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北 국제금융기구 가입 ‘산 넘어 산’ ADB(아시아개발은행) 최대주주 일본 반대가 암초

  • 장형수 한양대 교수·국제금융 hzang@hanyang.ac.kr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3/4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측 상임이사는 “1991년 구 소련 해체로 소련의 일부였던 체제전환국들이 IMF에 가입할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반박한다. 일국의 통계작성 능력은 단시간에 향상되기 힘들기 때문에 일단 북한을 IMF에 가입시킨 후 통계작성 능력 향상을 위한 대대적인 기술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 이러한 주장은 결국 상임이사회를 통해 관철되기에 이른다.

신규회원국 가입을 결정하는 총회는 통상 별도의 회동을 갖지 않고 6주간의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데, 총 투표권의 3분의 2 이상을 보유하는 가입국이 투표에 참가해(IMF 총회 투표권은 각국의 할당금 비율에 따라 정해진다) 행사된 투표권의 과반수 찬성이면 가입이 확정된다. 이러한 의사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전체 투표권의 16.8%를 보유하고 있을뿐더러, 상임이사회의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IMF 출장팀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미국측 상임이사실에서 전화가 오면 IMF 직원들이 늘상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외에 난상토론을 즐기는 영어 잘하는 일부 서유럽 상임이사들도 발언권이 세다. IMF 투표권이 1.33%에 불과한 한국은 아쉽게도 호주 상임이사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IMF 상임이사회에 전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따라서 북한의 IMF 가입은 미국이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북한은 국제금융기구 가입 문제를 북핵 시설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이후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종식의 상징으로 간주해왔다. 북미 간 관계정상화와 핵 폐기 과정에 큰 돌발변수가 발생하지 않은 덕분에, 백악관은 북한의 IMF 가입에 대해 승낙 신호를 보낸다. 이후 일사천리로 이어진 총회절차를 통해 북한의 재정상(財政相)과 조선중앙은행 총재는 미국 워싱턴에 날아가 IMF 협정문에 최종 서명하기에 이른다.

한편 평양의 관계 당국자들은 ADB의 경우 가입심사 절차나 자금지원 조건이 IMF보다 덜 까다롭다는 소문을 듣고 반색한다. ADB는 저개발국의 빈곤 감소라는 설립 목적에 가장 충실한 국제금융기구이기 때문에 IMF와 사이가 좋지 않은 우즈베키스탄 같은 국가들에도 경제개발차관을 상당액 제공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북한은 비슷한 시기에 ADB에도 가입을 신청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ADB의 최대주주는 다름 아닌 일본. 미국과 동일한 투표권(12.9%)을 보유하고 있고 ADB 운영에 있어 발언권이 가장 세다. 게다가 ADB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총투표권의 4분의 3이 필요하다. 이는 IMF나 세계은행보다 까다로운 의결 조건이다. 미국이 찬성한다 해도, 최악의 경우 일본과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의 자금지원을 많이 받는 국가들이 반대한다면 북한의 가입은 봉쇄된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종식 관철 이후에도 북일 간에 납치자 문제를 두고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북한의 ADB 가입은 계속 지연되고 국제사회의 본격 진입 행보는 상대적으로 더뎌질 수밖에 없게 된다.

통계 제출의 숨바꼭질

비록 ADB 가입에는 실패했지만 IMF와 세계은행 가입에 성공한 북한은 이들 기구에 저금리 차관 도입을 타진하기 시작한다. 북한이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려면 회원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특히 국민소득, 국가재정, 국제수지 등에 관한 통계 제출과 IMF 협정문 제4조에 따른 정책협의는 모든 회원국의 기본 의무사항이다.

IMF와 회원국은 정책협의 과정을 통해 경제정책을 조율하며 ‘정책권고’의 형태를 통해 회원국의 정책방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정책권고’는 IMF 협정문상 회원국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IMF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려는 회원국은 이를 상당부분 수용해야 한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이 IMF로부터 긴급자금지원을 받았을 때의 상황이 대표적인 경우다.

세계은행, ADB의 차관에도 IMF만큼 까다롭지는 않지만 일정한 자금지원조건이 설정된다. 국제사회는 IMF와 세계은행, ADB 등 국제금융기구와의 정책협의 및 자금지원 조건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에 적잖은 딜레마를 던진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전면 거부하면, 비록 국제금융기구에 가입은 돼 있지만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있는 이란·시리아·수단처럼 본격적인 자금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선군(先軍) 조선’의 자부심 강한 관리들과 정책협의를 위해 마주 앉은 국제금융기구 실무책임자는 협의 전 과정에 걸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실무자 처지에서는 자기가 담당한 국가의 업무에서 무엇이든 진전이 있어야 인사고과에 도움이 되게 마련. 북한은 오히려 국제금융기구 총재에게 재정상과 조선중앙은행 총재 명의로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내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실무책임자 OOO는 연례정책협의나 차관공여 협상시 종종 아국을 매우 무시하는 언동으로 아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차관공여 여부 등으로 위협하면서…강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이에 OOO의 교체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서한이 전달되는 것은 해당 실무자 처지에서는 말 그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회원국으로부터 공식적인 불만이 제기되면 국제금융기구 수뇌부는 어떤 형태로든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

북한이 가입절차를 마치자마자, IMF와 세계은행은 본격적인 실태조사 출장팀을 즉시 평양에 파견한다. IMF는 거시경제통계, 외환, 재정, 무역, 조선중앙은행 통계 등을 작성하고 세계은행은 농업, 교육, 보건, 교통, 통신, 전력 등 부문별 실태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북한 관리들과 숨바꼭질을 벌인다. IMF와 세계은행의 각 상임이사회에 제출된 실태조사보고서는 북한측 당국자들의 현대적 통계개념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지적하며 “의미 있는 북한통계 작성을 위해서 북한 관리들을 미국 워싱턴에 있는 IMF와 세계은행 연수원에 초청해 통계작성 기법에 대한 집중연수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3/4
장형수 한양대 교수·국제금융 hzang@hanyang.ac.kr
목록 닫기

장형수 전 국정원 국가정보관의 현장 분석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