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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도 자문하는 도굴꾼의 세계

“‘꼬질대’ 콕콕 쑤셔대면 강태공 손맛처럼 감이 짜릿 오죠”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문화재청도 자문하는 도굴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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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도 자문하는 도굴꾼의 세계

문화재 절도조직으로부터 압수한 문관석 등 시가 1억원어치의 문화재. 이 절도조직은 전국의 문중 묘지를 돌며 석조물 등 100억원 상당의 문화재를 훔쳤다고 진술했다.

최근에는 도굴사건이 줄어들고 도난사건이 늘어나는 추세다. 강신태 반장은 “도굴할 묘가 줄어들었고, 1990년대 초부터 TV에 문화재를 감정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문화재가 돈이 된다’는 얘기가 돌면서 도난사건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문화재를 잘 모르는 ‘초짜 털이범’이 늘어나면서 범죄수법은 더 대담해졌다고 한다. ‘프로’들은 국보급 유명 문화재는 유통시키기 어렵다는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물건을 가려서 털지만, 초짜들은 가리지 않고 마구 훔친다는 것. 강 반장은 2003년 국립 공주박물관에서 고려시대 상감청자 등 국보급 문화재가 털린 황당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유통이 힘든 등록 문화재를 턴 솜씨를 보니 경험 없는 초짜들 소행 같았는데, 범인들을 붙잡고 보니 역시나 큰돈을 노린 청송감호소 출신들이었다는 것.

문짝, 문고리까지 뜯어가

문화재 털이범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안동 김씨, 의성 김씨 등 지방 집성촌의 재실(齋室), 사찰 등이다. 절도 역시 도굴처럼 상선들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다. 상선들은 전국에 정보책을 두고 ‘어느 동네 어느 집에 옛날 책이 많다’는 식의 입소문을 토대로 행동대원에게 지시를 내린다. 고서, 영정 등 대대로 내려오는 오랜 물건부터 문고리, 문짝까지 모두가 ‘작업 대상’이다.

특히 노인이 홀로 지키는 종가는 좋은 목표물이다. 이런 집은 보안과 관리가 소홀해 한 집이 여러 번 되풀이해 털리기도 한다. 조유전 관장은 “문화재를 국가기관에 위탁하면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지만 그런 정보를 몰라 도난당한 뒤에야 땅을 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집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몰라 물건이 없어진 것을 모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일단 도굴, 도난당한 유물을 되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도굴꾼들은 파헤친 묘의 입구를 나뭇가지 등으로 정교하게 봉해놓고 자리를 뜬다. 이처럼 사후 처리가 깔끔해 도굴 당시에는 관리인조차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몇 년이 지나 파헤쳐진 부분이 조금씩 내려앉은 뒤에야 신고하는 게 보통이다. 서상복씨 역시 “20년 간 도굴을 했지만 현행범으로 체포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도난은 사정이 좀 다르다. 도난당한 물건이 발견됐더라도 돌려받기가 어려워 허탈해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는 선의취득(善意取得·장물인지 모르고 사들임) 시효 7년이 지나면 원 소유자가 소유권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남 장성군 백양사는 1994년에 도둑맞은 탱화 한 점을 10년이 지나 서울 인사동 한국불교미술박물관에서 발견했다. 극락보전에 걸려 있던 ‘아미타산영산회상도’였다. 탱화 아래 적힌 글귀가 백양사에 걸려 있던 그림과 같았다. 그러나 박물관측은 1995년 인사동의 미술상으로부터 합법적으로 구입했다며 선의취득을 주장해 백양사측과 갈등을 빚었다.

지름길 없는 문화재 수사

도굴꾼들은 귀중한 유물이 많을 때는 연대가 짧은 것부터 버리기도 한다. 서상복씨의 말이다.

