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호

‘서울-평양 대선 드라마’ 3色 전망

‘관리’로 선회한 워싱턴, 자신감 넘치는南, 저울질하는 北

  •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namsung@korea.ac.kr

    입력2007-08-09 1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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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8월, 2·13합의의 1단계 조치인 영변 핵시설의 폐쇄 봉인이 완성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들이 북한을 방문, 2단계 조치인 불능화(disablement)를 위한 기술적 논의에 착수한다. 서울에서는 급속하게 평화 분위기가 고조된다. 2007년 가을 어느날, 판문점 인근 도라산역.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모인다. 4개국 정상은 전세계를 향해 ‘세기의 선언’을 한다. 6·25전쟁의 국제법적인 종전(終戰)과 평화체제(peace regime) 구축시동 선언이다. “1953년 7월27일 휴전선언을 한 이래 54년 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었다. 이제 참전 당사국들과 이해 당사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로 합의했다. 평화협정을 위한 구체적인 사안은 6자회담 틀 안에서 4개국 외무장관이 모여 논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실현 가능한 가상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필자만의 것이 아니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미국의 북핵 정책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한국의 정치권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한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할 것인가.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에 대한 언급이나 해결책 없이 평화협정은 곤란하다’는 논리는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얘기냐”는 반박에 부딪힌다. 섣불리 찬성하고 나서면 “과거의 대북 강경정책부터 사과하고 참여하라”는 반응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보수가 습관적인 냉전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남북 문제가 2007년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상황은 언제 누구로부터 왜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서울-평양 대선 드라마’ 3色 전망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6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임기가 거의 바닥난 11월경이라도 정상회담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1~2월에만 하더라도 지배적이던 ‘그게 가능하겠는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잘하면 될 수 있겠다’는 미묘한 낙관론으로 변화하는 분위기다. 외교안보 참모들은 단호한 부인에서 “가능성의 하나”라며 사태를 주시하는 분위기다. 정상회담 관련보도에 대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허위로 보도한다”던 대통령의 노기는 3월 들어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최고위급 정보기관장을 만난 관계자는 정상회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강한 부정’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해석하기 따라서는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는 것. 남북정상회담 전도사역을 자임하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연일 정상회담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고, 여기에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변화의 모멘텀을 지피고 있다.

    이 전 총리는 3월 방북하고 돌아와 청와대를 방문, 노 대통령에게 한 시간가량 방북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당시 보고의 골자는 이 전 총리가 최승철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핫라인’을 구축했다는 내용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 부위원장은 2006년 8월 림동옥 통일전선부장 사망 이후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남측에서 온 고위급 인사들도 그를 통해서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실세다. 이후 범(汎)여권 인사들의 방북 러시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5월 이후 변화는 더욱 뚜렷해졌다. 남북정상회담보다는 남·북·미·중의 4자회담이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해찬 전 총리는 5월10일 미국을 방문했다. 오는 9월 열리는 APEC(아태경제협력체) 회의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해 4개국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구상을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는 7월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4자 정상회담과 연계해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준비 중”이라며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장애가 없다면 금년 중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지금 4자회담과 더불어 남북정상회담 의제를 준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정전(停戰)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 북방한계선(NLL) 문제, 군축·군비 문제 등이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를 드렸고, 대통령도 안보실장 등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것은 4자 정상회담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됨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이 먼저 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세현 이화여대 석좌교수. 그는 4월25일 광주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 주최 토론회에서 “북미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마저 주도하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라며 “4국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 전 총리와 문정인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 등이 제기하고 있는 ‘4자 정상회담 우선추진론’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도 4월24일 경실련통일협회 주최 강연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은 남북이 주체가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증하고, 유엔이 추인하는 ‘2+2+유엔’ 방식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두 정부의 차이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담당했던 관료들은 남북 문제가 6자회담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구도에 적잖은 불만을 갖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지금처럼 남북관계 행보가 북핵 문제 해결 행보보다 한발 뒤처져 따라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최근 “우리가 워싱턴이나 평양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며 정부의 주체적 노력을 촉구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때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다니는 몇몇 사람이 노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추진하는 ‘국제공조하의 6자회담과 이를 통한 4자회담’ 구도에 대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DJ정부 그룹들은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치부한다. 동교동이 남북정상회담의 선행에 방점을 찍고, 4자회담에 무게를 싣는 청와대와 정부의 기류에 직접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을 수뇌로 하는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팀의 속내는 다르다. 언뜻 보기에 남북정상회담보다 복잡하고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4자회담에 매달리는 이유는 일반인에게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고려사항, 국제정세와 국내요인이 있다. 이 가운데 국제정세는 뒤에서 다시 짚어보기로 하고, 일단 국내요인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국내요인의 핵심에는 북한의 완강한 태도가 있다. 북한은 2000년 정상회담을 통해 5억달러라는 적지 않은 현금을 챙겼다(2000년 북한의 총수출액이 5억6000만달러였고 무역총액은 19억7000만달러였다). ‘현금거래의 추억’을 간직한 평양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정상회담에는 ‘윤활유’가 필요하다는 뜻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과의 회담으로 노벨상을 받은 만큼 남측의 ‘인사표시’가 당연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 ‘남측이 싫으면 그만두고 차기 정부로 이월하면 되니 급할 것 없다’는 느긋한 태도다.

