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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7

나는 말을 믿고, 말은 제 말굽을 믿고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나는 말을 믿고, 말은 제 말굽을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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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믿고, 말은 제 말굽을 믿고

연암이 ‘야출고북구기’를 썼던 고북구. 만리장성이 이 마을을 지난다.

이렇게 이별의 환경으로 하필 물가냐고 했다. 굳이 어슴푸레한 안개 속이나 돌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물살만이 이별의 마당일 수 없노라고 했다. 이것은 이별의 환경론에서 이별의 본질론으로 선회한 것이다. 남의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모든 이별은 통곡의 원인임을 밝혔다. 이별의 시공간이 화창한 봄날, 현란한 동량일지라도 가슴을 칠 수밖에. 심지어 ‘돌부처라도 뒤를 돌아볼지요. 쇠로 만든 창자일지라도 녹고 말 터니, 이때야말로 우리나라에 정사(情死)하기에 제일 알맞은 때’라고 했다.

이별론의 결론은 생별이 사별보다 슬프다는 것을 전제했고, 생별은 환경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지나 타향에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별이라면 그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애끓는다고 했다. 곧 모든 것이 이별의 땅일 수 있다는 주관적 비극론으로 매듭지었다.

연암의 이별론은 이렇게 주관적이고 상투적이지만, 이별의 통절은 누구와의 이별이냐에 달려 있다. 연암은 비록 장복이나 창대와의 관계를 부자·군신·붕우의 그것이 아니라 했지만, 그들은 신분상 주종관계를 뛰어넘은 인간관계임이 확실했다. 오죽해야 장복이와 연암의 생별을 ‘오동제일정사(吾東第一情死)’에 견주었을까.

하룻밤 아홉 번 강을 건너며

‘열하일기’는 그 고난의 대목마다 주머니에 감춰둔 사진처럼 창대나 장복이를 꺼내본다. 그것은 6월24일 연암 일행이 의주를 떠나 도강하기 직전, 문루의 기둥에 연암의 마부 창대와 하인 장복이의 무사 발섭을 빌기 위해 술을 뿌리면서부터다. 7월7일 연산관을 지나 도강할 때는 세 사람의 목숨은 모두 작은 말 등에 꽁꽁 묶여 있었다. 창대는 말 머리를 껴안고 장복은 뒤에서 연암의 궁둥이를 바짝 부축하면서 세찬 물결을 갈랐으니 누구 하나라도 삐끗하면 몽땅 낙화유수될 뻔한 공동운명체였다.



‘막북행정’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북경에서 장복이와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창대가 백하를 건너다 말굽에 밟혔는데 그만 말편자가 살을 뚫고 박힌 것이다. 아프고 쓰려 오도가도 못하는 창대에게 연암은 기어서라도 따라오라해놓고 친히 고삐를 잡고 앞을 나섰으니 그 마음이야 어찌 헤아리랴! 창대는 그 뒤로 포기하지 않은 채 돈을 주고 나귀를 세내거나 부사의 가마에 매달리면서 필사적으로 따라왔다.

나흘이나 밤낮없이 고행타가 마침내 창대를 만났지만 창대는 주림과 추위를 이기지 못한 채 마치 학질에 걸린 듯 헛소릴 해댔다. 연암은 창대에게 말을 내주고 흰 담요를 꺼내 창대를 싸고 띠로 묶을 뿐 아니라 수역의 마부더러 창대를 부축케 하고 연암과 수역은 걸어서 깊은 밤을 터덕거렸다. 연암의 피는 그만치 뜨거웠다.

연암의 이별론은 연암이 북경에서 사무치게 피력했던 ‘유정유일’론이나 ‘천하지기’론의 반응이요 연속이었다. 청나라의 정양문과 자금성이 절대적으로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깃발을 높일수록, 조선의 선비는 절대적인 고독과 소외를 한 아름 안았다. 바로 그때 연암은 뜻밖의 열하행을 결정했고 거기에 따른 생별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한 타래의 실이다. 얽혔다가 풀리고, 풀렸다가 사리는 어려움이 있다. 그 어려움이 마침내 열하행은 물론 ‘열하일기’의 정점을 만든다. 그것들은 모두 8월7일에 쏟아졌다. 연암 산문중에도 백미로 꼽히는 ‘밤중에 고북구를 빠지며(夜出古北口記)’와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一夜九渡河記)’가 그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우리나라 말 모는 사람의 여덟 가지 위기’란 뜻의 ‘아동어마지팔위설(我東御馬之八危說)’을 보태고 싶다.

8월7일 연암은 아침에 목가곡(穆家谷:현재 지명은 목가욕(穆家·#54014;). 谷과 ·#54014;은 같은 뜻으로 쓰이나 연암의 오기인지 현재의 변용인지 분명치 않음. 다만 중국에선 ·#54014;자를 지명에 쓰는 예가 많음)을 떠난 뒤 광형하(廣?河)·석갑성(石匣城)을 지나 밤중에 고북구를 빠져나왔고, 다시 고북구를 지나 심야에 물을 만났다. 그것은 장성의 새북에서 물길을 얻어 유하(楡河)와 조하(潮河), 그리고 황화진천(黃花鎭川) 등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밀운(密雲)성에서 백하(白河)로 굵어진 흐름이었다.

여러 갈래가 아우른 데다 큰물이 진 뒤 돌에는 이끼가 끼고, 물살같아 화살로 그것들을 거슬러 오르면 빙빙 현기증이 났다. 이를 두고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며(一夜九渡)’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한 강을 아홉 번 건너며(一河九渡)’와 같았다. 강이 아홉 갈래가 아니라 강을 아홉 번 건넌 고난을 말한다. 여기서 ‘아홉구(九)’는 숫자의 의미보다 ‘많다’나 ‘지극하다’의 상징어다.

고북구 장성에 새기다

벽하에서 정사는 돈 500닢으로 현지인을 고용해 물길을 안내받았다. 하지만 말을 몰거나 견마잡이의 말을 타고 험한 물을 건너는 일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그 위기를 겪으며 말 몰기의 어려움을 일기에 토로했다.

그 첫 편인 ‘밤중에 고북구를 빠지며’는 연암이 8월7일 목가곡을 출발, 광형하와 석갑성을 경유해 일로북진, 삼경에서 마침내 고북구에 도착해 시전과 장성을 답사한 감격을 기록한 산문이다. 연암은 장성을 만나면 온몸에 전류를 느끼는 모양이다. 관문(關門)을 들고 나가는 길목에서 사람은 길흉을, 민족은 피아를, 역사는 개폐(開閉)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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