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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 이병석 의원 동행 취재

“의원님, 잔돈은 팁이에요!”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택시 기사’ 이병석 의원 동행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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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은 늘 팁을 주는 처지인데, 오히려 받게 되니까 기분이 묘합디다. 팁은 흔히 상대방의 감정에 상관없이 우월한 기분으로 선심 쓰듯 주는데, 그 손님처럼 마음에서 우러난 정성을 담아주면 서로 기분 좋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이렇듯 마음에서 우러나는 팁 문화가 널리 퍼지면 좋겠어요.”

그때 받은 1만원은 ‘기분 좋게’ 개인후원금으로 영수증 처리했다고 한다.

“정치에 관심 없다, 경제나 살려라”

정오경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해병대에 입대하는 청년 두 명을 태웠다. 북구에서 남구를 가로질러 해병대본부 앞에서 손님을 내려준 이 의원은 “우리 아들이 둘 다 해병대 출신인데 입대할 때 내가 바빠서 못 가고 아내가 홀로 배웅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펑펑 우는 아내를 보며 미안했는데, 해병대에 입대하는 청년을 태워주고 오니 새삼 그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포항까지 왔다는 두 청년에게 이 의원이 “이명박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 청년이 “이번에 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청년은 “난 이명박이 싫다”고 잘라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을 때 병역 의혹이 불거져 이 후보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것. 이명박 후보의 병역 의혹은 나중에 ‘입소 후 기관지확장증으로 의병 퇴소’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청년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듯했다.



오후 1시50분경 죽도시장 부근에서 쏜살같이 달려가는 이 의원의 차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놓쳤다. 비서관이 여러 차례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일행은 “의원님이 점심도 안 드실 모양이다. 우리끼리 밥이나 먹자”며 시장 근처 곰탕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비서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왜 제대로 안 따라오냐”는 고함소리에 놀라 황급히 식당을 나와 차에 올랐다. 죽도초등학교 앞에서 다시 만난 이 의원은 “그 사이 두 건이나 했다”며 흐뭇해했다.

이날 하루 이 의원은 27명(유아 2명 포함)의 손님을 태웠다. 직업군인, 대기업 회사원, 노점상 할머니, 태국에서 시집온 주부, 군 입대자, 중·고등학생, 간호사, 주부 등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손님들의 관심사는 많이 변해 있었다.

“5, 6년 전만 해도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기사식당이나 시장통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면 열을 올리며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언쟁을 벌였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들이 정치를 멀리하고 있다. 요즘은 ‘일자리를 만들어달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거의 전부다. 정치에 절망한 것 같아 정치인으로서 자괴심을 갖는다. 사람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인데 공동체에서 정치의 비중이 자꾸 밀려나고 있어 안타깝다.”

이날 두 번째 손님인 젊은 회사원도 정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모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한다는 그는 이 의원이 이명박 후보 얘기를 꺼내자 “정치에는 관심 없다. 관심 기울일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말을 잘랐다.

與民同樂

대부분의 손님은 택시 기사 자격증 사진과 이 의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놀라움과 반가움을 드러냈다. 현역 의원이 택시 운전을 하는 것에 ‘뚱딴지같다’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격려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이 모는 택시 뒷좌석에 당당하게 앉아 고객으로 예우받을 때 사람들은 내가 국회의원을 뽑아준 주인이구나 하고 실감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걸 볼 때마다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는 초심(初心)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했다.

“정치권 등 일부에서 ‘쇼’라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설사 쇼라고 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두세 번만 해보면 서민 삶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오후 4시 교대시간을 앞두고 마지막 손님을 내려준 이 의원은 택시회사가 지정한 충전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웠다. 바로 옆 세차장에서 자동세차를 끝내고 차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들고는 “교대하는 뒷사람을 위해 가스도 채워야 하고 깨끗이 세차도 해야 한다”며 꼼꼼하게 물기를 닦았다. 이 의원의 차가 회사로 들어서자 교대근무를 기다리던 기사 몇 명이 다가왔다. 모두들 사납금을 채웠는지 궁금해했다.

이 의원이 12시간 동안 택시를 몰고 달린 거리는 147㎞. 사납금 정산창구에서 기록표에 사인을 한 뒤 손에 남은 돈은 1만3000원이었다. 이 의원은 “오늘까지 12번 택시를 몰았는데 사납금을 채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흥분한 표정이었다. 기사들은 “영업 잘하셨네. 나도 오늘 사납금을 채울 수 있으려나?” 하며 부러움 반, 걱정 반의 얼굴로 각자의 택시에 올랐다.

이 의원은 “내 정치 모토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하루 종일 운전하다 보면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사람들 고충을 듣느라 마음이 무겁지만 소박한 정을 느낄 때도 많다.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결국 점심을 쫄쫄 굶은 우리 일행은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서둘러 택시회사를 빠져나가는 이 의원을 배웅하고 오후 5시가 넘어 늦은 점심을 먹으러 차에 올랐다.

신동아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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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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