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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 변호사의 골프생각

멋진 승부사들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멋진 승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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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사진기자셨대요. 신문과 잡지에서 해리 바든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아 일하다가 어느 틈엔가 캐디까지 하게 된 모양이에요. 다만 사진 찍는 일이 바쁠 때는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겠죠.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바든은 매우 세심하고 친절하게 남을 배려하는 골퍼였답니다. 골프를 칠 때만 강한 게 아니라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금방 팬이 돼버릴 정도로 매력 있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세인트앤드루스와 싸우시겠어요?”

“물론이지요. 골프에 관한 문제는 내부로부터 고발이 있어야 합니다. 골프는 심판이 없이 자기 신고를 자랑으로 여기는 게임이 아닙니까. 내부고발이야말로 그 정신에 잇닿아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단돈 500엔 반환을 위한 소송

비슷한 사건은 일본에서도 있었던 모양이다. 1903년 이시카와현에서 출생한 이즈미(泉芳政)씨가 그 주인공. 일본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도쿄지방법원 판사, 만주국지방법원 판사, 최고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친 뒤, 도쿄도 미나토구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고 활동했던 훌륭한 법률가였다. 이즈미씨는 1965년 9월21일 자신이 회원으로 있던 후쓰우 컨트리클럽에서 플레이를 하다가 ‘오락시설 이용세’로 500엔이 징수된 사례를 확인하고는, 이것이 일본 헌법 제13조와 14조, 지방세법 75조와 78조 등을 위반했다는 소송을 도쿄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당시 도쿄도지사 미노베료 오키치를 상대로 500엔을 반환하라는 취지였다.



물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소송이었다. 지금이라면 매스컴이 일대 소란을 피웠겠지만, 그 무렵엔 골퍼의 숫자도 적었고 신문에서도 몇 줄 적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즈미씨의 청구이유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골퍼들로부터 오락시설 이용세를 징수하는 것은 헌법에 반한다. 헌법 13조는 개인의 존엄,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라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건전한 신체 및 건강증진을 위해 스포츠를 즐길 자유는 헌법 13조가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지금 골프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스포츠로 정착해 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나 대학에도 골프부가 설치되고 정식 교과과목으로 채택한 학교도 있다. 사회 통념상 건전한 스포츠로서 사람들의 생활에 밀착돼 있는 골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다.’

이즈미씨는 모순적인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 일본의 조세제도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댔다. 스케이트나 테니스는 1957년 지방세법 개정에 의해 과세대상에서 제외됐는데 골프만 예외로 취급된 점이라던가, 전국의 파친코 가게가 납부한 세금이 200억엔인 데 비해 골퍼들이 낸 세금이 1000억엔을 넘어섰다던가 하는 것이었다.

“회원클럽은 회원 상호 간의 친목과 건강 향상을 목적으로 결성된다. 퍼블릭코스 이외의 골프장에는 분명 이러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회원들로부터 오락시설 이용세를 징수하려는 태도는 사단법인 일본클럽 내에 있는 마사지실, 도쿄변호사회관 내에 있는 당구장, 교준샤(交詢社·일본의 유서 깊은 출판사)의 살롱을 이용하는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과 같은 행위로 흡사 극도의 만행과 다름없다 할 것이다.”

도쿄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이즈미씨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피고측인 도쿄도는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골프는 사치 스포츠다. 고소득자만이 즐길 수 있다고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 더욱이 광대한 토지를 필요로 하기에 정회원이 되려면 막대한 부담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골프를 대중적인 다른 스포츠와 차별한다 해도 위헌은 아니다. 특정계층만으로 이뤄진 이용자들로부터 이용세를 징수하더라도 법 앞의 평등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또 약간의 이용세를 부과한다고 해서 고소득자의 행복추구권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즈미씨는 명문 골프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가미 컨트리클럽의 회원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많은 친구가 협력했지만, 재판이 장기화하고 패소(敗訴)가 예상되자 이들은 한발씩 빼기 시작했다.

“내가 시작한 싸움이다. 혼자서라도 계속 싸워갈 것이다.”

그는 고집불통이었다. 재판을 수행하는 것은 골프의 국민 스포츠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하는 길이라 한결같이 믿고 재판에 전력을 기울였다. 일본골프협회 같은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법도 했건만 그들은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제소한 날로부터 3년 후인 1968년 도쿄지방법원 제3민사부는 다음과 같이 선고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기각의 이유는 거의 피고측 주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즉 골프는 고소득자만의 경기이고, 광대한 토지를 전유(專有)하기 때문에라도 이용세 부담은 당연하다, 그래서 오락시설 이용세의 부과는 헌법 위반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골프의 미래를 위해

그러자 이즈미씨는 상대를 바꾸어 이번에는 자신이 소속된 사가미 컨트리클럽이 징수하는 오락시설 이용세가 부당하다며 즈다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를 상대로 소(訴)를 제기했다. 소장에서 그는 지방세법 75조가 규정하고 있는 오락시설 이용세의 대상은 파친코 가게, 사격장, 마사지실, 당구장, 볼링장, 댄스홀 등 오락과 사행심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에 한정돼야 함에도 골프를 함께 규정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재판에서도 패소하게 되자 이즈미씨는 도쿄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그의 끈질긴 싸움은 사가미 컨트리클럽 회원들 사이에서 ‘10년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젠가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다. 골프의 미래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싸움인 것이다.”

1965년부터 시작된 장기 재판은 끝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75년 2월6일 일본최고재판소는 이즈미씨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홀로 묵묵히 국가를 상대로 싸워온 전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는 세금을 적게 물리라고 외친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숭고한 경기를 일반 오락과 똑같이 취급하는 일본의 경망스러운 생각에 돌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아쉽지만 이즈미씨는 1997년 8월17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죽기 직전 이즈미씨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일본의 골프서적은 전한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다시 한번 싸워보고 싶다. 처음 재판을 건 시기가 너무 일렀던 것 같다. 그러나 시대도 변했다. 위대한 골퍼들이 유흥 오락세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야말로 굴욕이 아닌가. 말이 없는 신사 숙녀들은 지금이야말로 궐기해야 할 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신동아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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