    그러나 2007년의 서울에는 2000년처럼 거액의 자금을 중개할 기업도, 오너 경영자도 없다. 미국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이후 은행들도 불법행위에는 얼씬하지 않으려 한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관계자들이 사법처리를 받는 것을 목격한 공무원들도 복지부동이다. 현금을 컨테이너에 실어 인천-남포 정기 선박의 화물로 보내는 식의 경천동지할 공작을 전개할 간 큰 정보기관 요원은 별로 없다. 3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화상상봉 장비설치자금 40만달러 등 지금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에 현금이 지급되고 있지만, 합법과 불법행위는 분명 다르다. 현금을 마련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현금을 주고 정상회담을 여는 것은 6·15가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다.

    대가 없는 정상회담을 평양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물 건너간 일이 된다. 식량과 비료 등 매년 반복되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남북회담의 지렛대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공식적인 경제협력 확대 차원의 보상을 제의한다 해도 김 위원장에게는 별다른 매력이 없어 보인다.

    현재 외교안보팀을 이끌고 있는 송민순 장관은, 여러 견해가 엇갈리지만 기본적으로 외교관 출신이다. 외교관들은 본질적으로 북한 문제를 남북관계 수준이 아니라 국제적 시각에서 모색하고 대책을 마련한다. 현재의 정보기관장 역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알아서 악역을 맡던 과거의 정보기관장들과는 다르다. 특히 정기적인 청와대 독대(獨對) 보고가 없는 정보기관장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는 어렵다. 청와대의 참모들 역시 정보기관을 통해서 비선(秘線)작업을 추진할 의도도 별로 없어 보이고, 남북관계를 다룬 경험이 부족해 공작 차원에서 일을 도모하기도 어렵다. 외교안보팀이 남북정상회담보다는 ‘국제적인 그림’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평양의 생각은?

    2006년 하반기 들어 국정원과 여권의 실세그룹 일부는 청와대와 교감하에, 일부는 청와대와 상의 없이 평양에 최소한 다섯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6년 7월 이광재 의원 라인은 베이징에서 김일성의 외오촌 조카인 강관주 대외연락부장과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핵실험 이전이다. 안희정씨는 2006년 8월 옌지에서 리호남 등 북한 비선을 접촉, 정상회담을 상의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대미 압박에 주력하고 있던 터라 남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는 어려웠다. 부시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대북정책을 수정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평양은 한숨을 돌렸고, 남한에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핵실험 이후 냉랭했던 남북관계는 2·13합의 이후 자연스럽게 해빙무드로 전환됐고, 이 전 총리의 말처럼 남북대화의 핫라인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이 남한 정치인들의 평양 방문을 허용하기 시작한 게 이 무렵부터다. 남한을 제쳐두고 미국과 통하겠다던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미국과 통하고 남한과도 교류하는 통미통남(通美通南) 정책으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주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에는 남한의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북풍(北風)’에 대한 필요성도 포함돼 있는 듯하다. 야당인 한나라당보다는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할 여권 주자의 당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기대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양을 방문한 많은 여권 국회의원이 2002년 대선과정의 재현을 역설했지만, 북측의 대남 분석라인은 한 자리에서 최소한 20년 이상을 지키는 베테랑들이다. 각종 방송뉴스와 6대 일간지를 꼼꼼히 스크린하는 것은 기본이고, 남한 내부에 구축된 각종 정보망으로부터 올라오는 정보보고를 통해 여의도 정가 사정과 국민여론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북한의 대남라인 인사들은 오히려 위험한 개입보다는 조용한 관망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27일 노동당 중앙당회의에서 “특사접촉 등 실무적 차원에서 정상회담 문제를 검토하겠으나 현재로선 회담으로 득 될게 크게 없으니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말라”는 유보적인 방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월 평양을 방문한 정세현 전 장관은 6·15 민족통일대축전의 환영연회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촉구했지만, 북한측 인사들은 동행한 남측 취재단에게 해당 연설내용을 기사화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마이크를 끄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후문이다. 정상회담에 대한 무관심을 극대화해 남측의 조바심과 무리수를 유도하기 위한 제스처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 평양은 범여권 대선주자를 하나하나 초청해 ‘기념촬영’ 기회를 제공하는 조치도 잊지 않고 있다. 이미 손학규, 이해찬, 김혁규, 정동영 등의 대선주자가 북한을 방문했고 한명숙 전 총리도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매개로 해 북한 문제를 트레이드마크로 활용할 태세다. 한 전 총리는 4월말 말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장례식 조문사절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한반도 종단철도(TKR)-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계사업 등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을 만나 현안을 논의한 바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 목적지

