선생님이기도 하셨는데. 지난해 돌아가실 때까지 꼬박꼬박 찾아뵈었죠. 그때 그 분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봐도 돼요.

하여튼 어려울 때마다 귀인(貴人)을 만났어요. 서울대 법대에 떨어져 실의에 빠졌을 때, 어떤 친구가 영남대 원서를 가져다줘서 입학했죠. 제일합섬 경산공장에서 일할 때는 폐결핵에 걸렸는데 당시 서주인 공장장(삼성코닝 사장이던 1992년 작고)의 도움으로 약을 싸게 살 수 있었어요. 그때는 어머니도 수술을 받아 함께 누워 있었는데 내 월급으로는 두 사람의 병원비와 약값을 댈 수 없었어요. 공장장이 일개 사원의 건강까지 챙겨주셨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나온 서주인 전 삼성코닝 사장은 뛰어난 인재였지만 안타깝게도 요절했다. 당시 53세, 회사에서 꽃을 피워야 할 나이였다. 서 사장은 후에 부회장으로 추대됐다. 그와 한 사장은 끝까지 좋은 인연으로 남게 되는데, 중간에 고비가 한 차례 있었다. 한 사장이 그룹비서실 감사팀에 있을 때, 서 사장이 맡고 있던 회사에 감사를 나갔다. 그리고 문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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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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