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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환단고기의 진실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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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배씨가 밝히는 ‘이유립 사관’

“영락대통일은 오늘날의 민족통일 사상”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전형배 창해출판사 사장(사진)은 이기 선생이 만든 단학회를 이끌고 있다. 단군교와 합치기 전의 단학회는 1909년 이기를 회장으로 해 설립됐다고 한다. 2대 회장은 계연수 선생이 맡았고, 3대는 최시흥, 4대는 이덕수, 5대는 이용담, 6대는 이유립, 7대는 전형배씨가 회장이다. 전씨에게서 이유립의 사관에 대해 들어보았다.

▼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고조선은 3개의 조선으로 돼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유립 선생도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신조선과 막조선 불조선이 있었는데, 만주의 신조선이 가장 강력했다. 그리고 불조선의 마지막 왕인 기준이 연나라에서 온 위만에게 쿠데타를 당해 나라를 빼앗기고 망명했다. 이 기준의 무리가 한강 이남에 삼한을 만들었다. 이유립 선생은 단군조선의 세 조선을 ‘전(前)삼한’, 기준 무리의 3한을 ‘중(中)삼한’, 고구려·백제·신라를 ‘후(後)삼한’으로 불렀다. 이 선생은 이러한 3국 체제는 3수론을 가진 천부경 사상과 일치한다고 하셨다.



▼ 환단고기에 북부여기가 별도의 책으로 들어 있는 이유는.

“신조선이 무너진 후 만주지역의 우리 민족은 열국시대로 들어가는데 이때 북부여가 가장 강성했던 것으로 본다. 단군조선처럼 전권을 장악하지 못했지만 고조선이 무너진 후 만주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것을 북부여로 보는 것이다. 북부여는 여섯 왕이 내려가다가 주몽에 의해 고구려로 바뀐다. 이 때문에 이유립 선생은 북부여를 원시고구려, 고구려를 본고구려, 대진국(발해)을 중고구려, 고려를 후고구려로 보았다. 북부여와 고구려를 하나로 보면 이 나라는 900년을 이어간 것이 된다. 발해라는 이름은 중국이 부른 것이지 우리가 부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진국으로 불렀다.”

▼ 이유립 선생은 광개토태왕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안다.

“이유립 선생은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광개토태왕을 매우 높게 평가해 영락대통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다. 광개토태왕은 고조선의 영토를 회복하고 신라 백제와도 사실상의 통일을 이룩한 군주다. 그러나 3조선 개념에 따라 신라와 백제를 존속시켜주었다. 백제의 개로왕을 전사시켰음에도 백제를 멸하지 않았고, 신라 왕자를 인질로 잡고 있으면서 신라를 존속시킨 것이 바로 영락대통일 개념이라고 이유립 선생은 강조하셨다.

영락대통일은 지금으로 말하면 연방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고구려는 말갈족과 함께 중국과의 전쟁에 나섰는데 이는 말갈족이 고구려라고 하는 거대한 제국 속에 있던 연방원이었음을 의미한다.”

영락대통일은 연방제국 개념

▼ 이유립 선생은 중국인들이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고 봤나.

“고구려 제국 안에 있던 우리 민족을 말갈 여진 옥저 읍루 등 별도의 이름을 붙여 기록해놓은 것을 대표적인 왜곡으로 보았다. 말갈은 고구려 말로 ‘강가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중국의 역사서는 이들을 말갈족이라고 적어 놓음으로써, 마치 고구려족과는 별종인 것처럼 묘사했다고 비판하셨다.”

▼ 이유립 선생의 사관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만일 중국인들이 한국에서는 영남인과 호남인이 자꾸 싸운다는 기록을 많이 남겨놓았다고 가정해보자. 먼 훗날 이 기록을 보게 되는 사람들은 ‘영남인과 호남인은 종족이 달랐던가 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선생은 중국의 사서들이 옥저 여진 말갈 읍루로 자꾸 나눠서 기록해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

지금 우리가 유의할 것은 일본이 우리 민족을 둘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북한 사람은 조선인, 남한 사람은 한국인으로 적고 있는데 이러한 기록이 쌓이다 보면 남북한 사람은 별개의 종족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된다. 영락대통일은 남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에 있는 조선족과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까지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거대한 통일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 계연수 선생은 묘향산 석벽에 새겨진 천부경을 탁본해 대종교에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

“이유립 선생께서는 계연수 선생이 약초를 캐서 서울에 내다 파는 일을 했다고 하셨다. 그때 대종교에서는 천부경을 인정하지 않아 계연수 선생이 묘향산 석벽에서 천부경을 탁본했다는 말을 약초를 팔면서 퍼뜨렸다고 하셨다. 그런 소문을 내야 대종교가 천부경을 빨리 인정할 것으로 보고 그렇게 했다고 이유립 선생은 웃으면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학자들의 임무

그렇다면 이젠 학자들이 보다 세밀한 연구를 해야 한다. 환단고기 실증 작업은 북한과 함께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북한에는 계연수가 만든 환단고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의 구월산에는 환인과 환웅 환검(1대 단군)을 모신 삼성사가 있고, 묘향산에는 단군사라는 사당이 있다.

과거 북한 역사학계는 고조선이 요하에 있었다는 주장을 해왔으나 최근에는 평양의 단군릉 건립을 계기로 고조선은 대동강에 있었다는 쪽으로 역사의 폭을 좁히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변화는 황하문명이나 요하문명과 구분되는 대동강문명을 만들어, 김일성-김정일 체제 구축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환단고기의 연구는 정치적인 이유로 위축된 북한 사학을 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강단(講壇) 사학계는 환단고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환단고기 연구를 피해간다면 한국은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만선사관에 맞서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소중화 류의 반도사관이 환단고기 류의 대륙사관을 억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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