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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10주년 맞는 한국 최장수 기업 동화약품

활명수, 판콜, 후시딘… 연타석 안타 끝에 터뜨린 ‘글로벌 신약’ 홈런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창립 110주년 맞는 한국 최장수 기업 동화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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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10주년 맞는 한국 최장수 기업 동화약품

동화약품 본사 부지 인근의 서울연통사 기념비. 옛 동화약방 자리다.

1913년 90여 종의 제품을 내놓고 전국에 186개소의 특약판매소를 설치하고 멀리 만주에까지 지점을 여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동화약방은 민강 사장의 열혈 독립운동으로 사세가 점점 기울어간다. 민 사장은 1919년 3·1운동 이후 한성임시정부수립운동에 관여하는 한편, 비밀결사조직인 대동단(大同團)에도 가입했다. 대동단은 제1차 거사로 의친왕 이강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조직에 참가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로 끝난다. 이 일로 대동단 간부들은 거의 다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강 사장도 이때 1년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민 사장은 그 후 계속된 독립운동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다 1931년 11월4일 건강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한국 약업계의 선각자였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였다.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으며, 그의 시신은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이윤 100% 재투자

민강 사장이 옥고를 치른 후 동화약방은 크게 위축됐다. 일제는 ‘검사’ 혹은 ‘실험’이라는 명목으로 약을 마음대로 빼앗아갔다. ‘감시원이 약품을 무상으로 가져올 수 있다’고 규정한 총독부의 ‘약품 및 약품 취체령’에 따른 조치였다. 결국 민강 사장이 유명을 달리하고 사세가 계속 기울자 1937년 민씨 일가는 풍전등화 처지의 동화약품을 민족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이던 보당 윤창식(保堂 尹昶植·1890~1963) 선생에게 넘겼다.

당시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던 민씨 일가가 보당에게 기업을 받아달라고 한 것은 그가 기업 운영과 독립운동의 양쪽에 모두 재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1890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보당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상과를 졸업한 뒤인 1915년 3월 국산품 애용과 민족경제 자립을 목적으로 조직된 항일비밀결사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하고 총무로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발각, 옥고를 치른 인물. 그는 국내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新幹會)의 간부를 맡기도 했다. 광복 뒤에는 서울시의원과 숙명여자중·고등학교 후원회 이사장과 자선사업단체인 보린회(保隣會) 창립자 등으로 활동했다.



동화약품 제5대 사장에 취임한 보당은 가내수공업 수준에 머물던 동화약품을 현대적인 대량생산체제로 바꿔 나갔다. 이 때부터 110년 전통의 부채표 ‘활명수’는 본격적인 황금시대를 맞는다. 당시 활명수는 선금을 예치하고도 제품을 구입하기가 힘들 정도로 공급 부족 사태를 빚기도 했다. 활명수는 해외로도 진출한다. 1937년 만주국에 해외 상표등록하고 이듬해에는 만주국 안동시에 동화약방 지점을 설치했다. 이후 활명수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그러나 동화약방은 광복과 함께 이북과 만주국 시장을 상실하고, 뒤이은 6·25전쟁으로 순화동 공장이 완전 파괴되는 등 시련을 겪는다. 전쟁이 끝난 후 동화약방은 ICA(국제협조처) 자금을 받아 쓰러진 공장을 복구하고 재기에 나선다. 당시 보당은 “동화는 비록 폐허의 터전에 서 있다 해도 민족자존의 긍지를 버릴 순 없다. 민족기업의 긍지는 순수민족자본으로 재건될 때만 지킬 수 있다”고 역설하며, 약품을 팔아 생긴 이윤을 완전 재투자하는 독특한 경영방식을 구사한다.

결국 동화약방은 옛 명성을 되찾고 1962년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 뒤 본사와 순화동 공장을 신축하고 1972년에는 안양공장을 준공하는 등 발전을 거듭한다. 동화약품은 현재 ‘까스활명수’ ‘후시딘’ ‘판콜’을 비롯한 400여 종의 의약품과 30여 종의 원료의약품을 생산해 국내는 물론 세계 40여 개국에 공급하는 굴지의 제약기업으로 성장했다.

민족기업의 전통은 지금도 동화약품의 회사 분위기를 지배한다. 동화약품의 최고참 직원이자 최고위직 사원인 조창수 부사장은 “우리 임직원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사명감과 긍지로 꿋꿋하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온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 동화는 동화 식구 전체의 것이요, 또 이 겨레의 것이니 온 식구가 정성을 다해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라.”

‘윤리경영’ 벤치마킹 사례

민족기업가 보당의 이 유훈은 동화약품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보당의 아들인 윤광렬(1924~) 현 회장도 광복군 출신이다. 윤길준 사장은 “우리의 자본으로, 우리의 제약기술로, 우리의 노동력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영세 중소기업 민족자본을 육성해야 한다는 선조들의 강력한 메시지를 지금도 미래에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동화약품은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는 보당 선생의 유훈을 바탕으로 윤리경영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동화정신 4개 조항이 바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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