    이러한 국내요인과 함께, 현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남북정상회담보다 4자 정상회담에 포커스를 맞추는 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세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중간선거 패배와 네오콘의 퇴조, 2·13합의 이후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CVID)으로 북한 핵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정책목표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북핵 정책이 핵의 완전한 해체(dismantlement)보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숫자에 ‘뚜껑을 닫는(put a cap)’, 즉 소량의 핵무기로 한정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대두되는 배경이다. 바꿔 말하면 대(對)북핵정책이 핵을 현 상태에서 관리하는 CVIM(CVI+Management)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북한 핵 문제는 3차원이다. 과거의 핵, 현재의 핵 그리고 미래의 핵이 있다. 조잡한 수준으로 추정되는 이미 제조된 몇 개의 핵, 영변에서 작동되어 플루토늄이 매일 늘어나는 현재의 핵, 그리고 존재여부의 증거가 충분히 포착되지 않은 고농축 우라늄방식(HEU)에 의한 미래의 핵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2·13합의는 현재의 핵을 다루고 있다.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 협의라는 표현이 있지만 북한이 고백하지 않으면 ‘과거의 핵’은 미제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유화태도는 2008년 임기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문제 자체는 관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유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이 핵 포기를 질질 끌며 워싱턴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하더라도 대화와 협력에 의한 ‘플랜A’를 중단하고 제재 위주의 ‘플랜B’로 회귀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점점 거세지고 있는 러시아의 입김이 단적인 상징이다. BDA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국 금융기관들의 신용 훼손을 우려해 자금중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미국과 자금이체 문제를 화끈하게 담판지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첨예한 대결을 경험한 ‘북극의 곰’이라는 명성에 맞는 소신외교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러시아가 남북정상회담을 중개할 수 있다는 설이 강력하게 부상하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러시아 주도의 남북정상회담설은 ‘신동아’ 3월호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진단한 바 있다). 소강상태를 보이던 러시아 주도의 정상회담설은 6월 들어 추가 정보가 흘러나오는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이 오는 8월말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루스키 섬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노무현 대통령을 초청해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소식이다. 실무접촉은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되고 있고 청와대가 직접 주관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러시아는 한국에 갚아야 할 채무 14억달러를 활용해 사할린 가스관 사업을 북한과 연계해 추진하고자 한다. 사업의 성사와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상회담이 필수적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언론에서 빈번하게 가능성이 보도되던 사업이 임기 말에 이르러 다시 한번 되살아나는 셈이다.

    4개월의 드라마

    정상회담은 개헌과는 다른 이슈다. 2주 만에 콘텐츠 부족으로 소멸한 개헌 제안과는 달리, 정상회담은 최소 2개월 이상 국민여론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언론은 정상회담 발표 순간부터 정상회담 이후까지 다양한 사전보도와 기획기사, 실무회담 등 후속조치 보도를 이어 나갈 것이다. 모병제 실시, 단계적 감군 등 다양한 장밋빛 평화공약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대선정국은 자연스럽게 전쟁과 평화의 구도로 형성될 수 있다. 1차 정상회담의 학습효과로 인해 위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보도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의 파괴력은 적지 않다.

    ‘서울-평양 대선 드라마’ 3色 전망
    남성욱

    1959년 서울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미주리주립대 박사 (응용경제학)

    통일부, 국가안전보장회의, 해양수산부, 농림부 정책자문위원

    KBS, CBS 북한문제 객원해설 위원

    現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이화여대 대학원 북한학과 강사

    논문 : ‘북한의 식량생산, 소비 및 무역에 관한 현황과 전망’


    앞서도 말했지만, 북한은 각종 채널을 통해 남한의 대선구도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현재 당선 가능성이 높은 야당 후보들에 대한 분석도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북측 대남라인 관계자들은 평양을 방문하는 남측 인사들을 통해 야당의 유력 후보에 대해 탐문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정확한 예측을 위해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은 8·15 기념일을 기점으로 서서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에 나설 것이다. 평화무드의 확산은 아마도 광복절부터 9월 추석을 지나 10월 하순에 이르는 시기가 절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11월 중순 들어 시베리아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고 남한의 대선구도가 윤곽이 잡히면 북한은 선거개입의 유혹 대신 ‘새 정부 길들이기’ 대책 수립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이 4개월 동안 물밑에서 전개될 서울-평양의 대선 드라마는 영화보다 흥미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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