“도굴을 하면 금관, 도기, 자기, 말안장 등 다양한 유물이 나온다. 무덤 앞의 석물도 도굴 대상이다. 석물처럼 무게가 나가는 것들은 크레인을 이용해 훔치기도 한다. 사찰은 법당 안 불상 안에서 귀중한 복장(伏蔣·불상을 만들 때 부처의 가슴에 금·은·칠보 따위를 넣음)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 금사경, 은사경, 능엄경, 화엄경, 사리, 사리함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유물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연대가 300년 미만인 것은 소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태워 없앤 불경만 해도 100억원대의 값어치는 있을 것이다. 한국과 해외에 귀한 도자기가 수없이 많이 전시돼 있고 유통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그중에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묘를 해체해 꺼낸 것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극히 일부이고, 그나마 도굴꾼이 다녀간 자리에서 뒷북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도굴·도난 문화재 수사는 문화재청과 2006년 7월 출범한 경찰청 광역수사대 문화재전담수사반에서 맡고 있다. 김윤석 반장은 문화재 범죄 수사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수사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그는 “문화재 사건은 물밑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하는 것말고는 수사에 별다른 지름길이 없다. 문화재는 크게 석물, 고서, 도자기류로 분류되는데, 항목별 상선을 중심으로 주변의 흐름을 파악하다 보면 대충 선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오랜 기간 골동품상 등 관련 업계 사람들을 접촉하며 만든 리스트를 토대로 수사해 나간다고 한다.

“도굴·도난품은 주로 서울 인사동, 장안동의 골동품점에서 거래됩니다. 지방에서는 인근에 집성촌이 많은 대구, 충주에서 거래가 많은 편이죠. 이런 곳을 다니면서 물건이 돈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런 다음 새로 나도는 물건과 도난 문화재 도록에 나온 문화재를 대조합니다.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탱화와 화기 설명서 등에 등록된 도난 문화재와 모양·상태 등을 대조해 같은 물건이라는 확신이 서면 수사에 들어가죠. 일단 물건이 나온 골동품점 주인을 시작으로 4~5단계씩 윗선을 타고 들어갑니다. 대개 수년 전 도난당한 문화재들이죠. 최근에는 인터넷 문화재 경매도 늘어나 주시하고 있습니다.”

‘직지심경’ 상권은 어디에?

서상복씨는 “1998~2000년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심경) 상권 2권과 직지보다 앞선 불경 1권을 도굴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직지심경 상권의 출처와 불경의 출처 및 소장자를 밝혔고 “현재 직지 소장자가 같이 공개하자고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신태 반장은 “2001년 검찰에서 한 차례 조사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그 뒤 개인적으로 계속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세 가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으며, 신빙성이 있을 때 공개할 생각이다. 직지심경 상권이 정말 어디엔가 있다면 국가적인 일이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김윤석 반장은 “서씨의 말은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 그 금속활자본을 감정했다면 적극적으로 찾아볼 필요가 있다. 만일 서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가적 문화재인 만큼 이를 찾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문화재계가 도굴꾼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들 없이는 도굴된 유물의 행방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은 도굴꾼이 검거되면 그들의 진술에 따라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수사를 벌이며, 때론 교도소에 있는 도굴꾼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고려청자 : 도굴품. 현재 신주쿠에서 한일식당 경영하는 이가 소장. 유통가격 10억원/ 능엄경 언해본 불경 2권 : 1999년 신촌 봉원사에서 도굴. 4권 중 2권은 사찰 회수, 나머지 2권은 공무원이 빼돌림. 유통가격 권당 7000만원….’

서씨는 최근 보내온 서신에서도 과거에 도굴한 문화재에 대해 언급했다. “순천 선암사에서 훔친 45억원짜리 33도사도와 15억원짜리 팔성도를 선의취득한 개인 소장자가 있다. 한번 알아보라”는 말도 전했다.

전국의 묘역을 온종일 돌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도난당한 문화재는 공소시효 7년이 지나면 취득할 길이 없다. 국내에서 유통되기 힘든 도굴·도난 문화재는 해외로 유출된다.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으려면 문화재 도굴꾼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우리 문화재 관리의 씁쓸한 현주소다.

신동아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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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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