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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최초 대(對)테러부대 606부대 秘史

최강 특수부대원에서 권력자의 경호원으로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한국군 최초 대(對)테러부대 606부대 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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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부대 출신 이봉상 예비역 소령의 국가유공자 신청

“신체 이상 있었다면 606부대원 발탁 불가능”


육사 29기인 이봉상 예비역 소령은 1978년 2월 606부대에 부임해 초대 1특공대장을 맡았다. 현재 육군 1, 3군사령관인 김태영 대장과 백군기 대장이 그의 동기생이다. 그는 606부대 창설 당시 동기생 중에서 유일하게 발탁됐다.

3년여 동안 606부대에서 힘든 생활을 한 이 소령은 1981년 6월경 육군대학에 합격한 데 이어 프랑스 참모대학 시험에도 합격했다. 그는 육사에서 프랑스어를 배우면서부터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의 무관을 꿈꿔왔다.

그해 8월부터 한국외국어대에서 프랑스어 위탁교육을 받았다. 고생길이 끝나고 희망의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이 소령은 수업시간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강남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받다가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



국군통합병원 군의관은 위궤양으로 진단해 위 수술을 시도했다. 하지만 수술과정에서 식도정맥류파열이 발견되자 간 부위의 병이라고 추측하고는 급히 봉합했다. 이에 이 소령은 서울대병원을 찾아가 재수술을 받았다. 간경변증이었다. 수술 후 다시 통합병원으로 후송돼 1982년 2월까지 병상에 누워 지냈다.

퇴원 후 이 소령의 보직은 한양대 학군단 교관으로 바뀌었다. 프랑스 무관의 꿈은 아득히 멀어졌다. 교관 재직 중에도 서울대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았으나 한번 나빠진 간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될 기미마저 보였다. 결국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여 1983년 10월 전역했다.

지난해 7월 이씨는 우연히 606부대 부사관 출신인 김모씨를 만나 국가유공자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김씨는 606부대 훈련 도중 허리를 다쳤는데 국가보훈처에 관련 기록을 제출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됐다며 그에게도 신청을 권유했다.

지난해 10월 국가보훈처는 이씨가 제출한 통합병원 병상 치료 기록은 인정하면서도 공무 관련 질환으로 인정하기 곤란하다면서 국가유공자 비해당 처분을 내렸다. 이에 그는 지난 5월 서울행정법원에 보훈처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소송대리인 서영득 변호사는 “이씨의 간경변이 공무상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인정하느냐가 쟁점인데, 외국에선 이런 경우 인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606부대원으로 발탁될 때 정밀 신체검사를 통과했던 점과 통합병원에서 퇴원할 때 공상심의위원회로부터 공상 처분을 받았던 점도 고려 요소다.

공군 법무감 출신인 서 변호사에 따르면 606부대원으로 발탁된 군인들이 신체검사를 받은 공군 항공의료원은 당시 군 병원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의료기관이었다고 한다. 신체검사에서 탈락해 606부대에 전입하지 못한 장교와 부사관도 적지 않았다는 것. 이씨에게 국가유공자 신청을 권유한 김모씨도 “당시 신체에 조그마한 이상이라도 있으면 606부대원으로 발탁될 수 없었다”며 보훈처가 이씨의 신청을 기각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공수훈련도 특전사 부대원보다 훨씬 강도 높게 받았다. 공수부대에서는 한 달에 몇 차례 하던 훈련을 606부대에서는 매일같이 했다. 헬기에서 뛰어내리거나 줄을 타고 내려오는 훈련(레펠)이었다. 낙하 고도는 400m. 행주대교 주변에 있는 공터와 개화산이 강하 훈련장이었다. 종종 야간에 비행기에서 낙하해 기습 침투하는 훈련도 실시했다.

항공기 침투 훈련은 606부대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훈련이었다. 부대의 주된 임무가 항공기 납치범을 제압해 인질을 구출하는 것이니만큼 가장 중요한 훈련이기도 했다. 대한항공에서 제공한 낡은 비행기가 훈련 대상이자 훈련 장소였다.

부대원들은 매일 밤 이 비행기를 납치된 비행기라고 가정하고 침투하는 훈련을 되풀이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섬광수류탄을 터뜨리면서 기내에 침투해 마네킹으로 만들어놓은 납치범을 제압하고 인질을 구출하는 훈련이었다.

청와대에서 특공무술 시범

실제로 섬광수류탄이나 폭음탄을 터뜨렸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이 마비되고 귀가 멍멍해지는 등 신체적 압박감이 심했다.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현장에서 훈련 내용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브리핑 시간이 이어졌다.

특수부대인 만큼 구보 등 체력 강화 훈련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틀에 한 번씩 총기를 지니고 배낭에 30㎏의 모래주머니를 넣은 채 10㎞를 달렸다. 무장구보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모래주머니의 무게를 다시 재는 혹독한 훈련이었다.

그밖에 김포공항측의 협조를 받아 각국의 기종을 식별하고 탑승객을 안전하게 이끄는 훈련을 실시하고 출입국 절차도 익혔다. 또한 해군 UDU(수중폭파팀) 부대로 가서 수영훈련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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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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