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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놀란 ‘대단한 실험’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성장과 장수, 번식과 노화의 희비 쌍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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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적으로 말하면 포식자 같은 위험 요인이 많은 환경에서 살면 장수하는 데 에너지를 투자할 여유가 없다. 그런 환경에서 생물들은 빨리 성장하고 빨리 번식하는 전략을 택하기 쉽다. 그러나 상황이 정반대라면?

어스태드는 미국의 주머니쥐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온갖 위험 요소가 있는 육지에 사는 주머니쥐와 포식자가 거의 없는 섬에 사는 주머니쥐를 비교했다. 예상대로 환경이 좋은 섬에 사는 주머니쥐는 육지 주머니쥐에 비해 25~50% 더 오래 살았고 노화 속도도 훨씬 느렸다. 반면 번식률은 떨어졌다. 그 외에도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비슷한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느리게 사는 전략

마이클 로즈의 실험은 일찍 혜택을 제공한 뒤 해를 끼치는 유전자들을 인위적으로 없애는 방법이었다. 번식 혜택을 더 늦게 제공하는 유전자들을 선택하면 그 유전자들이 해를 끼치기 시작하는 시기도 그만큼 더 늦어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혹시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인위적인 현상인지 자연적인 현상인지를 떠나 현재 여성의 초경 연령은 빨라지고 첫 출산 시기는 늦어지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종의 자연 실험인데 그것이 수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파악하기가 좀 까다로울 듯도 하다. 동물들에게서는 출산율 저하와 번식 시기의 지연이 수명 연장과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나타나고 있으니, 혹시 인간도 그렇지 않을까.



마이클 로즈가 집단유전학적 방법으로 초파리를 실험하던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장수에 관련된 유전자를 탐색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로즈의 실험은 장수가 번식 시기 및 노화와 관련된 현상이며, 한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가 관여하는 복합적인 현상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장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도 혹시 있지 않을까.

마이클 클래스와 톰 존슨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1988년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냈다. 예쁜꼬마선충은 길이가 1mm에 불과하고 수명이 2~3주에 불과한 아주 작은 벌레다. 그들이 발견한 돌연변이 유전자는 선충의 수명을 무려 65%나 늘렸다.

이어서 1993년 신시아 캐넌 연구진은 선충의 수명을 두 배로 늘리는 ‘daf-2’와 ‘daf-16’이라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캐넌은 이 유전자가 호르몬과 관련된 연쇄적인 생화학 반응들을 촉발한다고 말한다. 그후 여러 연구진은 그 생화학 반응이 열, 스트레스, 중금속, 자외선, 미생물 저항성, 항산화 작용에 관한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내놓았다. 그래서 캐넌은 ‘daf-2’ 유전자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다고 말한다. 캐넌은 선충의 수명을 현재 6배까지 늘려놓았다.

이 연구 성과를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캐넌의 연구는 초파리와 생쥐 연구에 적용된 바 있고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예쁜꼬마선충과 인간의 유전체는 둘 다 완전히 해독되어 있으며, 둘은 유전자의 약 50%를 공유한다. daf-2 유전자는 인간의 인슐린 수용체,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라는 호르몬의 수용체를 비롯한 세 가지 수용체 유전자와 비슷하다. Age-1 유전자는 인간 세포의 표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수용체 유전자와 비슷하다. 또 daf-16 유전자는 전사인자를 만드는데, 그 전사인자는 포유동물 세포의 인슐린과 IGF-1에 조절되는 전사인자들과 비슷하다.

700세까지 산다고?

1996년 안드레이 바트케는 정상보다 수명이 50% 더 늘어난 생쥐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어서 다른 연구진이 비슷한 생쥐들을 찾아내거나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냈다. 이 생쥐들은 저마다 다른 호르몬 계통에 이상이 있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IFG-1이라는 호르몬을 만들도록 자극하는 또 다른 성장 호르몬이 없거나 그 호르몬에 반응을 안 한다는 점이었다. IGF-1은 세포 분열과 성장에 관여하는 호르몬이다. 두 호르몬은 정상적인 발달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역설적으로 바트케의 ‘수명이 긴 생쥐’는 몸집이 보통 생쥐의 절반에 불과하다. 성장을 대가로 긴 수명을 얻은 듯하다. 성장 호르몬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며, 그래서 근육과 뼈가 약해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기존 상식이었다. 그래서 노화 억제를 위해 성장호르몬을 주사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의 생쥐들은 성장호르몬을 못 만드는 돌연변이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몇 가지 다른 중요한 호르몬도 만들지 못했으며, 불임인 개체도 많았다. 그래서 바트케는 성장호르몬 주사가 장수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이론을 편다.

이 돌연변이 생쥐들은 백내장, 관절염 같은 노화에 따른 질병에 덜 걸리며, 세포를 배양해 실험했을 때 열이나 산화제 같은 스트레스에 저항성이 더 강했다. 따라서 예쁜꼬마선충과 생쥐의 노화 억제와 수명 연장 방식은 유사성이 아주 많다.

이런 유사점들에 초점을 맞추면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선충의 수명이 6배 늘어났으니, 인간의 수명도 약 700세로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캐넌은 지극히 낙관적이다. 그는 아예 ‘일릭서(Elixer·불로불사약)’라는 이름의 제약회사까지 설립했다. 캐넌은 논문과 인터뷰에서 노화 과정이 유연하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점이 자기 연구의 큰 성과라고 말했다. 노화 과정은 쓸수록 닳는 자동차의 노후화 과정과 다르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명이 늘어난 예쁜꼬마선충은 늙은 단계가 연장된 것이 아니라 젊은 단계가 연장된 것이다. 즉 노화가 지연된 것이다. 그것은 노화에 따른 퇴행성 질환들의 발병 시기도 그만큼 늦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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